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배치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을 빚었던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에 대해 한·미가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정황이 포착됐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8일(현지시간) 고위 관리의 발언을 인용해 사드 한반도 배치와 관련한 협상이 진행 중이며 이르면 다음 주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최근 한국 고위 관리들과 접촉한 미국의 전직 관료가 한국 정부 내에서 사드 도입에 대한 긍정적인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사드 한반도 배치를 최종 결정한 것은 아니지만 비공식 협의가 늘어나고 있고 공감대가 확대되고 있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도 이날 우리는 철저히 국익에 따라 사드배치를 검토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며 미국측의 공식적인 요청이 오면 보다 구체적인 협의와 검토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 중에 중국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 사드 한반도 배치 논의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사드의 레이더 탐지 범위가 북한 영토를 넘어 중국 북부까지 이르기 때문이다. 케리 국무장관은 지난 27일 중국을 방문해 미국과 동맹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어떤 조치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13일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사드의 한반도 배치와 관련해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 등을 감안해 가면서 우리의 안보와 국익에 따라서 검토해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국방부는 미국 언론의 보도 내용에 대해 일단 부인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주한미군 사드 배치와 관련해 우리 정부는 미국 정부로부터 협의 요청을 받은 바 없다”면서 미국 정부내 에서 주한미군 사드 배치 논의가 이뤄지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사드의 군사적 효용성 등 기술적 사항에 대해 실무차원에서 내용을 파악 중”이라며 주한미군이 사드를 배치한다면 우리 안보와 국방에 도움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는 이미 물밑에서 사드 관련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사드의 제조사인 미국 록히드마틴 관계자들은 지난 해 말부터 잇달아 한국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방위사업청 등과 한국형 전투기(KF-X) 개발사업과 관련한 기술 이전 문제를 주로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일각에서는 비공식적으로 사드 배치에 따른 가격과 조건 등에 관해서도 입장을 전달하지 않았겠느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사드의 레이더는 탐지범위가 1200km 이상으로 알려진 전방배치모드(FBM)와 이보다 훨씬 짧은 600km 정도로 알려진 종말단계모드(TBM) 두가지가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반발을 우려해 중국 본토에 미치지 않는 TBM 레이더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중 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한미군이 2개 포대의 사드를 배치하고, 배치 후보지도 대구와 경북 칠곡 등의 한 곳을 확정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군의 소식통은 사드 포대는 남한 전체로 봤을 때 남쪽에 배치하는 게 전략적으로 옳다”며 일부에서 미군기지가 이전될 평택을 후보지로 거론하는데 맞지 않는 얘기”라고 말했다.
한미가 사드 배치 문제를 실제 협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표하면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이 만많치않을 전망이다. 특히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따른 대북 제재방안을 놓고 중국이 한미일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상황에서 사드까지 터지면 한중 및 한미일과 중국간 대북 제재 공조 국면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 서울 = 남기현 기자 / 안두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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