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건강
6.25 전쟁 66주년…다시 벌어지면 안 되는 ‘비극의 역사’
입력 2016-06-25 00:46 
하나의 한반도가 둘로 나뉘게 된 6.25 한국전쟁이 66주년을 맞이했다.

1945년 8월15일 일제의 억압에서 해방되고 광복의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시, 38 도선을 경계로 남과 북이 미소 양군이 분할 진주함으로써 국토가 분단되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북한 전역은 1949년 초부터 전시체제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북한은 병력보충을 위한 인적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각도에 민청훈련소를 설치하여 청장년을 훈련시키는 한편, 고급중학 이상의 모든 학교에 배속장교를 두어 학생들을 훈련시켰다. 그해 2월 말에는 적진돌입 및 적 배후 침투를 위한 보전포합동훈련을 실시하였으며, 1950년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남한 전역의 지형을 연구, 이를 토대로 훈련을 계속했다.

북한의 남침준비가 완료되자 소련 군사고문단은 1950년 6월 개전에 임박하여 북한에서 철수함으로써 남침기도를 은폐하기도 했다.

북한군은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경 서해안의 옹진반도로부터 동해안에 이르는 38선 전역에 걸쳐 국군의 방어진지에 맹렬한 포화를 집중시키면서 기습공격을 개시했다.

당시 국군은 노동절(5월1일), 국회의원 선거(5월30일), 북한의 평화공세 등 일련의 주요사태를 전후하여 오랫동안 비상근무를 계속해 온 만큼 경계태세가 이완된 상태였다. 특히 북한의 평화공세에 대비해 하달되었던 비상경계령이 6월23일 24시를 기해 해제, 병력의 1/3 이상이 외출 중인 상태에서 기습공격을 받으면서 피해는 더욱 컸다.

동족상잔의 비극인 6 ·25전쟁은 3년간 이어졌으며, 이는 남북한을 막론하고 전국토를 폐허로 만들뿐 아니라, 막대한 인명피해를 냈다. 전투병력의 손실만 해도 유엔군이 한국군을 포함하여 18만 명이 생명을 잃었고, 공산군측에서는 북한군 52만 명, 중공군 90만 명의 병력을 잃었다. 대한민국의 경우 99만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

온라인 이슈팀@mkcultu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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