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중국산 마늘 세이프가드로 인한 휴대폰 수출 중단 사태가 재발하지 말라는 법 없죠. 사드 배치로 중국에서 환경, 인허가 규제 같은 보이지 않는 보복 조치가 불거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국내 화학업체 관계자)
한·미 양국이 미국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하기로 결정하면서 중국에 사업 기반을 갖고 있는 기업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재계는 한·중 관계 냉각에 따른 ‘무역 보복을 걱정하며 중국 당국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최근 중국 내 규제 장벽이 높아지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 업계는 추가 악재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12월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만큼 중국이 관세 조정을 통한 직접 규제에 나설 수는 없다”고 진단했다. 다만 각종 환경 규제와 인허가 절차 등을 까다롭게 하는 등 비관세 장벽을 높여 한국 기업에 대한 보복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소비 시장에서도 ‘혐한 역풍이 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감에 자동차·식음료 기업과 항공·관광업계 고민도 커졌다.
지난해 한국의 대(對) 중국 수출액은 1371억달러로 전체 수출의 26.1%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절대적이다. 소비 충격이 발생하면 국내 수출이 뿌리째 흔들릴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중국 집중 견제 받는 韓배터리
사드 배치 이후 피해가 예상되는 대표적인 업종은 LG화학, 삼성SDI 등 자동차 배터리 업체다.
중국 정부는 지난달 전기차 배터리 인증에서 한국 업체를 탈락시키면서 현지 사업에 제동을 걸었다. 업계에서는 중국 정부 인증을 받지 못한 배터리는 2018년 1월부터 전기차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드 배치로 인해 중국 내 규제가 강화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기업들이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10일 배터리 업체 관계자는 사드 등 정치 외교적인 문제가 경제 제재까지 연결될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향후 중국 정부 심사 과정에서 인증을 받기 위해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전기차 보조금은 전체 차량 가격의 50%에 육박한다.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빠지면 사실상 중국 시장에서 배제되는 충격이 발생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중국 최대 업체인 BYD 등은 이미 정부 인증을 통과한 상태다.
◆車·항공업체..소비시장 위축 우려
자동차·항공·관광업계는 혹시 불지 모를 중국 내 반한 정서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중국 소비자들이 한국차 불매 운동에 나서거나 한국 방문을 기피하는게 최악의 시나리오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중국 시장에서 167만8922대의 자동차를 팔았다. 전 세계 판매량의 20%가 넘는다.
현대차는 중국에서 판매되는 자동차 절대 다수가 현지 합작법인에 의해 생산되는 차량인 만큼 사드 사태가 중국 사업에 직접적인 타격을 불러 오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달말 정몽구 회장 주재로 열리는 해외 법인장 회의에서 중국시장 대응 방안을 심도깊게 논의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여객 노선 매출 가운데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13~20%로 높은 편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최근 단체 중국 관광객 방한 등 관광 호재가 이어졌는데 앞으로 관광 심리 변화 여부를 민감하게 모니터링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中경제압박 여부 촉각...한 중 FTA 2단계 서비스 협정 지연 우려
중국이 정치·외교 문제로 경제 보복에 나선 전례는 많다.
중국은 2014년 베트남과 남중국해 영해권 분쟁이 터지자 중국에 진출한 베트남 기업에 대한 사업 입찰을 중단하며 현지 진출 기업을 강하게 압박했다.
한국과도 악연을 갖고 있다. 한국이 2000년 농가 보호 차원에서 중국산 마늘 관세율을 30%에서 315%로 올리자 중국은 무역 규모가 훨씬 큰 폴리에틸렌과 휴대폰 수출을 잠정 중단하는 초강수로 맞섰다.
엄치성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본부장은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후 시장 경제 지위국을 부여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사드 배치에 대해 중국이 한국에 대한 경제 제재를 가한다면 중국도 악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 역시 이번 사드 배치가 한중간 통상문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정경분리원칙에 따라 영향이 없길 바라면서도 과거 중국이 주변국과 정치적인 갈등이 일어났을 때 경제제재를 가했던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안에 개시하기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서비스ㆍ투자 협상이 지연될 것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한·중 FTA는 발효 후 2년 내에 서비스·투자 분야 협상을 개시하도록 규정돼 있다. 양국 정부는 지난 3월 17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통상장관 회담에서 양국간의 서비스·투자의 확대를 위해 2단계 서비스·투자 협상도 연내 조속한 시일내에 개시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중국이 경제성장을 내수중심으로 전환하고 있고 제조업 대중 수출이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서비스 분야 수출 확대는 꼭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정부가 중국시장에 한류를 통한 문화컨텐츠 수출과 의료서비스 진출, 관광산업 활성화 등을 추진하고 있는데 서비스협상이 지연된다면 관련 산업을 육성하고자 하는 정부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중국 정부의 제재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면서도 앞으로 우리 기업에 불이익이 생기지 않는지 등을 면밀히 모니터링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노원명 기자 / 서동철 기자 / 김정환 기자 / 윤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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