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이들을 만나봅니다. ‘멋있음 대신 ‘웃음을 택한 용기 있는 자들이 꿈꾸는 코미디는 어떤 모습일까요? 웃음 뒤에 가려진 이들의 열정과 고통, 비전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입니다. <편집자 주>
[MBN스타 유지혜 기자] 코미디언 이봉원, 그는 ‘박미선 남편이 아닌 콩트형 개그의 ‘원조였다.
최근 이봉원은 TV보다는 라디오에서 더 많이 활동하고 있다. 그런 이봉원을 TV에서 본 것 같단 느낌이 드는 건 바로 방송인 박미선의 남편이기 때문. 그는 박미선의 ‘철없는 남편으로 끊임없이 토크의 화두에 오른다. 하지만 그는 군사정권 시절 병영개그를 무대에 올린 사람이었고, 쓴 소리를 아끼지 않는 개그계 ‘큰 선배였다. 그런 이봉원이 이젠 ‘사극 연기에 도전한다.
◇ ‘동작그만의 ‘곰팽이를 기억하시나요
1984년 KBS 개그콘테스트 2기로 데뷔한 이봉원은 1991년 KBS ‘유머1번지의 ‘동작그만에서 ‘곰팽이 캐릭터로 많은 인기를 누렸다. ‘곰팽이는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이를 제대로 말 하지 못하고, 늘 선임들의 구박을 받았던 인물이다. 단순하고 극적인 바보 캐릭터가 유행하던 당시 코미디 무대에서는 눈에 띄는 캐릭터였다.
‘곰팽이라는 캐릭터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사람을 표방하는 캐릭터로, 공감을 일으켜 많은 인기를 누렸다. 15분이란 긴 호흡에도 3년간 장수하면서 이봉원이란 인물을 대중에 제대로 각인시킨 계기가 됐다.
2010년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이봉원은 잘 나가던 ‘동작그만이 인기 있었던 이유에 대해 당시 ‘동작 그만이 방송되던 때가 군사정권 때였는데 군사정권임에도 불구하고 군인을 다뤘다”며 일종의 금기사항을 다뤄 60만의 군인을 고정 팬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군인과 예비역들이 ‘공감을 할 수 있는 현실 기반 개그였던 것.
이봉원은 2015년 3월 코미디 콘서트 형식의 연극으로 ‘동작그만을 재탄생시켰다. 이상운과 ‘메기, ‘곰팽이 시절로 돌아간 이봉원은 80년대 콩트개그를 그리워하는 팬들에 향수를 선물하기도 했다.
◇ 시커먼스, 시커먼스, 시커먼시커먼 시커먼스~
그는 1987년 KBS2 ‘쇼 비디오 자키의 ‘시커먼스에서 장두석과 함께 콤비를 이뤄 또 다시 전성기를 누렸다. 시꺼먼 피부색에 한껏 부풀린 파마 머리를 하고 ‘시커먼스 시커먼스를 외치던 이봉원의 유행어는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이봉원은 ‘시커먼스를 회상하며 랩 개그의 시초”라고 말하기도 했다.
‘시커먼스는 원래 특집방송에서 ‘블랙 이글스라는 이름으로 선보였으나 인기를 얻고 곧바로 정규 코너로 넘어가게 됐다. 폭발적인 인기에 이봉원은 아이들이 따라할 때 얼굴에 검은 칠을 할 게 없어서 연탄 판매가 늘어날 정도”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이는 1988년 서울 올림픽 직전 ‘흑인 비하라는 이유로 갑작스럽게 폐지되는 ‘비운을 겪었다.
이봉원이 전성기를 누렸던 1980년대 중반은 콩트형 개그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당시 ‘쇼 비디오 자키에서만 해도 임하룡, 양종철, 오재미 등이 활약한 ‘도시의 천사들, 김미화 김한국의 ‘쓰리랑 부부, 최양락, 임미숙, 엄용수 등의 ‘네로25시 등의 코너가 있었다. 이들 모두 지금까지 회자될 정도로 유명세를 탔던 코너들. 이봉원은 이런 ‘개그 붐에 힘입어 큰 사랑을 받았다.
