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으로 수사를 받는 옥시레킷벤키저(현 RB코리아) 연구진이 독일 전문가로부터 가습기 살균제의 ‘흡입 독성을 경고한 편지를 받고도 묵살한 사실이 27일 공식 확인됐다. 검찰은 이 같은 경고 편지가 살균제를 흡입하면 유해하다는 것을 알고도 필요한 실험을 하지 않았다”는 옥시 측 혐의(업무상 과실치사)를 입증할 결정적인 증거라고 밝혔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은 옥시의 전 선임연구원인 최 모씨가 1996년 독일의 학자인 볼프 교수로부터 가습기 살균제의 흡입 실험이 필요하다”는 명시적인 경고를 받고도, 실험을 하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 70%가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옥시싹싹 New 가습기 당번은 경고 이후인 2001년 처음 출시됐다. 최 씨는 제품의 제조 과정에 가장 깊숙이 관여한 연구원이다.
검찰 관계자는 독일 볼프 교수가 공기 중 가루처럼 퍼지는 가습기 살균제를 쓰기 위해서는 원료 물질에 대한 흡입 독성 실험이 필요하다고 최씨에게 경고했다”며 흡입 실험을 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는데 연구진이 하지 않은 것은 상당히 큰 과실”이라고 말했다.
볼프 교수는 옥시 제품의 초기 원료로 사용됐던 화학물질 ‘프리벤톨(preventol r80)을 공급하던 독일 ‘멜리타사와 옥시를 중개하던 사람이다. 검찰은 옥시가 2000년 말까지 ‘프리벤톨 r80를 살균제 원료성분으로 쓰다다가, 해당 물질에서 하얀 가루가 많이 나와 소비자 민원이 빗발치자 서둘러 주성분을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로 바꾼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지난 2월 옥시 본사를 압수수색하면서 볼프 교수가 최 씨에게 보낸 편지를 확보했다. 편지에는 독일에서 가습기 찌꺼기를 닦는데 쓰이는 화학물질 ‘프리벤톨(preventol) r80을 쓰려면 동물 흡입 실험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경고가 담겨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가습기 살균제가 공기 중으로 날아가 코나 입으로 들어갈 때 독성이 남아있을 수 있는 만큼 가습기를 청소할 때 유해성분이 섞이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취지의 경고다. 그러나 옥시 측은 흡입 독성 실험 등 안전성 검사를 하지 않은 채 2001년 제품 출시를 강행했다.
검찰은 경고 이후 옥시 내부적으로도 흡입 독성 실험이 필요한지 검토했던 만큼 연구진뿐만 아니라 경영진도 가습기 살균제 유해성을 대부분 알았을 것으로 보고, 최씨의 보고가 어디까지 올라갔는지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전날에 이어 27일에도 최 씨를 소환해 윗선에 보고했는지 집중 조사했다.
한편 28일 검찰은 ‘옥시싹싹 New 가습기 당번을 제조한 한빛화학 대표 정 모씨를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또한 옥시에 이은 다음 ‘타깃을 버터플라이이펙트(세퓨)로 잡고, 세퓨의 전 대표 오 모씨 등 관계자 3명을 소환할 계획이다.
[김윤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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