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美 피오리아) 이상철 기자] 프로야구 스토브리그에서 단연 화제를 모은 팀은 롯데 자이언츠.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손승락(34)과 윤길현(33)을 붙잡았다. 잦은 방화로 ‘롯데시네마라는 불명예를 안았던 롯데는 치료제를 구한 셈이다.
조원우 신임 감독은 빈 칸을 채워가면서도 불펜 구상을 일찍이 마쳤다. 맨 뒤는 손승락, 그리고 그 앞에는 윤길현과 정대현. 그만큼 이 베테랑에 대한 믿음이 크다는 것.
실력과 실적은 훌륭했다. 손승락은 최근 6년간 177세이브를 올렸으며, 윤길현도 최근 3년간 34홀드 20세이브를 올렸다. 롯데의 한 관계자는 불펜 붕괴로 놓친 승리가 많았다. 때문에 이를 강화하는데 신경을 많이 썼다”라며 손승락과 윤길현은 출중한 기량을 갖췄다. 하던 대로만 해줬으면 싶다”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롯데의 손승락-윤길현 영입에는 뒷이야기도 있다. 윤길현이 롯데 이적 후 손승락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뛰자”고 요청한 것. 둘은 대구고 출신 1년 선후배 사이다. 손승락이 하루 뒤 윤길현을 따라 부산으로 향했다.
16년 전 대구고의 부흥을 이끌었던 이들이 뭉쳤다. 별 볼 일 없던 무승 팀을 1년 만에 전국대회 우승을 안긴 10대 후반의 소년들,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어 롯데에서 사고를 한 번 치려 한다.
▲2000년의 대구고
17년 전의 대구고는 약체였다. 같은 지역의 대구상고, 경북고를 만나면 늘 패배였다. 이긴 기억은 없다. 1999년 대구고는 1승도 하지 못했다. 그나마 전패는 면했다. 두 번의 무승부로.
그때 유격수로 포지션이 같았던 ‘2학년 손승락과 ‘1학년 윤길현은 룸메이트(윤길현은 유격수와 투수를 겸업하다가 2학년부터 투수로 전념했다). 그때부터 둘은 끈끈했다. 손승락은 ‘방졸 윤길현을 무척 챙겼다. 손승락은 다른 후배에게 호랑이 같은 선배였지만, 윤길현에게는 토끼 같은 선배였다. 윤길현은 진득한 선배다. 비밀 없이 털어놓는 등 형제처럼 지냈다. (손)승락이형이 잘 해줬으니 이렇게 같이 안 있겠냐”라고 웃었다.
손승락이 3학년, 윤길현이 2학년이 된 2000년, 박태호 감독(현 영남대 감독)이 대구고에 부임했다. 박 감독은 약팀을 강팀으로 만들겠다며 지옥훈련을 선포. 365일 훈련이었다. 땀보다 눈물이 더 많을 정도로 상상초월의 훈련량이었다. 교문 밖을 나가지도 못하며 합숙과 훈련의 반복이었다.
손승락은 바깥 구경을 하는 날은 (야구부)단체로 동네 목욕탕을 갈 때였다”라며 웃었다. 이에 윤길현이 형, 그거 기억나세요. 12월 31일 오전 운동하고 1월 1일에 오후 운동을 했잖아요”라고 장단을 맞췄다.
손승락의 말대로 땀과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늘 졌던 대구고가 1년 만에 늘 이겼다. 조기 탈락만 하던 전국대회에도 상위권 성적을 거뒀다. 손승락은 이를 ‘에이스 윤길현 덕분이라고 칭송했다.
140km 중반의 속구와 예리한 슬라이더가 결정구였던 윤길현은 당시 영남권 최고의 에이스로 꼽혔다. 때문에 윤길현은 쉴 새 없이 마운드에 올랐다. 대구고가 오늘 경기를 이기면, 이튿날 경기에 또 등판. 윤길현은 아마 공식 경기 기록만 찾아도 100이닝 이상을 던졌을 것이다”라고 했다.
