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한국형 양적완화] 구조조정·내수진작이 목표...美·日·유럽과는 다르다
입력 2016-04-27 16:49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6일 ‘한국형 양적완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관심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사진은 논란의 한 가운데 놓인 한국은행 전경.<매경DB>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의 ‘마지막 카드로 불린다. 기준금리를 낮출 때까지 낮춘 상태에서 추가 발권력을 통해 유동성을 무차별적으로 직접 주입하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 논의되고 있는 한국판 양적완화 방안은 미국과 유럽, 일본과는 목적과 형식이 다르다. 해외의 양적완화가 경기부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한국판 양적완화의 목표는 구조조정과 내수진작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것이다. 형식도 전반적인 유동성 살포라기 보다는 특정부문에 선별적으로 투입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감당하기 버거워하는 이른바 한계기업이 늘고 있는 것은 한국경제의 가장 큰 부담으로 꼽힌다. 한계기업이 많을수록 고용 창출이 어렵고 고용이 늘지 않으면 돈의 온기가 돌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대외 충격이 발생할 경우 이들 기업이 발행한 채권을 보유한 금융권이 함께 몰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난 3년간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못 갚고 있는 이른바 한계기업은 현재 100곳 중 14곳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14곳 중 10곳은 지난 10년 간 이 같은 경험을 두 번 이상 겪었다. 만성적 한계기업들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외부감사 대상 기업 중 만성적 한계기업 비중은 2009년 8.2%(1851개)에서 현재 10.6%(2561개)로 2.4%포인트 상승했다. 더 큰 문제는 중소기업 보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만성적인 한계기업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전체 대기업 중 만성적 한계기업 비중은 2009년 6.6%에서 10.8%로 상승했다. 이에 비해 중소기업은 같은 기간 2.1%포인트 늘어나는데 그쳤다. 업종별로는 운수, 건설 부문과 조선, 철강 업종에서 상대적으로 많았다.

이들 만성적 한계기업의 부채비율은 2013년 173.4%에서 260.2%로 급상승한 상태다. 특수은행과 정책금융 관련기관에서 지원 받은 포괄적 빚인 신용공여액만 43조7000억원 달한다. 중소기업은 2011년 8조2000억원에서 작년 7조9000억원으로 다소 줄어든데 반해 대기업은 같은 기간 14조6000억원에서 35조8000억원으로 급증한 것이 특징이다.
한국은행은 만성적 한계기업은 생산성이 낮아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을 초래하고 경제성장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만성적 한계기업의 노동생산성은 정상기업의 60% 안팎 수준에 불과하다. 정상기업의 노동생산성이 1인당 9000만원이라면 만성적 한계기업은 5000만원이 수준이라는 계산이다.
1200조원을 넘어선 가계 빚은 한국경제를 짓누르는 또 다른 요인이다. 작년 말 기준으로 가계 빚 잔액은 1207조원이었다. 불과 1년 새 11.2%인 122조원이 불어났다. 증가율도 가파르다. 2012년 5.2%, 2013년 5.7%, 2014년 6.5% 등으로 급등하는 추세다. 주택담보대출의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작년 말 현재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501조2000억원으로 전년 460조6000억원 보다 8.8% 늘었다.
정부가 부동산 경기를 살리고자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자 주택시장이 살아났고 이에 빚을 내 집을 산 가계가 많아졌다는 뜻이다. 문제는 인구 고령화가 맞물리면서 가계 빚을 갚을 여력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금융부채가 금융자산보다 많고 처분가능소득 대비 원리금상환액 비율(DSR)이 40%를 초과하는 가구를 가리키는 한계가구가 2012년 132만5000가구에서 2015년 158만3000가구로 급증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계가구로 인해 금융시스템과 주택시장, 민간소비에 부정적인 영향이 우려된다”면서 작년 말 현재 한계가구의 평균 DSR이 104.7%에 달해 채무불이행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염려했다.
현재 순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 빚은 144.2% 수준으로 분석되고 있다. 순처분가능소득은 소득 중 세금 등을 빼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인데, 이 비율이 144.2%라는 뜻은 1년간 돈을 모두 모아 갚아도 빚이 44%나 남는다는 뜻이다. 이 비율은 2004년 100.8%, 2011년 131.3%에서 꾸준히 상승하는 추세다. 소득이 크게 늘지 않는 한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돈이 있어도 안쓰는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처분소득대비 소비 지출액을 가리키는 평균소비성향은 71.9%에 그쳤다. 이는 2003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 같은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은 재정과 통화정책 뿐이다. 재정의 경우 작년 말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중앙 및 지방정부의 회계 기금)는 37.9%로 양호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속도를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명목 GDP가 1997~2015년 연평균 3.2배 증가할 동안 국가채무는 9.5배 불어났고 이를 근거로 미국 포브스는 3년내에 채무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높은 취약 7개국 중 하나로 한국을 지목하기도 했다.
한국은행 발권력을 동원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이때문이다. 빚을 주식으로 출자전환(Debt to equity swap)하는 수준으로 발상의 전환을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많다. 다만 발권력을 동원하려면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있는 보다 정교한 메커니즘도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는 충고다. 정대희 KDI 연구위원은 재정정책은 국채발행과 세금 인상으로 재원을 마련하기 때문에 실패시 정책 입안자들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발권은 이 같은 제약이 없어 쉽게 손을 대려는 경향이 있다”며 때문에 발권력을 동원한다면 수혜자나 정책 입안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막을 장치가 함께 고려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상덕 기자 / 정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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