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미리 만들어놓은 프로그램에 따라 기계적으로 투자판단을 내리는 로보어드바이저가 애널리스트와 정반대의 의견을 제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자산배분 뿐만 아니라 종목추천에 있어서도 서로 완전히 다른 처방을 내놓고 있다. 이세돌·알파고의 바둑 대국과 같은 인간 대 인공지능의 대결이 금융투자업계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셈이어서 업계와 투자자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 삼성증권은 ‘위험자산 비중 축소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신동석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난달 17일 도하 회의에서 원유 생산량 동결합의가 실패해 국제유가가 급락할 가능성이 커졌고 지난 3월 반등했던 주요국 제조업 지표가 혼조세로 전환됐다”며 향후 위안화 절하 압력이 재개되고 엔화 변동성이 확대될 우려가 있어 2분기에는 위험자산 비중을 축소하면서 리스크 관리에 중점을 두는게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로보어드바이저 전문업체인 쿼터백은 최근 주식 20%, 채권 60%, 금·은·원유·농산물 20%로 구성된 2분기 포트폴리오를 내놨다. 지난 1분기(채권 80%, 주식 10% 달러·금 10%)보다 위험자산 비중을 높여잡은 것이 특징이다. 채권 중에서도 미국 국고채 대신 신흥국 국채나 투자등급 회사채, 주식 중에서도 선진국 대신 아세안·남미 지역 신흥국 비중을 늘리라는 처방을 내렸다.
또 대표적 안전자산에 속하는 달러화 비중을 줄이라고 조언했다. 조홍래 쿼터백투자자문 이사는 최근 시장에서 쏟아져나온 각종 신호와 정보를 종합해 쿼터백 알고리즘 시스템이 내린 처방”이라며 아마도 지난 3월 이후 글로벌 악재가 사그라들면서 회사채나 신흥국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 비중을 더 늘려야 할 타이밍이라고 로봇이 해석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증권과 쿼터백이 이처럼 상이한 결과를 내린 것에 대해 금융투자업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아직 로보어드바이저의 수익성은 객관적으로 검증된 바 없다”며 쿼터백의 분석을 아직 신뢰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지만, 삼성증권이 애널리스트 의견을 종합해 자산배분 비율을 정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반응도 있다. 삼성증권 지산배분위원회에 소속된 개별 애널리스트들은 국내 최고의 실력자로 볼 수 있지만 이들의 의견을 취합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주관적인 의견이 개입되기 때문에 자산배분에 대한 최종 결론은 부정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로봇과 인간의 대립은 개별 종목에 대한 투자 의견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빈번하다. 지난달 28일 잠정실적을 발표한 유한양행이 대표적이다. 실적 발표 다음날 애널리스트들은 총 8개의 매수추천 리포트를 내놨다. 중립이나 매도 의견을 가진 리포트는 한 건도 없었다.
하지만 유안타증권의 종목추천 로보어드바이저인 티레이더는 같은 날 유한양행에 대해 과감하게 매도 의견을 내놨다. 예상됐던 실적이 나옴에 따라 차익을 실현하는 ‘큰 손들이 증가했고 이러한 흐름을 포착한 티레이더가 매도 신호를 낸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8일 유한양행의 종가는 30만6500원이었지만 지난 4일 28만5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4거래일만에 유한양행 주가가 6.9% 하락한 것이다. 이 기간 유한양행의 주가 움직임만 놓고 보면 티레이더의 신호가 좀더 정확했던 셈이다. 티레이더는 유한양행 뿐만 아니라 2000여개에 달하는 코스피·코스닥 종목 중 약 35%에 달하는 700개 종목에 대해 매도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성복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로보어드바이저의 신뢰성은 충분한 기간을 거쳐 검증받아야 한다”면서도 만일 계속해서 로보어드바이저가 애널리스트보다 정확한 진단을 내놓는다면 애널리스트의 입지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용환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