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시가총액 150억→1400조원 9만배 `쑥`
입력 2016-03-01 17:58  | 수정 2016-03-01 21:26
최경수 이사장
◆ 60주년 맞은 한국거래소 ◆
한국 기업의 든든한 자금 창구 역할을 해온 한국거래소(옛 증권거래소)가 3일 환갑을 맞는다.
거래소 덕분에 지난 60년 동안 한국 자본시장은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우리 증시는 1956년 3월 3일 대한증권거래소 출범과 함께 문을 열였다. 1956년 12개에 불과했던 상장사는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 770개와 코스닥시장 상장기업 1157개를 합해 총 1927개로 160배 성장했다. 1965년 150억원이었던 코스피 시가총액도 지난달 말 1207조원으로 8만배 넘게 증가했다.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한 시가총액은 1400조원대로 지난 1월 말 기준 세계 13위까지 급성장했다.
60년 전 출범 당시 상장사는 조흥은행 저축은행 한국상업은행 흥업은행 등 은행 4개, 대한해운공사 대한조선공사 경성전기 남선전기 조선운수 경성방직 등 일반기업 6개, 정책적 목적으로 상장된 대한증권거래소 한국연합증권금융 등 총 12개에 불과했다. 이들 중 경성방직(현 경방) 조선공사(한진중공업홀딩스) 대한해운공사(유수홀딩스) 3곳은 상호만 바뀐 채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증권거래소와 증권금융은 1974년 상장폐지됐고 은행 4곳도 외환위기 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사라졌다.
한국 주식시장이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올라선 것은 1980년대 들어서다. 1968년 자본시장 육성에 관한 법률, 1972년 기업공개 촉진법 등이 마련되고 1970년대 후반 본격적인 상장 러시가 이뤄지면서 비로소 발행·유통시장의 틀을 갖췄다. 1980년대 들어 국민주 보급으로 증시 대중화 시대를 열며 1989년 3월 말 코스피가 처음으로 1000을 찍었다. 최경수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작고 초라했던 기업들은 증시에서 자금을 조달해 오늘날 손꼽히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고 배고팠던 국민은 이제 직간접 투자를 통해 자산을 운용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게 됐다"고 회상했다.
1983년 1월 4일 122.5로 출발한 코스피는 1989년 3월 31일 1003.3을 기록해 사상 첫 '네 자릿수 시대'를 열었다. 1987년 8월 19일 500을 찍은 지 1년7개월 만에 두 배로 뛰었다. 당시 증권가에선 코스피가 2000년대에 접어들 때쯤에는 여유 있게 2000을 넘을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실제로 코스피가 2000을 찍은 건 예상보다 7년이나 늦은 2007년 7월 25일이었다. 100에서 1000을 가는 데는 9년3개월 걸렸으나 1000에서 2000으로 오르는 데는 18년4개월 소요됐다. 외환위기와 IT 버블 붕괴 등 성장통을 겪었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 성장사는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모델로 각광받고 있다. 2007년 말레이시아를 시작으로 베트남 필리핀 태국 등 6개국에 거래소 시스템을 수출하기도 했다. 작년 9월 이란증권거래위원회(SEO)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이란 시장 개방에 따른 증시 현대화 사업 수주도 추진 중이다. 최 이사장은 "이란 금융위원장이 3월 중순 한국을 방문해 시스템을 둘러볼 예정"이라며 "이란이 파생 시장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고 전했다.
거래소는 60년을 맞아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현재 IT신기술과 서비스 혁신으로 무장한 세계 거래소들이 국경을 초월한 유동성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그 누구도 미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거래소는 매매 체결 중심인 전통적인 영역에서 탈피해서 장외플랫폼, 블록체인, 중앙청산소(CCP) 등으로 새로운 먹거리와 시장서비스를 확충하고 있다. 최 이사장은 "새로운 투자상품과 서비스 혁신을 통해 기존 투자자의 역외 유출을 막는 동시에 새로운 투자수요를 역내로 유치해야 한다"며 "끊임없이 변하고 자율적으로 혁신을 추구해 글로벌 7대 거래소로 거듭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예경 기자 / 용환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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