야수였던 손승락은 늘 새벽 늦게까지 운동했다. 스윙 또 스윙. 당시 윤길현은 숙소에서 푹 잤다. 그게 부럽지는 않았을까. 손승락이 단박에 말한다. No.” 손승락은 왜 부럽나. (윤)길현이는 쉬워야 했다. (경기를)이기려면 (윤)길현이가 잘 던져야 했고, 주전급 선수들이 잘 해야 했다. (그 해 성적은)3학년의 (프로 및 대학)진학 여부가 달려있었다. 그래서 그 친구들을 최대한 배려했다”라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손승락의 증언(?)대로 에이스의 불꽃 피칭 속에 대구고는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2000년 전국체전 정상에 올랐다. 이 우승으로 대구고의 위상은 180도 달라졌다. 손승락이 한마디를 덧붙인다. 대구고가 지금 같이 우수 선수를 데려가며 좋아질 수 있었던 건 다 윤길현 덕분이다. 대구고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이를 듣던 윤길현이 손사래를 치며 외친다. 아니다. (그 사람은)승락이형이다.”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해야 했던 손승락은 영남대로 진학했다. 프로야구단(현대 유니콘스)의 지명(2001년 2차 3라운드 25순위)을 받았으며, 4년 뒤 프로야구선수가 됐다. 윤길현은 1년 선배보다 먼저 프로의 길을 걸었다. 프로의 세계에서는 3년 선배.
손승락은 그 길을 열어준 게 윤길현이라고 했다. 손승락은 내 기억에 길현이는 아주 고마운 후배다. 에이스로서 학교와 선배를 위해 공을 던졌으니까. 아파도 소염제를 먹고 공을 던졌다. 고마우면서 참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윤길현은 형, 나를 위해 던진 거에요”라고 부인했으나, 손승락이 졸업한 뒤 그는 1년간 마운드에 오를 수 없었다. 팔꿈치가 너무 아파서.
유격수 손승락이 투수 손승락이 된 것도 다 윤길현 덕분이라고. 손승락은 길현이만 매 경기 완투할 수 없었다. 언제 한 번 길현이가 탈이 났는데, 막상 공을 던질 선수가 없었다. 감독님께서 나보고 ‘한 번 던져봐라고 하시더라. 그때 상황이 무사 만루였다”라고 황망한 상황을 떠올리며 웃더니 그런데 내가 무실점으로 막았다. 그때부터 틈이 날 때마다 재미있게 피칭했다. 구속도 130km에서 두 달 만에 140km 후반까지 올라갔다. 새벽 내내 배트만 휘두르던 내가 프로에서 투수 지명을 받았다. 그때 길현이가 내 새로운 인생을 열어준 셈이다”라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16년 전 대구고의 전국체전 우승 축포가 터진 도시가 부산이다. 그 곳은 이제 손승락과 윤길현의 새 둥지가 됐다. 이들에 대한 기대는 안팎으로 크다. 최효석 부산 MBC 해설위원은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영입”이라고 표현했다. 팀 내 빠른 적응을 위해 둘을 가장 잘 대해준다는 송승준은 손승락과 윤길현의 가세는 큰 행운이다. 불펜에 대한 믿음이 더욱 간다. 팀에 (절대적인)플러스 요인이다. 올해 한 번 도전해 볼만한 시즌인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손승락과 윤길현도 의기투합. 16년 만에 함께 뛰면서 한 번 해보자는 각오가 남다르다. 윤길현은 예전 사직구장에 등판했을 때 롯데 팬의 함성에 기가 눌려 경기를 ‘말아먹은 적이 있다. ‘저런 응원을 등에 업고 던지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다. (이제 그렇게 됐으니)열심히 잘 해야 할 것 같다”라고 전했다.
롯데는 든든한 지원군을 얻었다. 기록도 기록이고, 무엇보다 튼튼하다. 손승락은 2010년 이후 가장 적은 등판이 49경기였다. 윤길현 또한 2013년 이후 45경기→59경기→70경기로 ‘철인이 되어가고 있다(지난해 투수 중 최다 출전 공동 6위). 그만큼은 한다, 아니 그 이상은 해야 한다는 게 대구고 방장-방졸의 다짐이다.
윤길현은 늘 목표를 정하고 시즌을 준비한다. 지난해 70경기를 뛰었고 홀드(17)와 세이브(13)로 30개를 했다. 올해는 이를 다 넘고 싶다”라고 밝혔다. 손승락은 난 늘 오늘 한 경기만 생각하며 뛴다. 팀이 승리하면 개인 기록도 뒤따른다”라며 가을야구를 먼저 한 번 한 뒤에 개인 타이틀을 도전하겠다”라고 말했다.
