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국가영장류센터 가보니 ‘바이오 국가안보’ 핵심 인프라
입력 2016-01-29 17:17 

원숭이는 동물계의 희토류로 세계 시장의 공급을 장악한 중국이 언제라도 자원 무기화에 나설 수 있습니다. 국가영장류센터는 이에 대비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충북 오창에 위치한 국가영장류센터에서 만난 이상래 국가영장류센터장 겸 영장류자원지원센터장은 국가영장류센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정문을 들어서자 작고 아담한 건물 다섯 동이 한 눈에 들어왔다. 한 국가를 대표한다는 영장류센터 치고는 너무 작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연구동 안으로 들어서자 MRI, PET-CT 등 첨단 장비들을 활용한 실험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영장류 실험은 의학산업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동물실험 하면 흔히 설치류(쥐)를 떠올리지만 설치류는 인간과 유전적으로 차이가 크다보니 실험에서 얻은 결과를 그대로 사람에게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진정제로 개발된 탈리도마이드다. 탈리도마이드는 설치류 실험에서 부작용이 없어 1950년대 후반~1960년대 임산부들의 입덧 방지용으로 판매됐다. 결국 46개국에서 1만명의 기형아 출산이 이어진 다음에야 사용이 중단됐다. 미국의 경우 신약개발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효과적인 연구를 위해 설치류 실험을 성공한 약에 대해선 반드시 영장류 실험을 거치도록 규정을 만들기도 했다.

지난해 한미약품이 세계 유수의 제약사들을 상대로 8조원의 기술수출 쾌거를 올린 뒤 국가영장류센터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제2, 제3의 한미약품이 탄생하려면 영장류 실험을 포함한 의학 인프라가 갖춰져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실험용 원숭이를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실험용 원숭이는 야생에 있는 원숭이를 바로 잡아 사용할 수는 없다. 야생의 원숭이를 잡아 실험실에서 키워 새끼를 낳고 이를 다시 키우는 과정을 반복해야한다. 실험용 원숭이는 바이러스 감염 등이 없는 통제된 실험실에서 태어나고 자란 원숭이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현재 전세계 실험용 원숭이 시장 수요의 95%를 중국이 공급하고 있다.
중국에서 원숭이를 들여오는데는 또다른 난관이 있다. ‘동물을 인도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PETA) 등 동물애호가 단체의 반대시위로 각국 항공사들이 화물기에 원숭이를 싣는 것을 꺼린다. 이 센터장은 2012년부터 PETA 등의 반대시위로 항공사들이 원숭이 수송을 중단하겠다는 선언을 시작했다”며 지난해 남방항공과 에어프랑스까지 동참하면서 이제 각국의 국적기 대부분이 원숭이 수송을 맡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국적기가 없으면 전세기를 띄워 원숭이를 들여올 수 있지만 큰 비용이 들어간다. 전세기를 한 번 띄우려면 4억~5억 정도가 들어가는데 원숭이 한 마리의 단가가 500만원 정도이므로 한 번에 1000마리씩 계약을 해야 단가를 낮춰 수입이 가능해진다.
국가영장류센터는 필리핀원숭이, 레서스원숭이, 녹색원숭이, 일본원숭이 등 다양한 원숭이 400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뇌 질환 연구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신약개발 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알츠하이머성 치매, 파킨슨씨병, 뇌졸중 등 영장류 질환모델 3종이 국가영장류센터에서 만들어졌다. 국내 최초로 시험관 원숭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어렵게 원숭이를 구하더라도 그걸로 끝이 아니다. 이제는 질환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질환모델이란 사람과 똑같은 병을 앓는 원숭이를 뜻한다.
가령 뇌혈관 질환을 연구해야한다면 먼저 원숭이가 이런 질환을 앓도록 만들어야한다. 뇌혈관이 막힐 경우 우리는 병원에서 막힌 혈관을 뚫는 수술을 받게 된다. 이 수술을 반대로 해주면 원숭이 질환 모델을 만들 수 있다.
허재원 선임연구원은 뇌혈관 전문의들이 이 작업을 할 수 있다”며 특정 뇌 혈관 부위에 막힌 혈관을 뚫어주는 스텐트가 아닌 풍선 등 블로커를 놓아주면 혈관을 막히게 할 수 있어 뇌혈관 질환 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원숭이 수출국인 중국은 표정관리를 하느라 바쁘다. 실험용 원숭이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인 중국의 몸값을 올릴 수 있는데다 한국 등 제약업체의 영장류 실험까지도 중국으로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센터장은 중국은 한국 등 실험용 원숭이 수입국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다”며 실제 중국에서 우리 센터에 ‘실험을 중국에 와서 하는게 어떠냐. 우린 MRI, PET-CT 등 필요한 장비도 다 갖추고 있다는 식으로 끊임없이 제안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제약사들이 중국에서 실험을 할 경우 데이터 유출 걱정도 있지만 국내에서 충분한 여건을 빨리 마련하지 못한다면 이같은 상황이 계속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도 국가영장류센터가 의학발전에 필수적인 인프라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행동에 나섰다. 정부에서는 영장류 실험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2017년 완공을 목표로 약 4000마리 규모의 영장류자원지원센터를 전북 정읍에 짓기로 했다. 향후 늘어날 수 있는 영장류 실험에 대비해 충분한 실험용 원숭이를 확보해 놓는다는 것이 골자다. 다만 예산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점은 아쉬운 점이다.
이 센터장은 정읍센터에 필요한 재원으로 올해 35억원을 요청했는데 0원으로 결정됐다가 겨우 8억원 정도 확보했다”며 금액이 많이 부족하지만 아쉬운대로나마 시작 금액을 받은데 의의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예산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하면서 정읍 센터의 가동시점도 늦춰지게 됐다. 현재 예산으로는 충분한 원숭이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 센터장은 예전부터 노 리소스, 노 리서치, 노 프로덕트를 주장해왔는데 자원이 없으면 연구를 할 수 없고 연구를 할 수 없다면 제품을 만들 수 없다는 말”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에 탄탄한 인프라를 갖춰야 안정적인 실험기반에서 의학이 발전할 수 있다”며 국가영장류센터는 한 국가의 과학기술 척도를 보여주는 중요한 기관으로 정읍 센터를 기반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국가영장류센터를 나서다 보니 한켠에 작은 위령비가 보였다. 이곳에서는 실험으로 희생된 원숭이들의 위령제가 매년 열린다. 인류를 위해 희생한 원숭이들의 넋을 기리고 연구자들이 연구윤리를 되새기기 위함이다.
인류의 건강을 위하여 고귀한 생명을 바친 고마운 넋들이여! 그대들의 의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며 이러한 희생을 줄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오창 = 이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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