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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상엽, 빈잔에 채운 `박태하`…그의 삶도 공허했네
입력 2016-07-07 13:18  | 수정 2016-07-07 13:44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인구 기자]
배우는 작품 속 인물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비움과 채움을 반복하면, 캐릭터에 숨이 돈다. 장맛비가 쏟아지는 지난 5일 만난 이상엽(33)은 KBS 2TV 드라마 '마스터-국수의 신' 촬영을 끝낸 뒤였다. 굵은 빗줄기가 거리를 매만지듯 뒤덮었지만, 이상엽 속 박태하에게는 닿지 않았다. 텅 빈 그의 마음은 채워지기에는 아득해 보였다.
"'국수의 신'는 잔상이 길 듯한 작품이에요. 아직도 작품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노력 중이죠.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당연했던 박태하가 제가 돼버려서 떠나보내기 쉽지가 않네요. 박태하가 죽는 장면을 촬영하면서 눈물나기도 했지만,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보여드리긴 싫었습니다."
이상엽이 연기한 박태하는 채여경(정유미 분)을 대신해 살인죄로 복역 후 경찰이 되는 꿈을 포기한 채 어둑한 뒷골목으로 내몰린 인물이었다. '절대 악인' 김길도(조재현)의 수하가 됐고, 자신의 아버지가 그의 명령으로 살인한 사실을 알게 됐다. 풍랑에 휩쓸리는 삶 끝에 보육원에서 자란 친구들을 위해 목숨을 던졌다.
"박태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이 이해가 되질 않더라고요. 캐릭터가 어려워 고민도 많았죠. 감독님과 밤낮 가리지 않고 의견을 주고 받았어요. 박태하가 자신이 아끼는 친구들에게 '아버지와 같은 사랑'을 가졌다고 느낀 뒤 그가 이해됐죠."
이상엽은 박태하를 그리는 과정이 혼란스러웠다고 했다. '국수의 신' 속 박태하의 발자취를 따라 그도 함께 성장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이었지만, 박태하가 김길도 앞에 처음 섰을 때 조금씩 캐릭터가 가야 하는 길이 보였다.
"배우들과 술을 기울일 때에도 작품 얘기만 했어요. 천정명, 정유미 등을 보면서 몰입이 잘 됐죠. 시작부터 끝까지 이상엽은 없었고, '국수의 신'과 박태하만 있었어요. 태하는 한 발짝 물러나 친구들을 바라보는 역할이었죠. 작품 속 인물들을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났습니다."
'국수의 신'이 흥행에 성공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최종회 시청률이 경쟁작들에게 앞섰지만, 기대보다 만족할 만한 성과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상엽은 숱한 비판 속에서도 작품을 위해 자신을 모두 비워냈다.

"작품에 완전히 마음을 쏟은 뒤라 제 자신이 없는 느낌이에요. 비가 오는 걸 보면서도 '태하는 맨날 비를 맞고 다녔는데'라고 생각했었죠. 배우들이 맨몸으로 작품을 받아들인 듯해요. 작품이 끝나고서도 펑펑 울기도 하고, 작품 속 사람들이 보고 싶기도 했죠."
이상엽이 짊어진 슬픔은 박태하의 예기치 않은 죽음과 맞물려 있었다. 마지막회를 앞두고 세상을 떠나 박태하는 긴 여운을 남겼다. 박태하는 친구들을 위해 삶을 바친 인물이었고, 이상엽의 눈빛에는 절절한 슬픔이 따라다녔다.
"태하의 죽음에 대한 많은 얘기가 있지만, 저는 좋았어요. 2016년 버전 엔딩 같았죠. 전형적이지 않은 작품이었고, 저도 그렇게 연기하려고 했어요. 박태하를 연기하면서 멋을 부릴 수도 있었지만, 그 안에 있는 '겁'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 '파랑새의 집',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 '시그널'은 이상엽의 전작이었다. 그는 이 작품들과 달리 '국수의 신'에서는 더욱 어두운 곳으로 떨어졌다. 그만큼 감정적인 소모가 심했다.
"저를 비우고 박태하를 연기했어요. 하지만 박태하도 극 중에서 박태하의 인생을 산 게 아니더라고요. 타인의 인생을 위해 희생했던 거죠. 이상엽도 없고, 박태하도 없어진 상태에서 감정이 뚝 떨어지더라고요. 처음으로 '캐릭터가 이렇게까지 나를 끌어내리는구나'라고 느꼈죠."
이상엽은 채워지지 않는 빈 잔과 닮은 마음을 사람으로 다시 채우고 있었다. 그는 "배우는 사람의 감정을 무기 삼는 직업이다. 결국 사람이 가장 중요하더라"고 했다. 군 제대 후 배우 김석훈을 만나 위로를 받고, 다시 힘을 내 배우의 길을 걸어왔다. 피부로 전해지는 동료들의 온기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가슴 속으로 느끼는 것이 연기를 통해 전해졌으면 해요. 깊게 생각하고 그것들을 추스려내야죠. 연기라는 건 정답이 없으니까 시간이 지나도 혼란스러울 것 같긴 해요. 그래도 그 과정에서 희열이 있어 배우들이 푹 빠져서 연기하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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