국제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큰 '도박판'"…터키 3개월간 '국가비상사태 선포'
입력 2016-07-21 11:19  | 수정 2016-07-21 14:14
터키 3개월간 국가비상사태 선포/사진=연합뉴스
터키 3개월간 국가비상사태 선포…"에르도안 대통령에게 큰 '도박판'"


터키 정부가 선포한 국가비상사태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무소불위 권력을 휘둘러볼 시험장입니다.

2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쿠데타 진압의 수습기간으로 설정된 국가비상사태 3개월 동안에는 대통령과 내각은 의회 입법을 거치지 않고 즉각 발효되는 새로운 칙령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 칙령은 법률에 해당하는 효력을 지니면서도 헌법재판소의 위헌 심판도 받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의회 사후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의회는 에르도안이 창당한 집권 정의개발당(AKP)이 과반을 장악하고 있어 견제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원하는 법은 즉각적으로, 검증받지 않고 통과할 수 있는 셈입니다.

이미 에르도안 정부는 쿠데타 연계세력을 뿌리 뽑는다며 헌법재판관 2명을 포함해 판·검사 2천750명을 직위해제하거나 체포해 사법부를 사실상 해체했습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쿠데타를 기도한 세력을 척결하기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고 공언했습니다.

쿠데타 배후로 지목된 재미 이슬람학자 펫훌라흐 귈렌을 지지한다는 의심이 가는 공무원을 수만 명 내쫓은 상황에서 군에서도 '바이러스 박멸'을 다짐했습니다.

크게 보면 이미 행정, 입법부를 장악한 에르도안 대통령이 그간 견제세력으로 활동해온 사법부, 군부도 재구성하는 시도에 한창인 것으로 관측됩니다.

이와 관련해 비날리 이을드름 터키 총리는 "이번 결정은 우리 국민의 일상생활이 아니라 국가 메커니즘의 빠른 기능에 직접 연계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터키는 헌법상 의원내각제이지만,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됐습니다.

3차례 총리를 역임한 에르도안은 사상 첫 직선제 대통령이 되고 나서 총리를 넘어선 권력을 휘둘렀고 자신과 뜻이 다른 아흐메트 다부토울루를 총리 자리에서 사실상 경질했습니다. 이을드름 총리는 다부토울루의 후임입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작년 총선에서 AKP가 압승하고 나서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추진해 왔으며 야당과 언론을 제한해 서구권에서 압제정치를 펼치는 권위주의적 지도자라는 비판을 샀습니다.

이 때문에 에르도안이 쿠데타를 빌미로 삼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독재적인 권력을 휘두르면서 대통령중심제를 사전 체험하게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유라시아그룹의 무지타바 라흐만은 "터키는 이제 사실상 일시적 대통령제 아래 있게 됐다"며 "이는 민주적이 아닌 기이한 법적 수단을 통해 획득한 것"이라고 FT 인터뷰에서 비판했습니다.

그는 이어 이번 결정으로 터키의 불확실성이 심각하게 연장됐다면서 "이는 에르도안에게 큰 도박판이며 대통령제 실행 가능성에 대한 심각한 시험장"이라고 말했습니다.

에르도안 대통령에 대한 서방의 비판이 점점 거세지는 가운데 그도 이런 분위기를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됩니다.

그는 20일 국가비상사태를 결정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내각회의 도중에 알자지라 방송과의 인터뷰를 이유로 회의를 중단시킨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인터뷰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민주적인 의원내각제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런 언급만으로 개헌 추진을 포기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독재화를 우려하는 서방의 시선을 의식한 발언에 가깝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실제로 인터뷰에서 이번 국가비상사태 선포의 민주주의적 정당성을 역설했고 서방의 비판을 일축했습니다.

그는 "유럽국가들도 똑같이 한다. 그들에게 '왜?'라고 묻지 않는 이들은 터키를 비판할 자격이 없다"면서 "비상사태 선포는 국가를 테러로부터 보호하는 데 필요한 예방조치이며 민주주의 보호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지난해 11월 파리 테러와 최근 니스 테러 등으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것과 이번에 자신의 선포가 비슷한 조처라고 항변한 것입니다.

터키가 사형제를 도입하면 EU 회원 가입은 요원하다는 지적이 나온 데 대해서도 에르도안 대통령은 "EU는 전 세계가 아니라 28개국일 뿐"이라며 "우리는 53년간 문을 두드려 왔는데 계속 기다리게 하더니 다른 국가는 가입시키더라"고 볼멘소리를 했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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