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일본이 생명공학 분야에서 거침없는 질주를 거듭하고 있다. 반면 황우석에 발목이 잡힌 한국만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11일 중국 광저우의대 연구진은 87명의 환자가 기증한 213개의 수정란에 유전자 가위 기술을 적용, 에이즈를 발생시키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내성을 갖는 배아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유전자 가위를 배아에 적용한 사례로 연구결과는 ‘보조 생식과 유전학 저널 최신호에 게재됐다.
아직 중국을 제외하고 유전자 가위를 배아에 실제로 적용한 국가나 연구기관은 없다. 연구진은 26개의 인간 배아에 유전자 가위기술을 활용, ‘CCR5라는 유전자를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CCR5는 HIV에 달라붙어 세포안으로 HIV 바이러스를 나르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CCR5를 제거하면 HIV에 감염되지 않는다.
일본 정부는 동물의 장기와 세포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이종이식을 허용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아사히신문은 일본 후생노동성 연구반이 지금까지 사실상 금지해온 이종이식 규정을 개정, 동물 장기·세포이식이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11일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이종이식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기위해 동물 장기 이식후 30년간 환자의 경과를 관찰하는 전제조건을 붙여 이종이식을 빠르면 5월께 법규정을 개정해 허용할 예정이다. 규정 개정에 맞춰 도쿄 국립국제의료연구센터연구소는 평생 인슐린을 맞아야 하는 1형 당뇨병 환자에게 인슐린을 분비하는 돼지 췌장 세포를 이식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거부반응 발생을 막기위해 특수한 막에 돼지 세포를 넣어 환자 피하에 이식하는 방식이다. 실험용 돼지를 생산하는 기업과 협력해 무균 돼지를 공급받아 이식에 나설 계획이다. 일본 정부가 동물, 특히 돼지의 장기·세포 이식을 허용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은 안전성이 어느 정도 확인됐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동안 후생노동성은 돼지 유전자에 포함된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감염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이종이식을 불허해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외에서 인간이나 원숭이가 이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보고가 없는 점을 감안해 개정을 바꾸기로 했다. 돼지는 장기 크기가 인간과 비슷하고, 관리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는 장점 때문에 최적의 이종이식 대상 동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에는 동물장기·세포를 사람에게 이식해도 거부반응을 확 줄일 수 있는 기술까지 실용화되면서 해외에서도 동물장기·세포 활용이 활성화되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일본정부의 이종이식 허용방침은 불치병을 앓고 있거나 이식할 인간 장기 부족으로 발만 동동 구르는 환자들에게 희망이 되는 것은 물론 일본 의료산업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이처럼 생명공학 분야에서 중국 일본이 치고 나가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황우석 트라우마에 갇혀 제대로 된 연구도 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 인간 배아에 대한 유전자 교정 연구 시도 자체를 전면 금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동물세포를 사람에게 이식할 수 있는 법적 기반 자체도 없는 상황이다. 특히 황우석 박사 논문 조작과 불법 난자 사용때문에 꽉 막힌 배아 연구는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현재 인공수정을 하고 남은 잔여 배아로 연구가 가능하지만 잔여 배아가 실험에 활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질이 좋지 않다”며 생명윤리법을 바꿔나가는 것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동물 이식 분야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경우, 현재 선천성 심장기형이나 판막증 환자에게 돼지나 소의 판막을 이식하는 것은 가능하다. 돼지의 판막을 분리해 세포질을 다 제거한뒤 인공판막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지난 3월 서울대병원 교수팀이 자체개발한 차세대 판막을 선천성 심장병 환자에게 이식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아직까지 동물세포를 사람에게 이식할 수 없기때문이다. 신준섭 2단계 바이오이종장기개발 사업단 교수(서울의대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동물세포 이식이 법으로 금지된 것이 아니라 법적 기반이 아예 없다”며 지난 몇 년간 이종이식법 초안을 만들어 건의했지만 상정조차 안된 상태”라고 안타까워햇다. 지난 2월 이종세포 이식을 포함한 첨단재생의료법이 발의됐지만 통과가 무산됐고, 20대 국회에서 통과된다고 해도 일본과 같은 조치가 나오려면 2~3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신 교수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데다 중국과 일본 등이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우리 정부도 적극적으로 규제완화에 나설 것”으로 기대했다.
[도쿄 = 황형규 특파원 / 서울 = 신찬옥 기자 / 원호섭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