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우여곡절의 개성공단 16년
입력 2016-02-11 11:21  | 수정 2016-02-11 12:24
【 앵커멘트 】
개성공단은 지난 2000년 사업이 시작된 뒤 16년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거듭된 남북 관계 악화 속에서도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왔지만 정치적인 역풍을 피하지는 못했습니다.
김수형 기자가 보도합니다.


【 기자 】
개성공단의 설립은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에서 시작됩니다.

▶ 인터뷰 : 조선중앙TV (2000년 6월)
- "6·15 북남 공동선언의 채택은 나라의 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하시려는…."

「그해 8월 현대아산이 북한과 공업지구 개발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한 뒤 본격적인 남북 협력의 토대가 마련됩니다.」

「4년 뒤인 2004년 개성공단 준공식이 열리며 15개 업체가 입주한 뒤 그해 12월 첫 제품이 생산됐고, 불과 2년 뒤 북한 근로자 1만 명을 고용하기까지 이릅니다.」

그러나 개성공단의 역사는 우여곡절이 더 많았습니다.

본격적인 갈등은 2008년 시작됐습니다.

「3월, 북한이 남측 당국자 11명 전원 철수를 요구했고, 12월에는 개성공단 체류 인원을 제한하는 12.1조치를 시행합니다.」

「결국 이듬해 12.1조치는 해제됐지만, 2010년 천안함 침몰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이 터지며 우리 정부는 개성공단 방북을 일시 금지시키는 조치를 취합니다.」

「그 뒤 거듭된 관계 악화 속에서도 폐쇄는 피해왔던 남북,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처음으로 5개월여 동안 중단됩니다.」

3년 만에 우리 정부가 가동 중단이라는 조치를 내리며 개성공단은 또다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MBN뉴스 김수형입니다.
영상편집 : 서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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