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철학이 담긴 한글 서예의 미, 프랑스를 물들이다
입력 2016-06-01 15:38  | 수정 2016-06-02 15:04

영국의 비평가 허버트 리드는 서예는 중국 예술의 기본”이라고 했다. 김홍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도 서예는 캐다가 그만둔 금광과 같다”는 평가를 했다. 그만큼 서예는 예술의 근간을 이룰 뿐더러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문자는 가장 단순한 조형이자 고대로부터 가장 알맞은 비율로 구성돼 이어져 오고 있다.
이는 상형문자에서 출발한 한자만이 아니다.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 역시 한자에 비해 다소 밋밋하게 보일지언정 다양한 변형과 구성이 가능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서예가 소헌 정도준(68) 선생은 한자 뿐만 아니라 한글 서예의 달인이다. 올해 한국과 프랑스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 파리 인근 사누아시 우트리요-발라동 미술관에서 17번째 해외 개인전을 연다.
총 50여점이 걸리는 이 전시에서 그는 대표작 ‘천지인을 비롯해 확장된 자음 시리즈를 선보인다. 그 중 ‘사라진 자음들은 처음 창제 당시 사용됐지만 지금은 사라진 3자를 회화적으로 담아냈다. ‘천지인은 하늘(·), 땅(ㅡ), 사람(ㅣ)을 택해 우주의 기본 요소 속에 인간 모습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한글 속에서 우주와 자연의 본질을 녹였다는 점에서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14개 자음을 한 화면에 쌓아 올린 ‘한글 자음도 독특한 조형성을 자랑한다. 자음들이 서로 견고히 받치고 끌어주고 밀어내며 먹의 농담과 번짐 등을 구조적 조형으로 일군 서예 작품이다. 화면에 마치 건물을 지어낸 듯 직접 물들인 화선지에 채우고 풀어나가는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였다.
한글의 모음이 철학적이라면, 14개 자음은 다양한 구성과 변형이 가능해 조형적으로 활용하기 좋다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지난해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도 전시를 열었던 그는 1년 만에 다시 해외 전시를 연다. 여느 현대미술 작가 못지 않게 해외 전시가 잇따르고 있다. 프랑스에서 개인전은 2012년 이후 4년 만이다.
그가 프랑스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먹은 검은색 한색이지만 밝은 검정부터 어두운 검정까지 무한해요. 서예가 가지는 본질부터 출발해 한글 서예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죠. 특히 자음과 모음에 기초한 작업을 통해 글자는 읽는 게 아니라 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조명하고 싶어요. 결국 회화와 서예의 장르를 무너뜨리고 싶어요.”
소헌 정도준은 2013년 국보 제1호 숭례문 상량문과 ‘뜬창방 휘호를 해 주목을 받았다. 진주 촉석루, 합천 해인사 해인총림 등 문화재 휘호를 남긴 서예가 정현복 선생 차남이다. 1982년 국전(대한민국 미술전람회)이 대한민국미술대전으로 바뀌던 첫해에 전서 작품인 ‘조춘(早春)을 출품해 대상을 차지하며 서단에 데뷔했다. 전시는 18일부터 7월 17일까지.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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