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일 동안 진행됐던 용선료 재조정 협상이 최종적으로 마무리됐다.
매년 1조원 가까이 지불되던 용선료는 현 시세보다 월등히 비싼데다 매출과 직결되는 운임료는 바닥으로 떨어진 현 상황에서 현대상선은 배를 띄우는 자체가 적자인 구조였다. 용선료 인하가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단초였고, 결국 법정관리 위기에 직면해서야 얽히고 설킨 실타래를 풀어내며 기업회생의 불씨를 다시 살릴 수 있게 됐다.
현대상선과 산업은행은 배를 빌려줬던 해외 선주 22곳이 앞으로 3년 6개월 동안 받아야 할 용선료 2조5300억원 가운데 21% 가량인 약 5400억원을 지분이나 부채 형태로 전환해주는데 모두 동의했다고 10일 밝혔다. 조정액 중 절반 가량은 출자전환을 해 현대상선 주식으로 받고, 나머지 금액은 부채로 전환해 2022년부터 5년간 나눠서 받는 형태다. 다만 선사별로 용선 규모와 남아있는 계약 시기 등이 달라 각기 다른 옵션이 적용됐다.
협상과정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컨테이너 용선료 조정율은 20%, 벌크선은 25%가 적용됐다”며 오늘(10일) 아침 컨테이너 선주 5곳으로부터 모두 계약서에 사인을 받았고, 다음 주부터는 나머지 벌크선주들과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용선료 조정에는 모두 동의한 상태이기 때문에 조정비율이나 변수는 없을 것”이라며 6월말께 최종적으로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현대상선이 운영하고 있는 선박 116척 중 용선은 총 84척(컨테이너선 38척, 벌크선 46척)이다. 컨테이너선은 다나오스, 나비오스 등 그리스 선주를 비롯 영국계 조디악 등 컨테이너 선주 5곳으로부터 빌렸는데 전체 용선료의 70% 가량이 이들에게 지불된다. 문제는 2008년 전후 해운업이 호황이던 시절 빌린 배들이다보니 현재 시세에 비해 30~40% 가량 용선료가 높다는 데 있었다.
고액의 용선료는 4조 80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부채와 함께 현대상선을 유동성 위기로 몰고갔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으로 현대상선은 매출액이 5조 7686억원 이었는데, 이 중 9758억원이 용선료였다. 벌어들이는 돈의 17% 가량이 용선료로 빠져나가 결국 그 해 2535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그 이전인 2011년부터 2014년까지도 3574억원, 5096억원, 3627억원, 2350억원씩 매년 적자를 기록하는 동안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러다보니 현대상선이 지난 3월 산업은행 등 1금융권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했지만, 채권단은 사채 재조정과 함께 용선료 인하를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채권단에서 빌린 돈이 1조 2000억원에 불과해 채권단 의지만으로 현대상선 유동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데다, 향후 자금을 투입하더라도 매년 고정적으로 지출하는 용선료로는 현대상선을 재기 시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판단에서다.
협상은 시작부터 만만치 않았다. 2월 초 용선료 협상 태스크포스팀을 꾸린 현대상선은 2월 20일 영국으로 출국해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했다. IMF 외환 위기때 우리나라 외채협상단의 법률고문이었던 마크 워커 변호사와 당시 재정경제원 국제금융과장이었던 변양호 전 보고펀드 대표도 협상단에 투입됐다. 보름간 1차 협상을 마치고 돌아온 협상팀은 출국전 세워뒀던 인하 목표치와 해외 선주들이 제시한 수치가 예상보다 격차가 커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그리스 선주들이 첫 대면 협상장에 들고나온 수치는 한자리 수”라며 격차를 줄여나가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제시한 용선료 협상 데드라인인 5월 중순이 돼서도 가닥이 잡히지 않자 결국 현대상선은 컨테이너선주들을 서울로 불러 최종담판에 나섰다. 처음부터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애를 태웠던 영국계 선주 조디악은 이 자리에도 나오지 않아 ‘협상 결렬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결국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직접 에얄 오퍼 조디악 회장에게 편지를 보내는 등 분위기 전환에 나섰고, 등을 돌리던 조디악도 결국 현대상선의 용선료 조정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8043억원 규모 사채 재조정에 이어 용선료 협상까지 마무리 지은 상황에서 현대상선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글로벌 해운동맹 가입이다. 내년 4월 3대 얼라이언스 체제(2M, 오션, THE)로 새롭게 재편될 글로벌 해운동맹에서 현대상선은 배제돼 있는데, 그 동안 회사가 기업 존폐의 위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법정관리행을 일단 피하게 되면서 위기에선 벗어났고, 현대상선이 가입을 추진하고 있는 THE얼라이언스 입장에서도 경쟁력 확보를 위해선 배 한척이라도 절실한 상황이기 때문에 큰 무리없이 합류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달 중 얼라이언스 합류를 확정하면 이르면 7월께 현대상선은 현대그룹에서 분리돼고 산업은행 등 채권단을 대주주로 맞이하게 된다.
[윤진호 기자 / 노승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