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이 국회를 통과한 지난해 3월 이후 1년 6개월여의 유예기간을 정부는 ‘허송세월로 보냈다. 일반 법률보다 유예기간을 6개월을 더 늘리긴 했지만 법 시행에 따른 혼란과 각종 시행착오를 막을 방안을 마련하기는커녕 정부 스스로 우왕좌왕했다.
우선 김영란법 시행을 위해 국민권익위원회가 구성한 태스크포스(TF) 인원은 고작 7명에 불과하다.
권익위는 김영란법 시행에 대비해 위원회 내에 '청탁금지제도과'를 신설해달라고 행정자치부에 요청했다. 하지만 김영란법 시행이 두 달 앞으로 다가온 현재까지도 직제만 만들었을 뿐 실제 인력배치는 시행일 이후에나 가능하다.
이러다보니 극소수 인력들만이 공공기관과 민간기업들에서 폭주하는 질문 세례를 감당하고 있다. 기업 교육·홍보 설명회에 불려다니느라 분주한 인원을 제외하면 관련 민원을 처리하고 법률을 해석할 직원은 두어 명 남짓이다. 민간의 유권해석 요청에 대응하기 위한 데이터베이스(DB)도 제대로 구축하지 못했다.
정부 부처간의 ‘엇박자도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기획재정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등 경제부처에서는 김영란법이 농수축산물 수요를 감소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우려를 표한 반면, 권익위는 식사·선물 등의 상한액을 변경할 의사가 없음을 공공연히 밝혀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기업들의 불안감 또한 갈수록 커지고 있다. 당장의 비즈니스 관행에 큰 변화가 예상되고 있지만, 무엇이 어떻게 바뀔지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김영란법에는 ‘양벌규정이 있다. 종업원이 금지된 행위를 한 경우 법인에게도 벌금 또는 과태료를 반드시 부과한다. 법인이나 대표자가 위반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했을 때는 예외라고 돼 있지만, 양벌규정을 피해가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위반행위가 적발되면 부정청탁의 내용과 조치사항을 공개해야 한다는 점도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되는 대목이다. 자칫 시범 케이스로 걸려 ‘비리 기업으로 낙인찍힐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일단 헌법재판소 심판 결과가 나와야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반응이다. 이에 김영란법과 관련해 내부적인 대책을 마련한 기업은 아직까지 없는 실정이다. 본지가 10대 그룹 계열사 10곳에 문의한 결과 내부 가이드라인을 만든 곳은 전무했다.
A기업 임원은 헌재에서 심의 중이기 때문에 선제적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지 않다”면서도 (법이 시행되면)시범 케이스로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일단 몸을 사리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B기업 임원은 김영란법은 너무 두루뭉술해서 경우의 수가 많이 있다”며 초기에야 잘 되겠지만 조금 지나면 편법들이 많이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C기업 임원은 앞으로 심리적 제약이 생겨 민관이 극단적으로 서로를 어려워하는 상황이 올 것 같다”고 염려했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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