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을 하는 사람 누구나 한 번쯤은 ‘쉬운 성공을 꿈꾼다. 때론 뇌물 제공 등의 부정행위를 저질러서라도 무언가를 이뤄내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불법.편법이 만연하던 시절도 한때 있었다. 우리 사회가 투명화, 선진화 되면서 그런 여지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한두번쯤이야...하고 쉬운 길을 택했다가는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패가망신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윤리경영은 단순히 기업들이 준수해야 할 의무사항이 아니라 그 자체가 기업의 핵심경쟁력이기도 하다. 대체로 잘나가는 기업일수록 윤리경영에 적극적이다. 독일기업 지멘스는 세계은행과 손잡고 2009년부터 ‘지멘스 청렴성 이니셔티브(Siemens Integrity Initiative)를 진행해왔다. 반부패 프로젝트다. 그중 하나인 ‘페어플레이어 클럽 은 국내 기업들로부터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매일경제 더 비즈 타임스팀은 지난 달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가 주최한 ‘페어플레이어클럽 반부패 서약 선포식에 참석한 프랑소와 빈케(Francois Vincke) 국제상공회의소 기업책임&반부패위원회 부위원장을 단독으로 만나 기업 윤리경영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빈케 부위원장은 부정부패는 항상 존재해 왔지만 갈수록 설 땅이 좁아지고 있다”며 이제 기업들은 부정행위를 저지르는데 대해 그 어떠한 핑계도 댈 수 없다”고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다음은 그와의 주요 일문일답 내용.
-국제상공회의소는 1977년부터 부패근절에 힘써왔고 당신은 1994년부터 반부패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과거와 현재를 비교했을 때 부정부패에 대한 어떤 인식 변화가 있는가.
▶내가 1994년 국제상공회의소 기업책임&반부패 위원회의 업무를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당신 정말 희한한 일을 하는구나라고 말했다. 부정부패는 항상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다. 부정부패가 사라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부정부패에 대한 사람들의 전반적인 인식은 바뀌었다. 부패가 완전히 없어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지금도 없다. 그러나 이것이 잘못된 일이고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또 부정부패에 가담한 사람이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인식이 생겼다. 이제 사람들은 회사, 공무원 등 그 주체가 누가 됐든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그냥 두고 보지 않는다. 직원들의 부정부패로 인해 기업이 큰 피해를 입는 상황이 생긴다. 국가나 공기업도 마찬가지다. 공무원들이 뇌물을 받고 그에 대한 ‘대가로 올바르지 않는 계약관계를 맺기 때문에 공기업이 매우 저조한 성과를 기록한다. 과거에는 이런 부정부패가 통했을지 몰라도 더 이상은 아니다.
-부정부패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
▶수 많은 반부패 국제회의가 개최돼왔다. 정부가 나서서 부정부패를 비난했다. 이런 부정부패에 대한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잘 전해져 인식이 바뀌었다고 본다. 또한 반부패 운동을 하는 많은 조직들이 생겼다. NGO, 언론 등 다양한 조직들이 부패를 비난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제 사람들은 부정행위가 얼마나 큰 파괴력을 지녔는지 알기에 부정부패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부정부패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나타나는 구체적인 예가 있다면.
▶지난 2011년 터키에서 지진이 일어났을 때를 되돌아보자. 당시 사람들은 이를 자연재해로 보는 것을 넘어 뇌물을 제공한 업체의 부실시공 때문에 상황이 악화되었다고 생각했다. 부패를 저질러선 안 되는 이유는 그것이 도덕적이지 않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다. 생존을 위해서도 부정부패가 있어선 안 된다.
부정부패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면서 더 나은 법안이 발의되고, 또 더 좋은 법안이 발의되면 잘 이행될 수 있는 확률도 높다. 물론 나는 엄청나게 많은 반부패 법안이 집행돼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반부패 법안 통과보단 부패방지를 위한 (다른) 노력들이 먼저 진행돼야 한다.
