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영란법 앞둔 혼란상] 3만원 상한선 두려워 하는 식당들 “일단 감원부터”
입력 2016-07-20 16:53 

외환위기 때는 경기는 안좋았어도 음식값을 규제하진 않았지요. 영업이 안되면 우선적으로 직원 수부터 줄일 수 밖에 없어요.”(백 모 씨·서울 여의도에서 중식당 운영)
김영란법이 시작되면 저녁 장사는 끝난거죠. 우리에게는 밥먹고 살지 말라는 소리나 다름없는 거예요.”(이 모 씨·서울 종로에서 한정식집 운영)
서울 종로나 여의도 일대의 식당가는 김영란법이 몰고 올 태풍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조차 못하며 불안감에 떨고 있다. 저렴한 가격대의 식당으로 업종을 미리 변경하면서 발빠르게 김영란법에 대응하는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별다른 대책없이 손을 놓고 있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음식점 운영자들은 하나같이 격앙된 심경을 토로했다.
서울 인사동에서 한정식집을 운영하는 김 모 씨는 인사동 한정식집 다수가 매물로 나와있는데, 60년 이상 된 한정식집 유정도 김영란법으로 문을 닫았다”며 지금도 음식점들이 힘든 상황에서 김영란법이라는 새로운 규제까지 생기면서 시장 자체가 침체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의 G일식집 주방장 유 모 씨는 밥값이 얼마까지는 되고 얼마부터는 안된다는 게 무슨 자본주의냐”며 정치인들이 일반 국민들 눈치보지 않고 소신껏 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부분의 음식점주들은 김영란법 시행으로 매출이 적잖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내다봤다. 일부는 20~30%, 많게는 70%대의 매출 하락을 예상했다. 서울 가회동에서 한식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박 모 씨는 단순히 음식 가격을 내려서는 임대료 등을 고려할 때 생존하기 어렵다”며 매출 유지를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정말 크다”고 말했다.

매출 하락이 현실화되면 직원 수부터 줄이겠다는 곳이 많다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자칫 가뜩이나 취약한 음식업계 일자리가 뿌리채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선시행 후보완을 주장하는 측에선 부패 방지를 위해선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서울 여의도의 한 일식당 주인은 김영란법으로 매출이 줄어들면 당연히 직원 수를 줄일 수 밖에 없다”며 김영란법 도입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H중식당 대표는 종업원이 30명인데 영업이 안되면 가장 먼저 감원부터 해야 할 것”이라며 매출이 줄어들면 손이 노니까 인원을 줄일 수 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대다수 음식점들은 김영란법상 가격 상한선인 ‘3만원에 단가를 맞추기 위해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서울 여의도에서 일식당을 운영하는 이 모 씨는 일식집은 코스 요리가 대부분인데 재료를 질 낮은 걸 써서 단가를 맞춰야 할 것 같다”며 3만원은 너무 낮은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여의도의 한 복집 사장은 한달에 월세만 600만원인데 단가를 낮추면 임대료도 내지 못한다”며 가게도 이미 내놓았는데 매물이 나가지를 않는다”고 전했다.
김영란법 시행에 대비해 일찌감치 업종을 전환한 곳도 있었다. 현재 여의도에서 대구탕집을 운영하는 양 모 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고급 참치회 식당을 운영하다 업종을 바꾼 케이스다. 양 씨는 17년간 참치회 식당을 운영했지만, 김영란법을 만들려는 정치권 움직임을 보고 서둘러 일반 식당으로 바꿨다. 그는 지난해 김영란법 제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앞으로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해 업종을 전환했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영란법에 대한 무지로 인해 막연한 공포감에 빠져있는 음식점주들도 적지 않았다. 서울 중구의 한 음식점 대표는 김영란법으로 문제가 발생하면 음식점주도 처벌을 받게 되느냐”고 묻기도 했다.
부차적인 이유로 음식점주들의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과태료 부과를 피하기 위해 신용카드를 나눠 결제하는 이른바 ‘쪼개기가 늘어나면 카드사로부터 승인을 받기 위해 지급해야 하는 통신비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 서울 종로구의 J식당 주인은 지금도 더치페이를 하는 손님들 때문에 부담이 만만치 않은데, 앞으로 더 비용 부담이 커질까봐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서울 시내 한 한정식집 사장은 접대비 규제때 처럼 카드 쪼개기가 늘어날 것으로 본다”며 가격 제한이 5만원 정도만 돼도 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지킬 수 없는 법을 만들어놓고 편법을 양산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하소연했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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