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신주쿠 빌딩숲에 자리잡은 도쿄도청 전망대(202m)에서 후지산까지는 직선거리로 100km 정도 떨어져있다. 꽤 먼거리다. 그런데도 전망대에 올라 서쪽을 바라보면 저 멀리 후지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전망대를 찾은 한국 관광객들은 황사때문에 잿빛 하늘이 일상화된 서울과는 달리 도쿄 하늘이 맑다”며 탄성을 지르곤 한다. 실제로 관광객들이 도쿄 도심을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쇼핑을 해도 와이셔츠 깃이 누렇게 더러워지는 일은 웬만해선 없다.
도쿄는 서울과는 달리 중국발(發) 황사 안전지대다. 혹자는 미세먼지를 단숨에 날려버릴 만큼 강력한 강풍이 태평양에서 불어오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1960~70년대 뿌연 공장 연기와 매연으로 오염된 도쿄 전경을 찍은 사진을 봤다면 지금의 청명한 하늘이 ‘자연의 혜택만이 아님을 곧바로 알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도쿄 바로 옆 가와사키와 요코하마를 잇는 게이힌 공업단지는 일본 최대 산업단지다. 도쿄만을 가로지른 치바시에도 해안선을 따라 거대한 공장굴뚝들이 늘어서있다. 공장, 발전소, 빌딩 등에서 배출되는 매연이 도쿄와 수도권을 뒤덮었다. 1970~80년대 도쿄의 대기오염 대책은 공장, 발전소, 빌딩 등에서 쏟아져 나오는 일산화유황, 이산화탄소 등 오염물질을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공장, 작업소에서 사용하는 중유 유황성분 규제부터 시작해 전방위적인 지도와 감독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게이힌 공업단지는 일본 최대공업단지 중 하나지만 오늘날 공해물질 배출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줄었다.
공장, 발전소, 빌딩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을 어느 정도 잡았다고 판단한 도쿄도는 2000년대 들어 공해 주범 중 하나인 자동차, 특히 노후 디젤차에 대한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지난 1999년 여름, 이시하라 당시 도쿄도지사는 도쿄 공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자동차 공해대책 논의에 들어갔다. 1년간의 갑론을박 뒤에 2000년말 도쿄도는 3년후인 2003년 10월부터 노후 디젤차 운행금지 등을 포함한 ‘디젤차 NO작전 시행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등록된 지 7년 이상 지난 트럭, 버스, 냉동냉장차 등의 디젤차가 배출가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원칙적으로 운행을 중단시키고, 50만엔 이하의 벌금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미세먼지 등 오염물질 대처가 늦었다고 판단한 이시하라 지사가 직접 강도높은 대책을 진두지휘했다.
경유차 규제 시행 1년을 앞둔 지난 2002년 9월 도쿄도와 자동차공업회가 매연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만난 회의장에서 이시하라 도지사는 시커먼 매연으로 가득찬 페트병을 꺼내들었다. 이시하라 지사는 페트병을 들어보이며 (검은 연기를 내뿜는) 규제 대상 디젤차가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며 지금부터 위반 디젤차 일소작전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때부터 도쿄도는 인근 가나가와현, 사이타마현, 치바현과 합동으로 규정 위반 디젤차 대책을 추진해갔다. 도쿄도는 디젤차 감시를 맡은 ‘자동차G맨 75명을 20대 이상의 자동차를 사용하는 3700여개 사업장에 보내 노후 경유차 퇴출을 독려했다. 중소기업 등을 둘며 약 320차례 설명회를 열어 협조를 요청하고, 상장사들을 중심으로 규제도입 정도를 파악했다. 검은 연기를 내뿜는 차량에 대한 시민들의 신고를 독려하기 위해 ‘흑연(黑燃) 스톱 110번이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동시에 보조금과 융자자금 지원을 통해 노후 디젤차를 바꾸거나 미세먼지 저감장치를 달도록 유도했다. 2001년~2003년까지 약 5만대의 차량에 90억엔의 자금을 지원해 저감장치를 달도록 했다. 또 580억엔을 융자해줘 1만2000대의 노후경유차량을 교체하도록 했다.
