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현호 살인 피의자 안가두고 팔 깁스해줘…항해사 4일간 '지혜'
원양어선 '광현 803호'(138t) 선상살인 사건의 피의자를 맨손으로 제압하고 추가 피해를 막은 한국인 항해사의 용기 있고 현명한 대처가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부산해양경비안전서(해경)는 이번 살인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항해사 이모(50)씨를 영웅이라고 칭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습니다.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항해사 이씨는 당직 근무 선실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살육극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간 이씨는 광현호 조타실에서 참담함을 느꼈습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함께했던 선장이 온몸에 칼에 찔려 쓰러져 있었고, 조타실은 유혈이 낭자했습니다.
이씨가 응급조치를 했지만, 선장은 이미 피를 너무 많이 흘린 뒤였습니다.
이씨는 조타실에서 나가려다가 칼을 든 베트남 선원 V(32)씨와 맞닥뜨렸습니다.
온몸에 피가 묻은 V씨는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살인사건이 났다는 소식에 배에는 피의자 2명을 제외한 나머지 인도네시아·베트남 선원들은 모두 창고나 선실안으로 숨은 채 문을 꼭 걸어 잠근 상태였습니다.
V씨는 이씨에게 손으로 목을 긋는 표시를 하며 칼로 덤비라는 표시를 반복했습니다.
위협을 느낀 이씨는 잠시 물러났다가 흉기를 든 V씨의 손을 순간적으로 잡은 채 발을 걸어 쓰러뜨렸습니다.
선실에서 기관장을 무참히 살해한 뒤 조타실로 올라온 다른 피의자 B(32)씨도 이씨에게 달려들었습니다.
태권도 4단, 합기도 2단 등 상당한 무도 실력을 갖춘 이씨는 연쇄살인을 저지른 이들을 난투 끝에 제압했습니다.
뒤늦게 이성을 찾은 피의자는 피묻은 손으로 항해사 이씨의 얼굴을 쓸어내리며 참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씨는 불상사가 추가로 발생할 것을 우려해 빼앗은 칼을 조타실에 숨겨놨습니다.
이씨의 현명한 대처는 피의자 제압 이후 더 빛났습니다.
선장과 기관장이 숨진 이후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이씨는 피의자 2명을 감금하거나 포박할 경우 다른 선원의 반발이나 추가 난동이 있을 것으로 우려해 다른 선원으로 하여금 이들을 감시하게 했습니다.
사고 해역에서 가장 가까운 육지인 세이셸군도 빅토리아 항까지 1천㎞가 떨어져 최소 4일 이상 시간이 걸리는 점도 고려했습니다.
물리적인 신체 제약이 없었던 피의자들은 다른 선원과 함께 식사도 하고 일상적인 선상생활을 했습니다.
이씨는 살인 피의자들에게 유화책도 폈습니다.
범행과정에서 오른손을 다친 V씨에게 치료해주겠다며 붕대를 꽁꽁 깁스한 것처럼 감았습니다.
하지만 이는 팔을 못 쓰게 할 목적도 있었습니다.
선장과 기관장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자신도 죽이려 했던 살인 피의자들과 한배를 탄 이씨는 거의 잠을 자지 않고 조타실에서 배 운항을 맡았습니다.
다시 피의자들이 범행을 저지를 수도 있었고 다른 선원까지 동참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베트남어와 인도네시아어를 잘 알지 못한 이씨는 외국인 선원들의 대화내용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극도의 긴장감과 공포심을 견뎌야 했습니다.
이씨는 회식 뒤 살인사건이 발생한 점을 우려해 배에 남은 술을 모조리 바다에 버렸습니다.
이씨는 살인 피의자 2명과 인도네시아·베트남 선원 13명 사이에서 서로를 견제하는 아슬아슬하고 외로운 줄타기를 한 셈이었습니다.
이씨는 해경·선사와 수시로 위성전화를 하며 선내 동향을 알렸습니다.
이렇게 4일간의 살인 피의자들과 불안한 동행을 한 이씨는 빅토리아 항 도착 전 도선사와 함께 기습적으로 배에 해경 수사팀이 올라타 광현호를 장악하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습니다.
피의자 2명과 함께 생활한 나머지 외국인 선원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이제 살았다"며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습니다.
해경 관계자는 "광기 어린 살인현장에서 홀로 피의자를 제압하고 4일간 안전하게 배를 운항한 것은 그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칭송했습니다.
이씨는 지난달 27일 참고인 조사를 받으러 입국해 "저는 일등 항해사로서 배에서 저의 책무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는 말로 그동안의 심경을 대신했습니다.