롯데는 역대 구원 부문 타이틀 수상자가 극소수였다. 2004년 임경완이 홀드왕(22)을, 2009년 애킨스가 세이브왕(26)을 차지했다. 그게 유일하다. 롯데의 뒷문을 단단히 할 손승락과 윤길현. 역대 두 번째 롯데 출신 세이브왕 및 홀드왕의 탄생도 기대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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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우 신임 감독은 빈 칸을 채워가면서도 불펜 구상을 일찍이 마쳤다. 맨 뒤는 손승락, 그리고 그 앞에는 윤길현과 정대현. 그만큼 이 베테랑에 대한 믿음이 크다는 것.
실력과 실적은 훌륭했다. 손승락은 최근 6년간 177세이브를 올렸으며, 윤길현도 최근 3년간 34홀드 20세이브를 올렸다. 롯데의 한 관계자는 불펜 붕괴로 놓친 승리가 많았다. 때문에 이를 강화하는데 신경을 많이 썼다”라며 손승락과 윤길현은 출중한 기량을 갖췄다. 하던 대로만 해줬으면 싶다”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롯데의 손승락-윤길현 영입에는 뒷이야기도 있다. 윤길현이 롯데 이적 후 손승락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뛰자”고 요청한 것. 둘은 대구고 출신 1년 선후배 사이다. 손승락이 하루 뒤 윤길현을 따라 부산으로 향했다.
16년 전 대구고의 부흥을 이끌었던 이들이 뭉쳤다. 별 볼 일 없던 무승 팀을 1년 만에 전국대회 우승을 안긴 10대 후반의 소년들,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어 롯데에서 사고를 한 번 치려 한다.
▲2000년의 대구고
17년 전의 대구고는 약체였다. 같은 지역의 대구상고, 경북고를 만나면 늘 패배였다. 이긴 기억은 없다. 1999년 대구고는 1승도 하지 못했다. 그나마 전패는 면했다. 두 번의 무승부로.
그때 유격수로 포지션이 같았던 ‘2학년 손승락과 ‘1학년 윤길현은 룸메이트(윤길현은 유격수와 투수를 겸업하다가 2학년부터 투수로 전념했다). 그때부터 둘은 끈끈했다. 손승락은 ‘방졸 윤길현을 무척 챙겼다. 손승락은 다른 후배에게 호랑이 같은 선배였지만, 윤길현에게는 토끼 같은 선배였다. 윤길현은 진득한 선배다. 비밀 없이 털어놓는 등 형제처럼 지냈다. (손)승락이형이 잘 해줬으니 이렇게 같이 안 있겠냐”라고 웃었다.
손승락이 3학년, 윤길현이 2학년이 된 2000년, 박태호 감독(현 영남대 감독)이 대구고에 부임했다. 박 감독은 약팀을 강팀으로 만들겠다며 지옥훈련을 선포. 365일 훈련이었다. 땀보다 눈물이 더 많을 정도로 상상초월의 훈련량이었다. 교문 밖을 나가지도 못하며 합숙과 훈련의 반복이었다.
손승락은 바깥 구경을 하는 날은 (야구부)단체로 동네 목욕탕을 갈 때였다”라며 웃었다. 이에 윤길현이 형, 그거 기억나세요. 12월 31일 오전 운동하고 1월 1일에 오후 운동을 했잖아요”라고 장단을 맞췄다.
손승락의 말대로 땀과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늘 졌던 대구고가 1년 만에 늘 이겼다. 조기 탈락만 하던 전국대회에도 상위권 성적을 거뒀다. 손승락은 이를 ‘에이스 윤길현 덕분이라고 칭송했다.
140km 중반의 속구와 예리한 슬라이더가 결정구였던 윤길현은 당시 영남권 최고의 에이스로 꼽혔다. 때문에 윤길현은 쉴 새 없이 마운드에 올랐다. 대구고가 오늘 경기를 이기면, 이튿날 경기에 또 등판. 윤길현은 아마 공식 경기 기록만 찾아도 100이닝 이상을 던졌을 것이다”라고 했다.
