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강성노조’ 유무 따라 기업공시 차이 눈에 보이네
입력 2016-02-04 10:36 
이우종 교수

프랭크 호지(Frank Hodge)와 마틴 프롱크(Maarten Pronk)는 2006년 Royal Philips Electronics N.V. (이하 Philips) 사의 자료를 이용하여 흥미로운 연구를 발표하였다. 그들은 Philips사의 2003년 분기 재무제표를 웹사이트에 올려두고 재무제표를 열람하는 이용자들에게 간단한 설문을 실시하여 과연 어떤 사람들이 기업의 재무성과에 관심을 갖는지를 분석하였다. 총 5천여명으로 파악된 재무제표 열람자는 주주 및 채권자들을 포함하여 관계사, 경쟁사, 언론, 정부관계자 등 다양했는데, 그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 것은 놀랍게도 Philips사의 종업원들로 전체 열람자의 약 40%에 해당하는 2천여명이 재무제표를 열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재무제표를 열람한 종업원 2천여명 중 대다수(약 75%)가 회사에 대해서 기본적인 정보를 얻기 위하여 접속하였다고 답변하였다.
종업원들이 투자자들 못지 않게 기업의 재무성과에 대하여 관심이 있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종업원들은 기업에 본인의 시간과 역량, 즉 인적자원(human capital)을 투자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보상으로 임금을 받고 있는 일종의 비재무적 투자자이기 때문이다. 스톡옵션 등 성과와 직접적으로 연계되어있는 보상은 물론이거니와, 성과에 직접적으로 연동되어있지 않은 현금보상 또한 기업의 재무성과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예를 들면 기업의 성과가 좋을 때에는 종업원들이 임금인상을 통하여 기업의 성과를 공유하기를 요구할 것이며, 종업원과 경영진의 협상력에 따라 그 인상폭이 결정된다. 흔히 임금수준이 대체로 하방경직적인 행태를 보인다고 하는데, 이는 기업의 성과가 나쁠 때에 종업원들이 경영진의 비효율적인 경영을 비난하면서 경영진을 압박하고 임금삭감에는 좀처럼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도 물론 종업원과 경영진의 협상력에 따라 조정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강한 노동조합이 존재하면 종업원의 결사가 원활하여 경영진과의 협상테이블에서 보다 강한 협상력을 갖게 된다.
얼마 전에 종방하였던 JTBC의 <송곳>이라는 드라마는 종업원과 경영진 간의 첨예한 대립을 종업원의 각성과 노조의 태동이라는 맥락에서 현실감있게 묘사하여 대중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처럼 종업원의 결사체인 노동조합과 경영진과의 긴장관계는 이미 널리 알려진 바이다. 우리나라의 노동조합들은 역사적으로 민주주의를 확대하기 위한 정치적 투쟁과정 속에서 성장해오면서 기업을 압박하기 위한 다양한 협상수단을 학습해왔으며, 이는 경영진들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해왔다. 노동조합을 견제하는 경영진의 노력은 다양한 재무 혹은 투자의사결정에 반영되는데, 예컨대 노조가 현금의 분배를 요구할 것에 대비하여 가급적 현금을 적게 보유하고 있으려 한다거나, 노조와의 긴장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는 과대투자를 꺼린다거나 하는 경향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강성노조에 대응하고 있는 기업들의 재무보고 혹은 공시행태는 어떠할까?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강성노조가 존재하는 회사의 경영진으로서는 기업의 정보를 공시할 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기업성과에 대한 긍정적 뉴스를 공시하는 경우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에 직면할 것이고, 부정적 뉴스를 공시하는 경우에는 경영진 교체압박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임금삭감 카드로 노조의 협상력을 약화시키고자 하는 전략으로서의 부정적 뉴스 공시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 공정공시자료를 분석해보면, 노동조합의 강성여부의 차이에 따른 흥미로운 공시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즉 노동조합 가입률이 높은 기업들은 노조 가입률이 낮은 기업들보다 평균적으로 공시를 적게 하며 공시를 하더라도 긍정적 뉴스를 공시할 확률이 낮았다. ‘춘투로 상징되는 임금협상 기간 직전에는 공시빈도가 줄었다가 협상기간 직후부터 점진적으로 감추었던 뉴스를 공시하기 시작하는 것도 흥미로운 패턴이다. 즉, 경영진들은 당기의 재무성과가 좋다거나 미래의 성과전망이 밝다는 등의 긍정적 뉴스를 시장에 공시할 때 노조와의 긴장관계를 고려하여 공시빈도와 공시시점을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노조 가입률과 부정적 뉴스 사이의 관계에서는 특별한 패턴을 발견할 수가 없었는데, 이는 부정적 뉴스의 공시빈도와 시점을 조정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즉, 기업성과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를 공시하는 것은 임금삭감을 요구하면서 노조를 압박할 수는 있겠지만 도리어 경영진 교체압박을 받을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며, 또한 부정적인 뉴스를 적시에 공시하지 않는 경우 재무투자자들로부터 소송을 당할 수 있는 위험도 감수해야 하는 측면도 있다. 기업의 공시패턴은 이처럼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역학관계를 고려하는 전략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우종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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