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밝혀지지 않은 애국가의 작사자를 밝혀내는 토론회가 16일 마련됐다.
서울신학대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해결되지 않은 역사적 문제인 애국가의 작사가를 규명하는 끝장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김연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와 안용환 서울신학대 초빙교수가 각각 좌옹 윤치호와 도산 안창호를 애국가 작사자로 보는 근거를 발표했다.
김연갑 상임이사는 윤치호설을 주장하는 이유로 1897년 8월 13일자 독립신문에 난 기사에 있는 한국의 계관시인 윤치호가 이날 행사를 위해 작시한 것이다”라는 문장을 제시했다.
이어 1908년 윤치호가 발행한 ‘찬미가에 애국가와 비슷한 가사가 있다는 점과 1910년 미주 신한민보가 애국가 4절을 ‘국민가로 소개하고 ‘윤치호 작사로 보도한 기록 등도 논거로 밝혔다.
아울러 김 이사는 1955년 8월 애국가 작사자 조사위원회는 작사자를 윤치호로 결정할지 여부를 투표에 부쳐 13명 중 11명이 찬성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 교수는 조사위원회의 회의록은 존재하지 않고, 위원회는 친일 인사 위주로 구성돼 있었다”고 반박했다.
그는 지난해 6월 안창호의 딸이 세상을 떠나기 5일 전 자신에게 보낸 편지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애국가를 도산이 작사했다는 것을 들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외에도 소설가 이광수의 부인과 안창호의 비서실장을 지낸 구익균의 증언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1907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애국가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국가로 지정됐다. 작곡가는 안익태로 알려져 있는 것과 달리 작사가는 줄곧 ‘미상인 상태다.
정부는 1955년 애국가 작사자 조사위원회를 만들어 약 50일간 조사를 진행했으나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작업을 마무리했다.
애국가 작사자 문제는 흥사단이 2012년 ‘안창호 원작자설을 내놓으면서 논란이 재점화됐고, 이후 학계에서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까지 애국가 작사가로는 김인식, 민영환, 안창호, 윤치호, 최병헌 등이 거론됐다. 이들 중 안창호와 윤치호가 가장 유력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디지털뉴스국 이정윤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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