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올해 신년사에서 당대회를 통해 내놓겠다고 공언했던 미래의 ‘휘황한 설계도는 결국 나오지 않았다.
김 제1비서는 지난 6~7일에 걸친 제7차 노동당대회 중앙위원회 사업 총화(평가·결산) 보고에서 핵·경제 병진노선을 고집하며 ‘나홀로 행보를 본격화했다.
주민생활 향상을 위한 경제회생과 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한 전향적 구상은 이번 보고에 담기지 않았다. 김 제1비서는 이례적으로 직접 ‘비핵화와 ‘남북대화를 언급하는 등 다소 유화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동시에 핵·미사일 개발의지를 재차 강조하는 이율배반적 모습을 보였다.
그는 공화국(북한)은 책임있는 핵보유국”이라고 밝히면서 침략적인 적대세력이 핵으로 우리의 자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이미 천명한대로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국제사회 앞에 지닌 핵전파(핵확산) 방지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세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라고도 언급했다. 한반도 정세에 대해서도 조선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우선 북남 군사당국 사이의 대화와 협상이 필요하다고 인정한다”며 대화를 제안하는 뉘앙스의 발언도 내놨다.
그러나 김 제1비서는 제국주의의 핵위협과 전횡이 계속되는 한 경제·핵무력 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전략적 노선을 항구적으로 틀어쥐고 자위적 핵무력을 질량적으로 더욱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당대회 토론에 나선 북한 인공위성·장거리미사일 개발 책임자인 장창하 제2자연과학원(남측 국방과학연구소 격) 원장도 주체조선의 실용위성들을 더 많이, 더 높이, 더 통쾌하게 쏴올리겠다”고 말했다.
이는 북한이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은 일정 부분 고려하되 핵무력 증강을 통해 체재 안전을 보장받겠다는 핵심 전략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김 제1비서가 보고에서 언급한 ‘세계의 비핵화는 북한의 핵포기가 아닌 명실상부한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며 미국과 ‘핵군축 협상을 하겠다는 언급으로 해석된다. 일방적인 핵포기보다는 핵동결·비확산으로 의제를 설정해 이를 미국과의 ‘한반도 평화협정 논의 테이블에 함께 올리겠다는 뜻인 셈이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 제1비서가 내놓은 보고내용을 보면 기본 정책을 바꾼다든지 새로운 것을 내놓는다는지 하는 것은 전혀 없다”고 평가했다. 정 연구위원은 김 제1비서의 ‘비핵화 언급에 대해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들은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을 더욱 강력하게 시사했다고 보면 된다”고 강조했다.
김 제1비서가 이번 보고에서 남북관계에 대해 언급한 내용 가운데에서는 양측간 군사회담 필요성 관련 발언이 눈길을 끈다. 그는 현 시기 절박하게 나서는 문제는 북남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라며 (대북전단·심리전 등) 상대방을 자극하는 적대 행위들을 중지해야 한다”고 촉구하며 대화 가능성을 거론했다. 이어 북남관계의 현 파국상태는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얼마든지 극복해나갈 수 있다”며 보다 적극적인 모습도 보였다.
정부는 일단 김 제1비서의 비핵화와 남북대화 주장의 진정성을 회의적으로 판단하는 분위기다. 정부는 북한이 당대회 이후 김 제1비서가 말한 군사회담을 제안하더라도 선뜻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대북·안보 분야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는 북한의 비핵화가 아닌 ‘세계의 비핵화”라며 당대회에서 토론에 나선 군부 인사들의 발언은 김 제1비서의 발언과 상반되는 호전적인 것들이라 그대로 수용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로 당대회에서 토론에 나선 리명수 북한군 총참모장은 (김 제1비서가 명령만 내리면) 원수들의 정수리에 선군조선의 핵 뇌성을 터칠(터뜨릴) 것”이라며 청와대와 서울시 안의 반동통치 기관들은 물론 남반부 전지역의 주요 대상물을 두들겨 팰 위력한 타격수단이 이미 실전 배비(배치)됐다”고 위협했다.
다만 이날 김 제1비서의 언급에 대해 다소나마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도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최근 한반도에서 벌어진 긴장·대결 국면에서 김 제1비서의 대화 언급은 다소 유화적으로 볼수도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도 이같은 맥락에서 김 제1비서가 직접 ‘비핵화 표현을 사용한 점에 주목했다. 김 교수는 물론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 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지만 ‘세계의 비핵화라는 발언이 나오면서 북한이 당장 5차 핵실험을 강행할 가능성은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한편 김 제1비서가 보고에서 밝힌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한 내용은 기존 북한의 통일방안을 재확인하는 수준에서 다뤄졌다. 이번 당대회에 앞서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그가 이번에 기존 북측의 통일방안을 다소 수정한 새로운 내놓을 가능성도 제기됐었다. 하지만 의미있는 입장표명은 없었다.
김 제1비서는 보고에서 조국통일 3대헌장을 일관하게 틀어쥐고 통일의 앞길을 열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김 제1비서가 말한 ‘조국통일 3대헌장은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때 발표된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 △1980년 10월 발표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1993년에 나온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을 가리킨다.
[김성훈 기자 / 박의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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