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낮엔 등산, 밤엔 대리운전`…사무직이란 이유만으로
입력 2016-06-01 10:38 

출근시간, 어깨가 축 늘어진 50대 초반 A씨과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채 야산으로 향한다.
모두들 직장으로 가야 하는 그 시간 A씨는 직장과 반대 방향인 산으로 간 것이다. 그는 아직 아내에게 회사를 그만뒀다는 말을 못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아침 출근 시간이면 집에서 나온다. 하지만 딱히 갈곳은 없다.
그는 최근 조선업황 악화로 대형 조선사에서 사무직 과장으로 일하다 희망퇴직했다.
40대 후반 사무직 과장이던 B씨는 퇴직후 생계가 막막해 대리운전 일을 준비 중이다. 귀농도 생각해봤지만 부모님 걱정에 그것마저 포기했다.

사무직에 비해 생산직 퇴직자는 그나마 여유가 있다. 아무래도 기술직이다보니 사무직에 비해 재취업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생산직 기감(부장급)으로 일하다 희망퇴직한 50대 중반의 C씨는 베테랑 용접사여서 정부에서 주는 6개월 치 실업급여를 받으며, 차츰 일자리를 알아볼 생각이다. 그가 다소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은 일부 조선소나 석유화학 플랜트 업종에 자신과 같은 고급 용접 기술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사무직은 상당수 생산직보다 빨리 출근하고, 밤늦게까지 일하지만 과장급 이상은 연봉계약제로 전환돼 초과근로 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생산직은 정시 출근하고, 야간에 일한 만큼 수당을 받았다.
희망퇴직을 신청할 때에도 사무직은 ‘타의적인 측면이 강하지만 생산직은 ‘자의적인 면도 있다고 퇴직자들은 전했다.
현대중공업은 5월에 과장급 이상 직원으로부터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희망퇴직 위로금은 약정임금 40개월 치, 고등학교와 대학생 자녀 학자금 선지급 등이었다. 퇴직 후 일자리 찾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생산직은 대부분 자발적으로 신청서를 냈다.
사무직은 신청자 수가 일정 기준에 모자라 일부 부서는 인사고과 평점을 제시하는 등 분위기가 매우 험악했다는 후문이다.
사무직 퇴직 근로자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회사의 재취업 지원센터를 찾지만 이마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재취업 지원센터를 설립하지만 교육프로그램이 퇴직 후 생활설계, 창업과 재취업 방법, 자격증 소개, 심리 상담, 건강, 재무 등 기술교육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 생애설계지원센터는 지난해 3월부터 창업과 재취업 지원, 미래설계 등 총 40시간의 과정을 정규직 퇴직자를 대상으로 운영했다.
현대중공업 소재지 관할 울산 동구청은 내년 2월에 퇴직자지원센터를 연다.
이 센터는 당초 베이비붐 세대 퇴직자를 위한 시설로 계획했으나 최근 현대중공업이 인력구조조정을 단행하자 이 회사 원하청 퇴직 근로자, 일반 기업 근로자까지 확대해 교육할 예정이다. 교육 내용이 기술이 아니라 생애설계, 재취업, 창업 상담 등이어서 퇴직자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지 미지수다.
국비로 운영되는 한국 폴리텍대학 울산캠퍼스의 실업자 기술 과정은 이들 센터보다 체계를 잘 갖췄다.
국비 지원을 받아 무료로 용접·전기·기계설계 등 전문 기술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무료 지원 과정이 2∼3개월이면 끝나, 사무직 퇴직자가 단기간 배운 기술로 재취업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디지털뉴스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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