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포털이 수사기관의 요청에 따라 회원들의 개인정보를 제공했다면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첫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10일 차 모씨(36)가 네이버가 개인정보 보호의 의무를 다 하지 않고 경찰에 인적사항을 제공했다”며 NHN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전기통신사업자(이 사건 네이버)가 수사기관이 요청한 개별 사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실질적으로 심사할 의무가 없다”며 이런 심사가 이뤄질 경우 그 과정에서 혐의 사실이 밖으로 새거나 사생활을 침해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밝혔다. 이어 포털이 통신자료를 제공함으로써 범죄에 신속히 대처하는 등 중요한 공익을 달성할 수 있음에 비해 통신자료가 제공돼 제한되는 것은 이용자의 인적사항에 불과하다”며 개인의 이익 침해되는 정도가 크지 않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전기통신사업법은 수사기관의 서면 요청만으로도 사업자가 이용자의 인적사항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한다”며 이는 수사를 신속하게 하고 다른 범죄를 예방하는 등 개인정보의 내용과 성격에 따라 법원의 허가나 법관의 영장 없이도 사업자가 통신자료를 제공해 수사에 협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수사기관은 수사과정에서 취득한 비밀을 엄수하도록 돼 있다”며 전기통신사업자로서는 수사기관이 형식적·절차적 요건을 갖춰 통신자료를 제공해 달라고 요청할 경우 원칙적으로 이에 응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이번 소송은 차씨가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65)으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 당하면서 시작됐다. 차씨는 2010년 3월 사진 1장을 자신이 활동하던 인터넷 카페에 게재했다. 벤쿠버올림픽 여자피겨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따고 입국하는 김연아 선수를 유 전 장관이 격려하며 두 손으로 어깨를 두드리는 사진이었다. 이 때 김 선수가 의도적으로 유 전 장관을 피하는 듯한 장면으로 편집돼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이 사건 수사에 나서며 네이버에 해당 사진을 게재한 차씨의 인적사항을 요청했다. 네이버는 차씨의 ID, 이름, 주민등록번호, 이메일, 휴대전화 번호, 가입일자를 제공했다. 수사는 유 전 장관이 고소를 취하하면서 종결됐다.
1심에서는 차씨가 패소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네이버가 개인정보 보호 의무를 다 하지 않았다며 1심을 깨고 차씨에게 50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전기통신사업자의 민사상 책임의 범위를 정한 데 의의가 있다”며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실질적인 심사 의무를 인정해 일반적인 정보 제공으로 인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국가나 해당 수사기관이 부담해야 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시키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말했다.
[김세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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