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ADB 이어 AIIB 부총재 확보도 실패…경제외교 '빨간등'
입력 2016-07-10 19:04 
사진=연합뉴스

홍기택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의 사임이 확실시되고 새 부총재직에 다른 나라의 인물이 내정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제 한국인이 도전할 국제기구 부총재직은 모두 사라진 모양새가 됐습니다.

정부는 경제 관련 국제기구에서 부총재급 이상의 보직을 수임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겠다고 천명했지만 2003년 이후 '헛발질'만 계속되고 있어 경제외교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10일 관련 당국에 따르면 홍 부총재가 선임 5개월여 만에 사실상 사임이 확정되면서 우리나라는 경제 관련 국제기구에서 부총재급 이상 직위를 갖지 못한 나라로 다시 전락하게 됐습니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아시아개발은행(ADB)에서 잇따라 부총재를 배출하면서 명실상부한 아시아의 경제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과시해왔습니다.


정인용 전 부총리(1988~1993), 이봉서 전 상공부 장관(1993~1998), 신명호 전 재정경제원 차관보(1998~2003) 등이 ADB에서 부총재를 수행하며 15년간 부총재 중 한자리는 사실상 한국 몫으로 인정됐습니다.

하지만 2003년 중국에 부총재 자리를 내주면서 맥이 끊겼고 2010년 7년 만에 새로 신설한 부총재직에 재도전했지만 이번에는 인도에 밀려 고배를 마셨습니다.

ADB에는 더 이상 자리가 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중국 주도로 AIIB가 새로 창설되면서 한국에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우리 정부는 중국(26.06%), 인도(7.51%) 등에 이어 5번째로 많은 지분(3.5%)을 확보하고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는 외교적 노력을 벌여 마침내 13년 만에 다시 국제기구 부총재직을 수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대우조선의 분식회계에 대한 홍 부총재의 책임론이 불거지자 홍 부총재는 돌연 AIIB에 휴직계를 제출했고 AIIB가 홍 부총재가 있던 리스크 담당 부총재(CRO) 자리를 국장급으로 강등해 새 인물을 공모하면서 한국인 부총재는 반년도 채 되지 않아 '일장춘몽'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국제기구의 고위직 진출이 잇따라 무산된 데에는 중국의 위상 강화와 인도 등 신흥국의 부상 등 외부적 요인 탓도 있다고 봐야합니다.

하지만 연이어 고위직 진출에 실패하고, 이번에는 어렵게 얻은 자리마저 허무하게 날려버린 데 대해서는 정부의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관계의 대체적인 분위기입니다.

정부는 홍 부총재가 6개월짜리 휴직계를 제출한 사실이 알려진 뒤 "후임 부총재에 한국인이 선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만 반복했습니다. 실제로 어떤 노력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며 정부 스스로 어떻게 노력했다고 입장을 밝히지도 않았다. 앞으로 국장급에라도 한국인이 선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말 뿐입니다.

정부 관계자는 "AIIB에서 후임 공모를 진행하면 여기에 도전하는 한국인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뜻이었다"며 정부가 공모에 앞서 적임자를 추천하지는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중국 주도의 국제기구가 그리 한 것은 우리 정부 책임이 아니라는 태도입니다.

하지만 AIIB가 이미 내정자가 있는 자리를 부총재직으로 신설하고 홍 부총재의 보직을 국장급으로 격하해 공모할 때까지 이런 정황파악을 하지 못한 것은 상황파악과 분석 능력의 부재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 정부 또는 AIIB가 우리 정부와 협의를 했다면 정부 담당자는 이런 결과를 예측하지 못한 책임이 있고, AIIB측에서 협의조차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직급 강등과 상승으로 부총재직을 바꿔치기해버린 것이라면 5위 지분국가로서 중국에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농락당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홍 부총재가 자취를 감춘 뒤 정부가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해 결국 그나마 살릴 수 있었던 기회마저 놓쳤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AIIB의 이번 조치에 대한 한국민들의 불만도 고조되고 있습니다.

명색이 아시아를 역내로 하는 국제기구이면서 부총재를 낸 한국을 어처구니없이 물 먹이고 자기네 마음대로 부총재 자리를 국장급으로 강등한 것은 부당한 처사라는 지적입니다.

새 부총재 직에 프랑스인인 티에리 드 롱구에마 아시아개발은행(ADB) 부총재를 내정한 것도 지분율이 낮은 유럽국가를 상대적으로 우대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옵니다.

현재 AIIB는 중국의 진리췬(金立群) 총재 외에 인도와 독일, 한국, 인도네시아, 영국 등 5개국이 각각 부총재를 맡고 있습니다.

홍 부총재가 사임하고 프랑스인이 새로 선임되면 부총재직은 아시아권에서는 인도와 인도네시아만 남게 되고 유럽 국가가 독일, 영국, 프랑스 등 3개국으로 늘어 수적으로도 앞섭니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이라는 기구 이름이 무색해지는 대목입니다.

우리의 지분율은 3.5%로 중국(26.06%), 인도(7.51%), 러시아(5.93%), 독일(4.15%)에 이어 5번째입니다. 우리보다 지분이 작은 영국과 프랑스가 부총재를 차지하는 데 우리는 4조원이 넘는 돈만 투자한 채 입맛만 다시는 모양새입니다.

이런 상황인데도 우리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기재부 관계자는 "AIIB가 부총재직을 선임할 때는 지분율도 물론 중요하지만 개인의 커리어와 능력도 중요한 고려 요소"라고 말했습니다.

정부가 애당초 자격과 능력이 부족한 인사를 '낙하산' 형식으로 무리하게 국제기구 부총재직에 추천하면서 현 상황을 자초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옵니다.

지난달 발표된 감사원의 감사결과 감사원은 대우조선의 대규모 분식회계를 산업은행이 사실상 방치했다고 보고 당시 회장이었던 홍 부총재의 감사결과를 인사 자료로 활용하도록 금융위에 통보한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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