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덕수궁 전각 평면도 발견…상세한 1915년 덕수궁의 실황
입력 2016-05-31 09:23 
사진=국가기록원 제공
덕수궁 전각 평면도 발견…상세한 1915년 덕수궁의 실황



100년 전 덕수궁의 전각을 실측하고 각종 정보를 정리한 자료인 '덕수궁원안'(德壽宮原案)이 발굴됐습니다.

장필구 동양미래대 교수는 국가기록원 대전기록관에 소장된 덕수궁원안을 소개한 논문 '1915년 덕수궁 실측자료의 기초 분석'을 최근 열린 한국건축역사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했다고 31일 밝혔습니다.

덕수궁은 본래 명칭이 경운궁(慶運宮)으로,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정궁(正宮)으로 사용됐습니다. 1904년 화재로 전각이 소실된 뒤 1906년 중건할 때까지 자재 목록과 주요 건물의 외관을 담은 '경운궁중건도감의궤'와 1938년 간행된 '덕수궁사'에 있는 1910년의 덕수궁 평면도가 전하지만, 다른 궁궐에 비해 기록이 부족한 편입니다.

장 교수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은 북궐도형, 동궐도형, 궁궐지 같은 자료가 있어서 전각의 기둥 간격과 높이까지 알 수 있지만, 덕수궁은 근대적 사료라고는 도면 한 장이 전부였다"고 설명했습니다.


덕수궁원안은 실측 보고서와 도면 159건으로 구성되며, 전각의 평면도와 실내 주요 기물의 목록이 자세히 수록돼 있습니다. 기둥 간격, 창호의 위치, 기단 크기, 바닥 재료 등도 덕수궁원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사 시점은 대부분 1915년 3∼4월이며, 조사자로는 궁내부 영선사 출신의 조한정을 비롯해 일본인 기술자 4명이 참가했습니다.

덕수궁원안과 오늘날 덕수궁의 전각을 비교하면 차이점이 발견됩니다.

예컨대 고종이 승하한 건물인 함녕전(咸寧殿)의 동쪽 온돌방은 현재 공간이 나뉘어 있지 않지만, 덕수궁원안에 따르면 세 개의 방으로 구분돼 있습니다.

또 동쪽 온돌방을 기준으로 동쪽과 북쪽에 있는 물림간(본채의 앞뒤나 좌우에 딸린 반 칸 너비의 칸)에 유리가 사용된 창호가 있고, 양탄자가 깔려 있던 사실도 확인됩니다.

함녕전 보고서에는 커튼, 전등, 수도전, 초인종, 석조 계단, 목제 계단의 개수도 모두 나와 있습니다.

덕수궁은 1930년대 일제가 공원화를 추진하면서 많은 전각이 훼손되거나 변경됐고, 이 과정에서 함녕전도 변화를 겪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와 함께 덕수궁원안에는 함녕전 행각 뒤편에 있었으나 지금은 멸실된 2층 건물인 구여당(九如堂)의 도면과 정보도 남아 있습니다.

다만 문화재청이 복원·정비할 계획인 선원전에 대한 자료는 없는 상태입니다.

장 교수는 "덕수궁원안은 일제가 조선 왕실의 재산을 감독하려는 의도에서 제작한 결과물로 학계에서 공개된 적이 없다"면서 "덕수궁의 복원 기준 연도인 1906년과 덕수궁원안의 출간 시점 사이에 다소 차이가 있지만, 1915년 덕수궁의 실황을 상세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말했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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