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낳기만 해. 그럼 애는 저절로 크게 돼 있어.”
처음에는 야속했다. 주변 어르신들로부터 들은 이 말 때문이다. 궁시렁궁시렁 거리며 난 혼자 생각했다.
‘대학교육까지 시키는데 애 한 명 당 1억원이 드는 세상이야. 그런데 그냥 낳고 보라고? 일하면서 애를 어떻게 잘 키워…정말 저절로 클까?
아기를 낳은 이후에도 숱하게 들었던 말 중에 하나가 봐라, 낳고 보니 절로 크지?”였다. 이 말에도 역시 난 동의하기 어려웠다. ‘아니, 내가 죽을 둥 살 둥 애 키우는게 안 보이나? 어떻게 저렇게 쉽게 말하지?라며 원망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성호의 첫 돌을 맞은 오늘 난 이 말에 100%, 아니 200% 공감하고 있다. 맞아, 맞아. 정말로 아기를 낳아보니 절로 크는 게 맞네”라며 혼자서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이는지 모른다.
지난해 3월 4일 12시간의 진통 끝에 성호를 낳은 이후 난 하루도 그냥 지내본 날이 없다. 두발 뻗고 편히 자본 적이 없고, 마음 편히 식탁에 앉아 밥을 먹지 못했으며, 샤워를 하거나 손발톱을 자르는 등 내 몸에 관한 일은 무조건 성호가 잠든 밤이 돼서야 가능했다. 심지어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아기가 깨어있는 한 내 몸의 모든 생체 리듬은 성호에게 맞췄다. 육아를 위해 내 시간을, 몸과 정신을 희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이 지난 오늘 아기가 저절로 큰 것 같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다. 내가 희생한 것 이상으로 아기의 몸이 자랐고(실제 출생 당시와 비교해 체중이 3배 이상 늘었다) 온 우주에 대해 호기심을 품을 만큼 아기의 마음이, 정신 세계가 훌쩍 컸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1년만에 이렇게 컸는데, 앞으로 얼마나 무한한 성장력을 보여줄까? 그 깊이를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다.
아기와 더불어 내가 컸다. 엄마로서 한 뼘 자랐다. 성호 엄마로 불리는게 어색하기만 했는데 지금은 모든 게 자연스럽다. 육아가 너무 힘들어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출산 후 100일 무렵과 비교하면 지금은 너무나 여유롭다. 성호를 대하는 마음이 넉넉해졌고, 그 덕에 주변을 돌아볼 여유까지 생겼다. 어쩌면 이렇게 마음에 여유가 생긴 결과 아기는 낳기만 하면 저절로 큰다는 말에 공감을 더 하게 됐는지 모르겠다.
육아의 어려움, 육체적 피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힘든 것 이상으로 아기와 볼을 부비고, 혼자 기지개 켜는 모습을 보며, 날 보고 ‘엄마엄마라며 활짝 웃어주는 아기로부터 얻는 기쁨이 큰 까닭에 그 정도 희생과 고통쯤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다. 마치 마취 주사를 맞은 것처럼. 저절로 아기가 컸다는 말에 공감하는 이유에는 이런 마취주사 100대 정도 맞은 효과도 분명 놓여 있을테다.
엄마로서 내가 조금 자란데에는 성호 아빠의 도움을 빼놓을 수 없다. 나보다 훨씬 아빠로서 성장한 것이 느껴지는 것은 아마 그만큼 남편이 아빠로서는 문외한이었기 때문이다. 아기를 어떻게 안을지 조차 몰랐던 남편은 이제 내가 야간당직을 서는 날이면 곤히 아기를 재운다. 아기와 씨름하느라 지쳐 나도 모르게 잠이 든 날이면, 나 대신 집안일을 해준다. 덕분에 나는 집안일 걱정않고 성호 엄마로서 더욱 집중하고 충실할 수 있다.
지금까지 내가 쓴 육아일기에 직장생활과 육아 또 집안일을 병행하며 힘들다고 얘기한 적이 한번도 없다. 한번 힘들다고 얘기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하는 성격 탓도 있지만, 정말로 힘든 적이 없어서라는 말이 정답이다. 직장과 육아 또 가사라는 워킹맘의 숙명인 3개의 축에서 그 빈틈을 성호 아빠가 너무나도 훌륭히 메워주고 있다. 참 고마운 일이다.
돌 잔치 대신 가족 사진을 찍기로 했다. 이 사진은 어느 사진보다 의미가 있고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엄마와 아빠의 아들로 태어나 지금까지 건강히 자라준 아기에 대한 고마움과 그런 아기로 인해 한 뼘씩은 자란 듯한 엄마 아빠로서의 모습을 담을 수 있어서다. 돌 사진을 볼 때마다 이같은 초심을 잃지 않고 부모로서 신발 끈을 고쳐 묶는 계기가 됐으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다 .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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