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첨예한 갈등 국가시설, 선진국은 ‘과학·소통·수용’ 3원칙
입력 2016-06-19 17:17 

지난 10일(현지시간) 핀란드 수도인 헬싱키에서 북서쪽으로 차량으로 3시간 정도 달렸다. 인구 6000명의 작은 도시인 ‘에우라요키시(市)가 드디어 나타났다. 무성한 나무 사이로 터 놓은 2차선 도로를 통해 작은 섬인 ‘오킬로토에 들어서자 축구장 크기만한 부지에서 트럭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2020년부터 가동될 예정인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시설 공사현장이다.
지난해 11월, 핀란드 정부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전에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를 영구히 묻을 수 있는 시설에 대한 승인을 내렸다. 2020년부터 핀란드내 5기의 원전에서 배출되는 사용후핵연료는 이곳으로 옮겨진 뒤 10만년 동안 영구처분에 들어간다.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 시위가 있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현장은 평화로왔다. 시설관리기관인 ‘포시바의 에르키 팔로넨 수석 부사장은 80년대초반 시설 설립 결정이 나온 후부터 철저히 과학적으로 조사와 부지선정을 진행하고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며 소통한다는 원칙을 세웠다”며 20년이상 이 원칙을 지켰기 때문에 지역사회도 국가적 결정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철저하게 과학적으로 접근
핀란드는 원전이 처음 가동되던 1978년부터 사용후핵연료 처리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이때부터 핀란드 지질조사소(GTK)는 핀란드 전역에 대한 지질 조사를 시작했고 1983년, 핵연료를 땅에 묻어 영구처분 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안전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1984년 GTK는 162개의 가능 지역을 선별한 뒤 다시 61개로 추렸다.

초기부터 조사에 참여했던 티모 루스키니에니 GTK 지질사용및환경팀장은 엄격한 기준을 먼저 정한 뒤 미치지 못한 곳을 하나씩 제외해 나갔다”고 말했다. GTK는 균열이 있거나 지하수의 흐름이 많은 곳, 지진과 같은 외부의 충격에 약한 곳을 제외했다.
10만년후 지구 해수면이 바뀌어도 인류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부지를 찾는다는 목표를 세우고 조사가 진행됐다. GTK는 추가 조사를 거쳐 가로 세로 3km 크기의 지역 101곳을 선별했다. 이중 가장 안정적으로 보이는 부지 5곳을 선정해 1987년부터 추가 분석을 진행했다. 이 결과를 토대로 2000년 올킬로오투섬이 최종 선정됐다. 선정 후에는 ‘온칼로라는 지하연구시설을 건설해 마지막 검증 연구를 진행했다. 타당하다는 결론이 나오고서야 지난해 11월 올킬로오투섬은 최종 후보지로 승인 허가를 받았다.
후보를 압축해가는 결정은 모두 과학적 연구를 토대로 이뤄졌다. 2001년 5월 핀란드 국회는 이곳으로 부지를 결정하는 정부안을 통과시켰다. 199명의 의원중 찬성은 159명, 반대 3명, 기권 37명이었다.
녹색당 또한 찬성표를 던졌다. 원전을 반대하는 정치적 노선에도 불구하고 방폐장의 필요성과 부지선정의 정당성에 대한 과학적 결정을 거스를 수 없었던 것이다. 루스키니에니 팀장은 철저히 정치적 요소를 배제한 결과, 결정을 내릴 때는 명확하게 진행됐다”고 말했다.

◆조사과정 투명공개···반대의견은 철저검증
GTK는 1978년 연구를 시작하면서 모든 정보를 공개했다. 지금도 GTK가 연구한 모든 자료는 인터넷을 통해 열람할 수 있다. 진행과정에서 반대되는 연구나 의견을 내는 과학자들도 적지 않았다. 루스키니에니 팀장은 반대는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라며 전 세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제연구그룹을 만들어 반론에 대해 토론하고 검증하며 소통을 이어갔다”고 덧붙였다. 세포 팔루마키 GTK 지질사용및환경팀 연구원은 질문이 들어오면 타당한 근거를 토대로 답변하고 오해하는 부분은 대화로 풀어나갔다”며 이 과정도 연구자들끼리만 자료를 공유하지 않고 일반에 공개했다”고 말했다.
과학적 조사가 이뤄졌지만 이를 주민들에게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포시바가 GTK와 주민들 사이의 소통을 도왔다. 포시바는 1990년대 후반, 5개 후보지에 사무소를 열고 지역 주민들과 창구를 마련했다. 팔로넨 수석 부사장은 주민 설명을 일방통행식으로 내용만 전달하려 해서는 안된다”며 충분히 이해한 후 이를 토대로 신뢰가 생길 때까지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했다”고 덧붙였다.

◆소통은 결국 수용으로···
20여년에 걸쳐 과학적 조사와 소통으로 이어가며 최적지로 선정되자 에우라요키 지역은 오히려 먼저 손을 내밀었다. 에우라요키 시의회는 처분장 유치에 대해 20대 7로 찬성을 결정한 것이다. 1994년 개정된 핀란드 원자력법은 주민이 반대하는 지역에는 영구히 건설하지 않는다”라는 조항을 명문화했다. 에우라요키 주민들은 충분히 반대권을 행사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우리에게 와달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 결정이 내려지자 정부안의 최종 결정, 핀란드 의회통과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김규한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원장은 첨예한 갈등을 빚는 국가시설의 부지선정 작업은 철저하게 과학적인 접근과 이를 통한 소통이 전제되어야 한다”며 정부와 시민단체, 지역주민 모두 한발 양보하면서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번 주중 한국은 영남권 신공항 입지를 결정짓는다. 신공항의 경우, 서로 유치하려고 하는 선호시설이라는 점에서 핀란드 사용후핵연료 처리시설과는 상황이 정반대다. 하지만 지역간 갈등을 초래할수 있는 국가시설의 입지선정이라는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었다.
[에우라요키 = 원호섭 기자]

■ <용어설명>
▷ 사용후핵연료 : 원자력발전소에서 연료로 사용된 뒤 배출되는 핵연료. 우라늄과 플라토늄 등 강한 방사성 물질이 포함돼 있다. 방사선이 강하고 높은 열을 방출하기 때문에 사람이 접근할 수 없으며 영구적으로 폐기해야 한다. 방사선량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기간인 ‘반감기는 수백년~수만년으로 알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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