-아무리 수많은 반부패 법안이 있다 하더라도 부정부패 행위는 근절되지 않는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현실적으로 부패근절을 위해서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은 후 시나이산에서 내려온 다음에도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은 있었다. 수 많은 반부패 법안이 집행된다고 해도 부정부패 행위를 완전히 끊어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부패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뀐 것은 사실이다. 규모가 어떻든 간에 모든 기업들은 윤리 경영준수 및 준법 정신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를 피할 수 있는 기업은 단 한 곳도 없다. ‘우리는 특별한 기업이니까 부정행위를 저질러도 사면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우리는 중소기업이니 뇌물을 줘야지 살아남을 수 있어라는 생각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단언컨대 모든 기업이 부패를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어떻게? 윤리의식과 준법정신을 위한 프로그램을 실행하면 된다. 조직의 윤리의식.준법정신 부문 담당자들이 이런 정신을 내부에 확실하게 심어줘야 한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부패근절은 ‘페어 비즈니스(fair business)를 위한 것이다. ‘페어 비즈니스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모든 사업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일을 하는 것이 ‘페어 비즈니스다. 숨김없이, 능력을 기반으로 사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페어 비즈니스 환경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비즈니스는 순수하게 인재들의 능력, R&D(연구개발), 혁신, 마케팅, 새로운 아이디어, 직장 동료들의 동기 등으로 운영돼야 한다. 비즈니스 세계에 새롭게 발을 내딛는 사람들도 공정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수 있어야 한다. 기성세대의 비즈니스 종사자들만이 경영세계에서 영원히 활동하는 상황은 용납돼선 안 된다. 청렴성, 도덕성(integrity)이 자유시장경제의 핵심(key)이다.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뇌물을 제공해 시장 진입을 시도할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 앞서 내가 새로운 사람들의 비즈니스 세계 진입에 대해 말했을 때는 새로운 사람들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들이 새로운 사업자라는 이유로 시장에 들어와 제멋대로 사업을 펼치는 상황 또한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도덕성은 모든 사람들의 미래여야 한다.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이 단지 혁신가여서 혹은 소수 인종이기 때문에 특별한 대우가 있어서는 안 된다. 공정한 사업은 평등한 사업이다(fair play is equal play)
-회사들은 한 번쯤 뇌물을 제공해 ‘지름길로 가려하는 유혹과 마주한다. 실제로 이런 유혹에 빠지는 회사와 부정부패 행위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회사의 차이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아직까지도 뇌물을 제공하는 기업들은 매우 큰 위험을 안고 있다. 뇌물을 주는 기업들은 위험요인평가(risk assessment)를 제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기업은 위험요인 평가를 해야 한다. 신시장에 진출할 때마다, 혹은 신제품을 개발할 때마다, 대형 혁신을 일으킬 때마다 위험요인 평가가 필요하다. 위험 요소를 평가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기업은 없다. 뇌물을 제공하는 것을 위험요소라고 인식하지 못한 기업은 자사의 미래를 ‘거짓된 잣대(false assessment)로 평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자체만으로도 매우 큰 위험요소를 안고 있는 것이다. 단기적으로, 어쩌면 중기적으로도 여기에서 파생되는 문제를 피할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는 절대 뇌물이라는 위험요소가 불러오는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
때문에 부패에 빠지는 기업과 부패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 기업의 차이는 결국 위험감수에 있다. 단기적으로는 부패행위를 저질러 이득을 취할 수 있다. 부정부패를 저지르지 않는 기업은 단기적으로 성과가 좋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기업들은 장기적 미래에 투자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기업들은 위험요인을 평가할 때 ‘뇌물을 고려하진 않는 듯하다.
