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예술의전당서 만난 피아니스트 김선욱(28)은 지금이 고비라고 했다. 10년 전 리즈 콩쿠르에서 최연소이자 동양인 최초로 우승한 이래 로열콘세르트허바우, 런던 필,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등 최고의 악단들과 협연하고 벌써 유수 레이블에서 4개의 음반을 내며 유럽 무대서 전문 연주자로 활약중인 그다. 일견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는 듯한 그에게 무슨 심경 변화가 있었던 걸까.
10년 전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전 영재로 곧잘 소개됐어요. 20대 후반이 된 지금 누구도 절 그렇게 부르지 않죠. 영재도 아니고, 그렇다고 연륜 있는 거장도 아닌 지금이 가장 애매한 시기 같아요. 잘 헤쳐나가고 싶다는 마음뿐이죠.”
영국 런던으로 터전을 옮긴 지 올해로 9년차. 유난히 경쟁이 치열한 이곳 클래식계에서 꾸준히 연주자로 돋보이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생활의 무게가 그의 표정에서 읽혔다. 연주자에게 ‘불확실성은 숙명이죠. 월급도 승진도 은퇴도 없는 와중 다음 무대를 얻기 위해 오늘 최고의 기량을 보여줘야 해요. 매일 정글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어요, 하하.”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여느 젊은 연주자보다 진지한 배경에는 뭐든지 완벽을 추구하는 그의 타고난 성향이 자리하는 듯 했다. 김선욱은 연습벌레다. 1년 365일 최소 5시간을 집앞에 만든 오두막 연습실에서 보내고, 하루이틀 이상 피아노 없는 곳으로 여행이라도 가는 일은 상상도 못한다. 다시 태어나면 피아니스트는 안 할래요. 아들이 세살인데, 음악을 하지 않았으면 해요. 연주는 너무나 행복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어려운 일이니까요.” 선이 굵고 뚜렷하며 맺고 끊음이 분명한, 전문가들이 ‘확신에 찬 연주라고 부르는 그만의 음악은 이토록 지난한 과정의 산물이다.
오는 20일 리사이틀에서는 김선욱의 장기이자 그의 삶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온 작곡가 베토벤에 다시한번 집중한다. 베토벤을 연주할 때는 다른 어느 작품에서도 느낄 수 없는 강렬한 성취감을 느껴요. 제 능력의 최대치를 모조리 쏟아 부어야만이 달성할 수 있는 존재랄까…. 그 성취감은 마치 마약 같아서 늘 도전하게 됩니다.” 이번에 선보이는 ‘디아벨리 변주곡은 베토벤이 32개의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한 뒤 말년에 쓴 작품으로 그의 피아노 음악의 정수이자 역작으로 꼽힌다. 20대 중반 베토벤 소나타와 협주곡 전곡을 완주한 바 있는 김선욱은 마지막에 가선 말그대로 천국을 걷는 느낌이 드는 곡”이라며 이번 작품에 애정을 드러냈다. 서정적인 슈베르트 소나타 18번 G장조와 모차르트 환상곡 D단조도 선보인다.
음악에 있어서 수도승처럼 살아가는 그의 취미 대상은 의외로 와인이다. 마시는 것도 즐기지만 관련 지식도 준전문가급. 와인을 공부하려고 책도 많이 봐요. 배울 건 역시 끝도 없어요.”
공연은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02)599-5743
[오신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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