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김유진이 던진 ‘비극 이후’의 삶
입력 2016-07-20 15:08  | 수정 2016-07-20 15:56
김유진

흔한 헤프닝도 당사자에게 재난인 때가 있다. 비극은 창밖에서 불어온 바람처럼 다가와 이 안의 모든 풍경과 사물을 바꾼다. 소설가 김유진(35)은 제17회 이효석문학상 최종심에 오른 단편 ‘비극 이후(계간 ‘문학과사회 2015년 가을호 발표)에서 이별 혹은 죽음을 겪은 당사자에게 상실과 몰락의 심경을 생생하게 묻고, 비극 이후 우리들에게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또 삶을 지탱하기 위한 심리적 기반은 무엇인지를 고민케 한다.
멀지 않은 휴양지로 떠나는 비행기에 오른 수인의 이야기로 소설은 출발한다. 남태평양 태풍에 내심 결항을 기대했지만 비행기는 예정대로 이륙한다. 수인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무감각한데 친구 B와의 이별을 겪은지 오래되지 않은 탓이다. 죽음이란 이별은 망자뿐만이 아닌 산 자의 몰락을 함의한다. 수인은 엄마와의 기억, 사랑했던 B와의 추억을 회상하고 비행기는 착륙한다. 충동적인 여행은 ‘살아 있음을 다시 일깨우려는 여정이지만 휴양지에 내려앉은 안개는 수인에게 비현실적이어서 수인은 내면의 흔들림을 다시 경험한다.
그곳에 있지 아니하다는 뜻의 부재(不在)와 실제로 존재한다는 뜻의 실존(實存)은 수인을 둘러싼 두 키워드다. 수인은 부재와 실존의 감옥에 갇혔다. 수인의 엄마는 수인이 대학 입학 후 독립하자 되려 자신을 회복시켰다. 부재를 통해 자신의 고유성을 찾은 엄마와 달리 B의 부재는 수인을 몰락시킨다. 죽음을 두고 수인은 죽으면 뭘 어떻게 해, 할 수 없지”라고 자포자기하는 수인은 부재에 항거할 힘을 잃는다. 오히려 차가운 물이 쏟아지는 샤워기를 견딜 힘이 없어 옷을 입은 채 물을 맞거나 차고 습한 안개 속에서 자신이 ‘이미 죽은 게 아닌지를 혼동하며 실존에 의문을 품는다.
비극을 겪은 개인의 심리를 추적하는 소설은 상실한 인간들이 붙들게 될 문장들로 채워졌다. 수인은 몰락한 심연인 ‘저 세계와 현실적 무대인 ‘이 세계 사이의 팽팽한 긴장 위에 서 있다. 저곳에서 이곳으로 건너오는 심리의 대목을 김 작가는 다음처럼 썼다. 갓 태어난 짐승의 쪼그라든 귀가 조금씩 펴지듯, 좁은 구멍으로 물이 흘러들어 오는 것처럼, 이윽고 범람하는 강물이 배를 띄우듯, 소음은 수인의 의식을 서서히 길어 올리고 있었다.”
수인과 B가 생전 찾은 갤러리에서 본 사진 들판의 내리치는 번개1‘는 실상과 허상의 무경계성”을 드러낸다. 그것은 두 층위에서 이뤄지는데 먼저 번개를 뿌리로 착각한다는 점에서 1차 혼돈을 건네고, 번개의 실상은 실제 번개가 아닌 기계를 통한 인위적인 번개란 점에서 2차 혼돈을 준다. 삶과 죽음이 이와 닮았다.

심사위원장 오정희 소설가는 이 소설을 두고 비극을 겪은 당사자의 시선에서 통념을 벗어나 싹 뽑아낸 듯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심사위원 신수정 문학평론가는 이 시대 애도의 방식을 세련되게 표현했다”며 비극을 겪은 이후의 상당히 강렬하고, 그러면서 할 얘기는 다하는 세련된 소설”이라고 평했다.
1981년생인 김유진 소설가는 2004년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소설집 ‘늑대의 문장과 ‘여름을 남겼고, 장편소설 ‘숨은 밤을 썼다.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와 ‘소나기마을문학상 황순원신진문학상을 받았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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