▶놀라운 일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위험요인을 분석할 때 보는 카테고리 중 하나는 사기다. 회계사기, 세금사기 등이 있다. 부정부패 자체가 사기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매우 이론적인 논쟁이다. 개인적으로는 뇌물 등을 포함한 부패행위가 사기의 일종이라 생각한다. 어떠한 기업이 자사가 맞닥뜨린 위험요소를 평가하는데 있어 부패행위의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위험요인 평가에 대한 이상한(strange) 개념을 갖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에 부패의 위험성에 대해 말했을 때 사람들은 경악을 하며 반응했다. ‘우리는 절대 부패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잡아떼기도 했다. 이제 이런 반응은 한 물 간 반응이다. 사람들은 모두 부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부정부패 행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고, 이를 하게끔 슬그머니 유도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물론 부정부패행위에 가담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나는 부정부패를 저지는 사람이야라고 쓰여져 있진 않지만, 결국에는 누가 사고를 치는지 자명하게 드러난다. 1997년 OCED 회원국이 뇌물방지협약을 체결하고 2003년 UN총회가 반부패협약 채택한 이후 모든 사람들은 그 어떠한 부패행위가 금지된 사실을 한다. 이제는 부정부패 행위에 대한 그 어떠한 변명도 댈 수가 없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기업들은 뇌물을 포함한 부정행위가 자사의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 주장할 수 있다.
▶한 가지 사례를 들겠다. 과거 한 기업이 프랑스 대법원에 부정부패 행위가 기업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호소한 적이 있다. 기업의 생존을 위해, 기업이 파산하지 않기 위해서는 시장을 점령해야 하는데, 시장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뇌물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회사의 주장이었다. 당시 프랑스 대법원은 기업측 손을 들어줬다. 물론 이는 아주 오래 전에 일어난 일이다. 이후 그 판결은 번복됐다.
기업의 파산을 눈앞에 두고 전 직원을 해고해야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자사를 되살리기 위해 뇌물을 제공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사실 이제는 뇌물제공이 오히려 기업의 파산을 초래한다.
-부정부패에 가담하는 사람들은 결국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투명한 경영을 펼치지 않는 기업들이 많다. 이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부정부패를 저지르면 이에 대한 대가를 철저히 지불하는 시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 어떤 이유에서도 부패행위를 저지르면 안 된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인식하고 완전하게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모든 이들이 부패와의 전쟁을 시작해야 한다. 이에 대한 메시지는 충분히 있었다. 또한 부패를 없애기 위해 충분히 많은 소통이 이뤄져왔다. 다시 말하자면 부정부패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는 말은 충분히 전해왔다. 이제 사람들은 부패행위가 없는 ‘새로운 게임을 해야 한다. 마지막까지 부패가 척결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미국 법무부의 판결을 보자. 부패행위를 저지른 사람 또는 회사로 하여금 큰 대가를 치르게 한다. 부정부패에 유혹되는 사람들에게 이에서 파생될 위험의 크기를 확실히 전한다.
미국 해외부패방지법(FCPA, Foreign Corrupt Practices Act), OECD 뇌물방지협약, UN 반부패협약 등 각종 개혁이 추진될때 일부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봐라. 반부패법안은 그대로 시행되고 있다. 모든 대륙에서 ‘반부패 운동을 진행되고 있다.
-과거 부패 기업이었는데 청렴한 기업으로 탈바꿈한 기업의 예가 있다면.
▶수많은 기업들이 있어서 한 가지를 꼽긴 힘들다. 물론 이렇게 부패행위를 저질렀던 기업들이 부패를 씻어내고 ‘깨끗하게 사업을 하기까진 엄청난 단련이 필요했을 것이다. 수년 동안 단련을 해서 이뤄낸 결과다. ‘깨끗한 기업으로 재탄생하는 데 핵심은 예산 문제가 아니다. 물론 예산이 들긴 하지만, 지속성이 더 중요하다.
-박대통령 역시 부패의 뿌리는 뽑는데 앞장서고 있다. 박대통령의 부패척결 전략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나는 박 대통령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 생각한다. 한국의 방위산업은 특히 비리가 많이 일어나는 곳이다. 박대통령이 말한 방위산업의 비리는 진실이다. 대통령은 방위산업비리를 안보의 누수를 가져오는 이적행위로 규정한다”고 강력하게 말했다. 국가의 안보를 담보로 부정부패를 저지를 수는 없다.
-기업 부패 척결을 위한 대책은 어떤가.
▶기업 부패방지를 위한 가장 좋은 해결책은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협력이다. 두 부문에서 공동으로 기업 부패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윤선영 연구원 / 사진 = 김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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