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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레이더 싱가포르] `엔高=닛케이 하락` 공식 아니다
입력 2016-05-04 17:53  | 수정 2016-05-04 19:48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엔화의 평가절상이 최근 일본 주식시장 폭락과 함께 다시 나타났다. 엔화 가치와 일본 주식 가치가 반대로 가는 현상은 2012년부터 심해졌다. 앞으로도 이런 현상이 심해질까. 일본의 교역 변화를 보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온다. 현재 엔화는 일본의 모든 교역국 통화보다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일단 일본 기업들이 구조조정기를 겪으면서 수익구조를 견고히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일본 정부는 엔화가 달러당 103엔까지 강세를 보이더라도 기업 수익성에는 악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엔·달러 환율의 절대 수치만 볼 게 아니라 지난 30년간 일본의 교역구조가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예를 들어 1990년대 일본은 수출 총액의 30%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었지만 2011년에는 대미 교역 규모가 16%까지 떨어졌고 오늘날은 18% 정도에 머물고 있다.
즉 단일 국가에 대한 엔화 환율의 직접적 영향은 거의 반으로 줄어들었다. 엔·달러 환율이 주로 회계상 통화에 국한되기 때문에 엔화가 약세를 보이더라도 일본의 다른 교역(총수출의 82%)에 큰 영향을 못 미친다는 얘기다. 그런 면에서 일본 수출이 가격에 민감하게 움직인다는 가정도 틀렸다. '메이드 인 재팬' 표시는 높은 품질과 뛰어난 디자인으로 대변된다. 일본 제조업을 뜻하는 '모노즈구리'는 끊임없는 디자인 개선과 생산 과정 최적화에 대한 집념으로 번역될 정도다. 단기간에 일본의 주 교역국으로 성장한 중국조차 자국 소비자들이 빠르게 세련돼졌다고 평가한다. 일본 제품의 높은 품질·디자인·기업 이미지는 이미 싼 가격을 넘어서는 가치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올 들어 일본 기업의 이윤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엔화 강세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 몇 년간 일본 기업의 실적 개선 원인을 두고 엔 약세를 지목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면 지난해 하반기 이후 엔화 반등이 일본 기업의 실적 악화의 원인이 될 것이다. 하지만 사실 대부분 일본 기업의 수익은 통화에 민감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엔화값이 1% 강세를 보이면 일본 기업의 영업이익이 0.4%씩 떨어진다. 이런 가정을 바탕으로 계산해보면 지난해 12월 이후 최근까지 엔화값이 약 11% 올랐으니 기업 수익성도 4.5% 떨어졌어야 했다. 하지만 최근 시장에서는 일본 기업의 이윤이 이보다 훨씬 더 큰 폭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다.
실적 전망이 부정적인 이유는 다양한 투자은행들의 부정적인 의견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본 철강산업의 부진은 엔화 강세 탓도 있지만 중국 철강 업체들의 흑자에도 기인하고 있다. 글로벌 수요가 줄어든 가운데 가격 하락 압력이 커진 것도 원인이다. 은행들은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시작한 이후 기업 실적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오늘날의 일본 기업의 이윤은 엔화의 움직임에 덜 의존하고 있다. 일본의 수출은 가격 외 요인에 의해 더 많이 영향을 받는다.
[캘빈 블랙락 이스트스프링운용 CIO][ⓒ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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