해경은 피의자 검거에 혁혁한 공로를 세운 이씨에게 포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MBN 뉴스센터 /mbnreporter01@mbn.co.kr]
원양어선 '광현 803호'(138t) 선상살인 사건의 피의자를 맨손으로 제압하고 추가 피해를 막은 한국인 항해사의 용기 있고 현명한 대처가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부산해양경비안전서(해경)는 이번 살인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항해사 이모(50)씨를 영웅이라고 칭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습니다.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항해사 이씨는 당직 근무 선실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살육극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간 이씨는 광현호 조타실에서 참담함을 느꼈습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함께했던 선장이 온몸에 칼에 찔려 쓰러져 있었고, 조타실은 유혈이 낭자했습니다.
이씨가 응급조치를 했지만, 선장은 이미 피를 너무 많이 흘린 뒤였습니다.
이씨는 조타실에서 나가려다가 칼을 든 베트남 선원 V(32)씨와 맞닥뜨렸습니다.
온몸에 피가 묻은 V씨는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살인사건이 났다는 소식에 배에는 피의자 2명을 제외한 나머지 인도네시아·베트남 선원들은 모두 창고나 선실안으로 숨은 채 문을 꼭 걸어 잠근 상태였습니다.
V씨는 이씨에게 손으로 목을 긋는 표시를 하며 칼로 덤비라는 표시를 반복했습니다.
위협을 느낀 이씨는 잠시 물러났다가 흉기를 든 V씨의 손을 순간적으로 잡은 채 발을 걸어 쓰러뜨렸습니다.
선실에서 기관장을 무참히 살해한 뒤 조타실로 올라온 다른 피의자 B(32)씨도 이씨에게 달려들었습니다.
태권도 4단, 합기도 2단 등 상당한 무도 실력을 갖춘 이씨는 연쇄살인을 저지른 이들을 난투 끝에 제압했습니다.
뒤늦게 이성을 찾은 피의자는 피묻은 손으로 항해사 이씨의 얼굴을 쓸어내리며 참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씨는 불상사가 추가로 발생할 것을 우려해 빼앗은 칼을 조타실에 숨겨놨습니다.
이씨의 현명한 대처는 피의자 제압 이후 더 빛났습니다.
선장과 기관장이 숨진 이후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이씨는 피의자 2명을 감금하거나 포박할 경우 다른 선원의 반발이나 추가 난동이 있을 것으로 우려해 다른 선원으로 하여금 이들을 감시하게 했습니다.
사고 해역에서 가장 가까운 육지인 세이셸군도 빅토리아 항까지 1천㎞가 떨어져 최소 4일 이상 시간이 걸리는 점도 고려했습니다.
물리적인 신체 제약이 없었던 피의자들은 다른 선원과 함께 식사도 하고 일상적인 선상생활을 했습니다.
이씨는 살인 피의자들에게 유화책도 폈습니다.
범행과정에서 오른손을 다친 V씨에게 치료해주겠다며 붕대를 꽁꽁 깁스한 것처럼 감았습니다.
하지만 이는 팔을 못 쓰게 할 목적도 있었습니다.
선장과 기관장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자신도 죽이려 했던 살인 피의자들과 한배를 탄 이씨는 거의 잠을 자지 않고 조타실에서 배 운항을 맡았습니다.
다시 피의자들이 범행을 저지를 수도 있었고 다른 선원까지 동참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베트남어와 인도네시아어를 잘 알지 못한 이씨는 외국인 선원들의 대화내용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극도의 긴장감과 공포심을 견뎌야 했습니다.
이씨는 회식 뒤 살인사건이 발생한 점을 우려해 배에 남은 술을 모조리 바다에 버렸습니다.
이씨는 살인 피의자 2명과 인도네시아·베트남 선원 13명 사이에서 서로를 견제하는 아슬아슬하고 외로운 줄타기를 한 셈이었습니다.
이씨는 해경·선사와 수시로 위성전화를 하며 선내 동향을 알렸습니다.
이렇게 4일간의 살인 피의자들과 불안한 동행을 한 이씨는 빅토리아 항 도착 전 도선사와 함께 기습적으로 배에 해경 수사팀이 올라타 광현호를 장악하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습니다.
피의자 2명과 함께 생활한 나머지 외국인 선원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이제 살았다"며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습니다.
해경 관계자는 "광기 어린 살인현장에서 홀로 피의자를 제압하고 4일간 안전하게 배를 운항한 것은 그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칭송했습니다.
이씨는 지난달 27일 참고인 조사를 받으러 입국해 "저는 일등 항해사로서 배에서 저의 책무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는 말로 그동안의 심경을 대신했습니다.
해경은 피의자 검거에 혁혁한 공로를 세운 이씨에게 포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MBN 뉴스센터 /mbnreporter01@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