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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4등`, 엄마들만 반성해야 하는 걸까?
입력 2016-04-14 09:18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진현철 기자]
늦은 밤 시간대,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인 것 같은데 자기 몸보다 큰 가방을 메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아이들을 본 기억이 많다. 스스로 공부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열에 일곱, 여덟은 부모가 등 떠민 게 아닐까. 공부뿐 아니라 스포츠도 비슷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꿈을 찾아 운동하면 다행이지만, 좋아하던 게 어느새 부모의 꿈이 되어버린 경우를 주변에서 적지 않게 봤다.
영화 '4등'은 우리나라의 극성 엄마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겼다. 주인공은 분명 만년 4등 수영선수 준호(유재상)와 괴짜 코치 광수(박해준)이건만 준호 엄마 캐릭터에 몰입하며 보는 이들이 꽤 많을 것 같다. 엄마를 역할을 맡은 배우 이항나의 현실감 넘치는 연기 덕 혹은 탓이다. 꼭 나의 일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한두 명 정도는 봤을 게 분명한 엄마 캐릭터다.
물론 영화는 우리나라 엘리트 스포츠 정책의 강압적인 분위기, 체벌의 대물림 등 시스템적인 문제를 짚어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 바탕에 명예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내재해 있다. 아이가 잘되길 바라는 건 부모라면 보편적으로 누구나 생각한다. 이런 마음을 이기심이라고 표현해야 하는 걸까.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작품인 이유다.
수영이 정말 좋은 준호지만 성적은 그리 좋지 않다. 재능이 있는 것 같아 더 잘하게 하고 싶은 게 엄마의 마음. 열 받아 미칠 것 같은 엄마는 잘 가르친다는 코치를 소개 받고 준호의 등을 떠민다. 하지만 코치 광수는 심드렁하다. 과거 국가대표 천재 수영선수였으나 가혹한 체벌로 대표팀을 뛰쳐나온 인물인 광수는 준호에게 매질을 하며 기록 달성에 열을 올린다.
'특훈' 결과 준호의 기록은 거의 1등! 0.02초 차이로 은메달을 땄다. 엄마는 기뻐 날뛴다. 준호 역시 마찬가지다. 엄마는 준호가 코치로부터 맞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4등을 한다는 게 더 무서워 과정을 묵과한다. 하지만 준호는 맞으면서 수영을 하고 싶진 않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스포츠계 체벌이라는 문제점을 짚어 기획하고 제작한 영화라 재미없을 거라는 편견이 생길 수 있지만 영화 '4등'은 지루하고 따분하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어떤 메시지를 억지로 건네려고 하지 않는다. 배우들의 대사를 통해 우리 교육의 현실을 콕콕 찌르는 점도 좋다.
정지우 감독은 공교롭게도 준호의 아빠인 신문기자를 광수와 인연 있는 인물로 그렸다. 과거 자신의 폭행을 준호 아빠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는 사이다. 이들의 갈등,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수영을 그만둔다는 아들에게 "우리 같이 열심히 했잖아"라고 타이르면서도 "네가 뭔데…. 너보다 내가 더 열심히 했는데 왜 상의도 안 하고 결정하느냐?"고 윽박지르는 엄마의 모습은 정말 정말 현실감 100%다.
괴팍한 코치 박해준과 꼬맹이 유재상의 연기 호흡도 상당히 좋다.

영화 '해피엔드' '은교' 등으로 파격적인 이야기를 했던 정지우 감독은 방향과 결이 또 다른 파격적인 소재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아이를 키우는 처지에서 나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과연 엄마들만 문제가 있는 걸까. 우리 시스템은 부모와 아이 모두를 불안하고 흔들리게 하는 구조다. 116분.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중.
jeigu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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