이처럼 총력전을 편 덕분에 2003년 10월 ‘디젤차 NO작전은 예정대로 시행됐다. 도쿄도에 따르면 시행후 2년 후인 2005년말까지 20만대를 넘었던 규제대상 노후경유차량 대부분이 교체되거나 미세먼지 저감장치를 달면서 규제대상은 7000대로 확 줄어들었다. ‘디젤차 NO 작전은 버스, 트럭 뿐 아니라 디젤승용차 판매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2006년 일본 자동차시장에서 디젤승용차 판매대수는 1000대 미만으로 떨어졌다. 거의 팔리지 않은 셈이다. 세계 최대 자동차메이커 도요타를 필두로 일본 자동차업체들은 연비가 좋은 경차와 전기·휘발유를 함께 사용하는 하이브리드차 등 친환경차 개발에 올인했다. 때문에 현재 일본 승용차 판매량 중 40%는 경차가 차지한다. 도요타 프리우스를 중심으로 한 하이브리차량 판매도 꾸준히 늘고 있다.
하지만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와중에도 지난해 디젤승용차 판매대수는 15만대까지 늘어나면 승용차시장 점유율 5%대까지 올라섰다. 결국 문제는 공해물질을 뿜어대는 노후 디젤차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경유는 여전히 휘발유보다 약 20% 가까이 싸게 팔리고 있다. 1일 일본석유정보센터에 따르면 5월 전국 휘발유 평균가격은 리터당 119.2엔, 경유는 110.5엔으로 조사됐다. 세금만 놓고 보면 휘발유는 리터당 53.8엔, 경유는 32.1엔이다. 일본당국은 경유값을 올려 경유차를 억제하겠다는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이다.
공장, 빌딩 등을 대상으로 한 매연 규제와 함께 노후 디젤차 대책이 맞물리면서 도쿄 도심 공기질은 한층 더 맑아졌다. 도쿄도는 2009년부터 초미세먼지까지 실시간 측정하기 위해 도쿄 전역에 촘촘한 감시망을 구축했다. 현재 도쿄도내에는 모두 81곳에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측정기기가 설치돼 먼지량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시간 단위로 측정량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일정 수준을 넘으면 야외활동을 즉시 중단하도록 조치한다. 2001년 연중 평균치가 35㎍/㎥였던 초미세먼지는 10년 만에 15㎍/㎥까지 절반 이상으로 크게 줄었다.
도쿄도는 2011년부터 ‘저공해, 저연비차 제도를 시행, 배기가스와 미세먼지를 기존보다 75% 이상 줄이는 등 대기질을 추가적으로 개선하는 프로젝트에 돌입한 상태다. 휘발유, 디젤차 논란을 벗어나 아예 배기가스를 배출하지 않거나 크게 줄인 수소자동차(연료전지차), 전기차, 하이브리드차량을 크게 늘리는게 핵심이다. 도쿄도는 200대 이상의 자동차를 사용하는 사업자들은 2021년까지 저공해차·저연비차 도입비율을 전체 차량의 15%로 늘리도록 했다. 2005년에 비해 배출가스를 75% 줄이고, 연비는 20% 이상 향상시킨 저공해·저연비차량을 일정부분 의무적으로 도입하라는 것이다. 특히 배기가스가 전혀 나오지 않는 수소차와 전기차를 도입하면 저공해차 3대를 도입한 것으로 간주하는 등 배기가스 제로 차량 도입을 독려하고 있다.
일본 정부와 지자체는 공해물질이 아예 나오지 않는 연료전지차 등 수소경제를 2020년 도쿄 올림픽 때까지 본궤도에 올려놓을 방침이다. 도요타는 연료전지차 관련 특허를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 시장을 키우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보조금도 증가추세다. 723만엔짜리 수소차를 구입할 경우, 국가(202만엔)와 지자체(101만엔) 보조금을 지원 받을 수 있어 소비자는 420만엔만 내면 된다. 일본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수소 경제는 차량은 물론 호텔, 컨벤션 등 대형 복합단지에 들어가는 전기 발전용으로 확대될 예정이어서 도쿄 대기환경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