이후 이봉원은 1989년 ‘쇼 비디오 자키에서 장두석과 ‘니캉내캉이라는 음악 개그 2탄을 탄생시키기도 하고, 1991년 ‘유머 1번지의 ‘밤이면 밤마다 코너를 통해 김미화와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이런 활약 덕분에 그는 1987년 제1회 KBS 코미디 연기 대상 남자 신인상, 1990년 제4회 KBS 코미디 대상 남자 조연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진제공=MBN
◇ 실과 바늘, 이봉원과 박미선
한창 잘 나가던 이봉원은 1999년 3월 코미디 연출을 공부하기 위해 홀연히 일본으로 건너갔다. 1993년 후배 개그우먼인 박미선과 결혼을 하고 이미 가정을 꾸린 상태에서 결정한 일본 유학이었다. 그는 1년간 일본어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나서 2년제 전문학교인 도쿄비주얼아트 연구과에 입학했다.
남편의 유학 생활을 뒷바라지하고, 그가 돌아와 프로덕션을 차리는 등 각종 사업에 도전할 때도 박미선은 그를 묵묵히 응원했다. 훗날 박미선은 ‘줌마테이너 열풍에 각종 방송 MC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토크의 중심은 역시 ‘철없는 남편 이봉원. 이봉원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그런 박미선의 토크에 별로 기분 나쁘지 않다”고 말하며 (박)미선이가 고생을 많이 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한때 이런 토크 때문에 이봉원은 ‘가장으로서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박미선은 ‘2009 MBC 방송연예대상 등 자신이 수상을 할 때 마다 나의 남편 이봉원”을 앞세워 진한 고마움을 전하며 그런 비판을 일축했다. 이봉원 또한 2010년 ‘SBS 연예대상에서 SBS와 20년 연을 맺었지만 건진 게 하나 있다면 박미선”이라고 말하며 ‘코미디전망대에서 만나 결혼에 골인한 아내 박미선을 언급해 부부간의 변함없는 애정을 드러냈다.
◇ 개그계의 ‘미스터 쓴 소리 이봉원
이봉원은 개그계의 ‘큰선배가 되면서 쓴 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4050 세대가 공감할 만한 콩트형 개그가 사라지고 2030 세대 관객이 중심이 되는 개그 프로그램에 과거 ‘유머1번지 등은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보면서 웃었고 세대차이는 없었다. 그만큼 ‘대중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대중적이란 의미를 다시 새겨보기를 바란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또한 점점 빨라지는 웃음 코드에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한 인터뷰에서 이봉원은 ‘개그콘서트와 ‘웃찾사를 다 챙겨본다고 말하며 웃음 코드가 점점 빨라지는데 모든 세대가 함께 TV 앞에 앉아 웃을 수 있는 ‘다른 방식을 찾아봤으면 좋겠다”고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런 이봉원을 향해 전문가들은 ‘핍박 받으며 거기에 대응하는 진솔한 연기의 대가로 평가하기도 했다. 지금의 ‘말 위주의 개그 코드가 아닌 표정과 연기에서 슬픔의 정서를 표현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이봉원의 코미디가 4050 아날로그 세대들이 원하는 코미디상이라는 것. 그런 이봉원은 각종 특집 방송에서 1980년대 당시 개그맨들과 함께 과거 코너를 재현하는 특집을 진행해 많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 도전을 멈추지 않는 그의 ‘또 다른 도전
이봉원은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바로 첫 사극 연기. 그는 MBC 새 주말드라마 ‘옥중화에서 포도대장 역을 맡아 이병훈 PD와 작업을 하게 됐다. 그의 인생 최초의 사극 연기라 더욱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게다가 ‘사극의 거장 이병훈 PD가 그의 ‘콩트 연기를 높게 평가해 웃음 코드로 ‘간택한 인물이 바로 이봉원이다.
과연 이봉원은 또 다른 도전인 ‘사극이란 장르에도 빛을 발할 수 있을까. 그의 끝없는 도전에 많은 시청자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 이봉원은 누구?
1963년 8월 5일생의 이봉원은 1984년 KBS 개그콘테스트 2기로 데뷔했다. ‘시커먼스 ‘동작그만 등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개그우먼 박미선과 부부다. 한참 활동할 무렵 1999년 3월 코미디 연출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귀국 후에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프로덕션을 설립해 직접 연출도 하고 코미디언이 되겠다는 후배들의 연기를 지도하기도 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라디오에서 DJ로 왕성한 활약을 보였다.
1963년 8월 5일생의 이봉원은 1984년 KBS 개그콘테스트 2기로 데뷔했다. ‘시커먼스 ‘동작그만 등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개그우먼 박미선과 부부다. 한참 활동할 무렵 1999년 3월 코미디 연출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귀국 후에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프로덕션을 설립해 직접 연출도 하고 코미디언이 되겠다는 후배들의 연기를 지도하기도 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라디오에서 DJ로 왕성한 활약을 보였다.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