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오지연 씨(58)는 3년 전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남편에게 미안하다. 평생 가족들을 위해 헌신한 남편은 환갑이 훌쩍 지나서 퇴직했다. 부부가 사이좋게 은퇴후 생활을 즐길 거라고 생각했지만, 주체할 수 없는 우울이 오 씨를 덮쳤다. 오 씨는 남편이 오래 고생한 것도 잘 알고, 당장 먹고 사는 게 힘든 것도 아닌데 감당 안되는 우울감이 느껴졌다”며 폐경기 증상이라고 생각했는데, 함께 밥해먹고 살림하고 운동하다 보니 다시 일상을 즐기게 됐다. 지금도 왜 그렇게 우울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국에는 ‘삼식이(집에서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먹는 남편) 일본에는 ‘남편재택 스트레스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남편들의 은퇴는 아내들에게 스트레스다.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강모열 서울대의대 예방의학교실 연구원의 분석 결과, 은퇴한 남편을 둔 아내가 우울증에 걸릴 위험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70%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통합정신의학(Comprehensive sychiatry) 최근호에 게재됐다.
연구의 기초가 된 것은 2006년부터 2012년 사이 4차례에 걸쳐 시행한 고령화연구패널조사(KloSA)다. 이 조사에 참여한 45세 이상 남녀 5천937명의 답변을 바탕으로 은퇴에 따른 우울감의 영향을 분석했다. 연구팀은 참여자 본인과 배우자의 직업상태를 근무, 자발적 은퇴, 비자발적 은퇴 등으로 구분하고 우울척도검사(CES-D)를 시행했다. 그 결과 자발적인 은퇴를 한 남편과 사는 아내는 직장에 다니는 남편을 둔 아내보다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70% 높았다.
우울에 큰 영향을 미치는 원인은 경제적인 문제였다. 강 연구원은 건강, 나이, 재산, 가구소득 등 변수를 제외하면 우울증 위험도는 35%로 떨어졌다”며 절반 정도는 은퇴로 인한 경제적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분석된다”고 말했다. 원치 않은 은퇴를 한 남편을 둔 아내는 남편이 직장을 다니는 아내보다 우울증 위험이 29% 높았지만, 이 경우에도 소득 등 기타 변수를 제외하고 비교하면 우울 정도에 차이가 없었다. 이번 연구에서 남편은 아내가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은퇴를 해도 그렇지 않은 경우와 우울감에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연구팀은 부부 간의 배려와 이해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강 연구원은 남편 입장에서는 ‘내가 이렇게 고생했는데, 집에서 대접을 좀 받아야겠다고 생각한다거나 수 있고, 회사에서 부하직원에게 하듯 집안일에 간섭하면 아내가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아내 입장에서는 ‘남편의 상황이 갑자기 변했다는 점을 이해하고 같이 취미생활을 하거나 다른 관심사를 만들어주면 부부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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