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나흘 후면 문을 닫지만 이런 사실을 잘 모르는 듯 중국인 관광객들은 ‘쇼핑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한국 유명 화장품 가게에는 10여명이 넘는 고객들이 줄을 서있었고 세일 간판이 붙은 가방, 선글라스 매장에도 손님들이 북적거렸다. 매장에서 만난 한 중국인 관광객 왕샤오쯔 씨는 곧 문을 닫는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며 시설이 이렇게 깨끗하고 좋은데 왜 문을 닫느냐”고 반문했다.
# 같은날 오전 11시 동대문에 위치한 두타면세점 D6층. 패션과 가죽, 액세서리 매장이 모여있는 이곳은 얼핏 봐도 손님이 10명을 채 넘지 않았다. 직원 수가 20여명 정도임을 감안하면 직원 2명이 손님 1명을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손님을 응대하는 일부 직원 외에 나머지 직원들은 언제 찾아올지 모를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매출 기준 국내 3위, 면적 기준 국내 2위로 서울 강남권을 대표하는 면세점이었던 월드타워점이 오는 26일 영업을 공식 종료한다. 1989년 잠실 롯데월드점으로 시작한 이후 27년만에 문을 닫게 되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면세점 특허를 두산 두타면세점에 빼앗겼기 때문이다.
영업종료를 코앞에 두고 있지만 22일 찾은 월드타워점은 여전히 중국인 관광객들로 붐볐다. 매장 곳곳에 자리잡은 ‘땡큐(Thank you) 세일 간판을 보지 않는다면 영업종료 사실을 눈치채기 쉽지 않을 정도였다. 지난해 6000억원이 넘는 매출실적을 기록한 월드타워점은 일평균 매출이 20억원에 달하지만, 26일 영업종료를 앞두고 재고 소진 등을 위해 해외 명품 잡화부터 보석·선글라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브랜드 제품들을 최대 60% 할인해 판매하고 있다.
월드타워점이 문을 닫게 되면서 롯데면세점이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고용안정이다. 150명의 정직원은 유급휴가 제도를 실시하기로 했다. 올해 연말 재오픈을 가정해 남은 6개월 중 3개월은 타 점포에서 근무하고 3개월은 휴직을 하는 방식이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유급휴가 기간 동안 기존 월급의 70%를 제공하고 원하는 교육과정 비용을 지원해줄 방침”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롯데 정규직보다 상대적으로 환경이 열악한 브랜드 소속 판촉직원들이다. 월드타워점에는 약 1000명의 판촉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임시적으로 새로 오픈한 신규면세점 매장으로 이동하거나 다른 롯데면세점 점포 매장으로 옮겨가게 된다. 문제는 월드타워점에만 입점해있는 브랜드들이다. 중소 화장품 브랜드인 아이소이 등 10여개 매장은 국내 면세점 중 월드타워에서만 영업을 하고 있다. 롯데면세점 측은 이들 브랜드의 경우 소공점과 코엑스점에 팝업점포를 개설해 고용을 최대한 유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롯데 측이 이같은 고용안정 대책을 내놨지만 직원들의 불안감은 여전했다. 매장에서 만난 한 매니저는 직원들의 3분의 2는 결혼해서 가정을 가지고 있고 잠실 근처에서 오랜 기간 정착해 살았는데 막상 다른 곳으로 이동된다고 하니 답답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 다른 직원은 회사측은 연말에 월드타워점이 특허를 받으면 다시 내 직장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하는데 검찰 수사로 특허 획득이 불확실해진 것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월드타워가 문을 닫게 되면서 롯데 월드타워와 롯데월드어드밴처 등도 직접적인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롯데월드몰 매출의 절반이 면세점에서 발생하고 면세점을 방문한 고객들이 대부분 롯데월드어드밴처를 찾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롯데물산 관계자는 월드타워 를 방문하는 외국인은 월 평균13만명이며 이중 10만명이 면세점을 방문한다”며 면세점이 문을 닫아 집객효과가 사라지면 월드타워가 국내 관광 랜드마크로 자리잡는데도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른바 홍종학법과 관세청이 합작해 만든 비극적 결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1년 8개월 전에 잠실점에서 이전오픈하면서 최고의 시설을 구비했을 뿐 아니라 잠실 관광시대를 열며 국내 3위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월드타워점 특허를 거둬들여 유통 경험이 거의 없는 두산에 넘겨준 것 자체가 ‘상식 밖의 결정이라는 것이다.
실제 지난 달 문을 열어 오픈 한달 째를 맞은 두타면세점은 여전히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두타면세점은 손님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밤 10시~새벽 2시까지 쇼핑객들에게 10% 추가 할인혜택을 제공하고, 구매금액별로 선불카드를 증정하는 등 이벤트를 지속하고 있지만, 좀처럼 효과를 보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물론 오픈 초기에 비하면 두타면세점의 사정은 조금 나아진 편이다. 한때 일평균 매출액이 1억원을 오갔지만, 최근들어서는 3억~4억원까지 올라왔다는 게 두타면세점의 설명이다. 두타면세점 관계자는 아직 오픈 초기 단계이고 브랜드가 모두 입점되지 않았다”며 7월 중으로 설화수, 헤라 등 주요 화장품을 비롯해 주얼리·시계브랜드가 입점하면 실적이 본격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일선 기자 / 최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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