야수였던 손승락은 늘 새벽 늦게까지 운동했다. 스윙 또 스윙. 당시 윤길현은 숙소에서 푹 잤다. 그게 부럽지는 않았을까. 손승락이 단박에 말한다. No.” 손승락은 왜 부럽나. (윤)길현이는 쉬워야 했다. (경기를)이기려면 (윤)길현이가 잘 던져야 했고, 주전급 선수들이 잘 해야 했다. (그 해 성적은)3학년의 (프로 및 대학)진학 여부가 달려있었다. 그래서 그 친구들을 최대한 배려했다”라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손승락의 증언(?)대로 에이스의 불꽃 피칭 속에 대구고는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2000년 전국체전 정상에 올랐다. 이 우승으로 대구고의 위상은 180도 달라졌다. 손승락이 한마디를 덧붙인다. 대구고가 지금 같이 우수 선수를 데려가며 좋아질 수 있었던 건 다 윤길현 덕분이다. 대구고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이를 듣던 윤길현이 손사래를 치며 외친다. 아니다. (그 사람은)승락이형이다.”
손승락(사진)은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취득해 넥센 히어로즈를 떠나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그리고 대구고 1년 후배 윤길현과 다시 만났다. 사진(美 피오리아)=옥영화 기자
▲2016년의 롯데 자이언츠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해야 했던 손승락은 영남대로 진학했다. 프로야구단(현대 유니콘스)의 지명(2001년 2차 3라운드 25순위)을 받았으며, 4년 뒤 프로야구선수가 됐다. 윤길현은 1년 선배보다 먼저 프로의 길을 걸었다. 프로의 세계에서는 3년 선배.
손승락은 그 길을 열어준 게 윤길현이라고 했다. 손승락은 내 기억에 길현이는 아주 고마운 후배다. 에이스로서 학교와 선배를 위해 공을 던졌으니까. 아파도 소염제를 먹고 공을 던졌다. 고마우면서 참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윤길현은 형, 나를 위해 던진 거에요”라고 부인했으나, 손승락이 졸업한 뒤 그는 1년간 마운드에 오를 수 없었다. 팔꿈치가 너무 아파서.
유격수 손승락이 투수 손승락이 된 것도 다 윤길현 덕분이라고. 손승락은 길현이만 매 경기 완투할 수 없었다. 언제 한 번 길현이가 탈이 났는데, 막상 공을 던질 선수가 없었다. 감독님께서 나보고 ‘한 번 던져봐라고 하시더라. 그때 상황이 무사 만루였다”라고 황망한 상황을 떠올리며 웃더니 그런데 내가 무실점으로 막았다. 그때부터 틈이 날 때마다 재미있게 피칭했다. 구속도 130km에서 두 달 만에 140km 후반까지 올라갔다. 새벽 내내 배트만 휘두르던 내가 프로에서 투수 지명을 받았다. 그때 길현이가 내 새로운 인생을 열어준 셈이다”라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16년 전 대구고의 전국체전 우승 축포가 터진 도시가 부산이다. 그 곳은 이제 손승락과 윤길현의 새 둥지가 됐다. 이들에 대한 기대는 안팎으로 크다. 최효석 부산 MBC 해설위원은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영입”이라고 표현했다. 팀 내 빠른 적응을 위해 둘을 가장 잘 대해준다는 송승준은 손승락과 윤길현의 가세는 큰 행운이다. 불펜에 대한 믿음이 더욱 간다. 팀에 (절대적인)플러스 요인이다. 올해 한 번 도전해 볼만한 시즌인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손승락과 윤길현도 의기투합. 16년 만에 함께 뛰면서 한 번 해보자는 각오가 남다르다. 윤길현은 예전 사직구장에 등판했을 때 롯데 팬의 함성에 기가 눌려 경기를 ‘말아먹은 적이 있다. ‘저런 응원을 등에 업고 던지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다. (이제 그렇게 됐으니)열심히 잘 해야 할 것 같다”라고 전했다.
윤길현(사진)은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취득해 SK 와이번스를 떠나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그리고 대구고 1년 선배 손승락과 다시 만났다. 사진(美 피오리아)=옥영화 기자
손승락도 어딜 가도 알아봐주는 롯데 팬의 사랑을 롯데 팬의 열성적인 응원이 부담될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큰 설렘이다. 못 하면 질타를 받을 수 있겠지만 그걸 피하고 싶지 않다. 내가 잘 할 경우, 큰 사랑을 받을 수 있다. 남자라면 한 번 부딪혀 봐야하지 않을까. 마운드 위에서 보여주겠다”라고 각오를 다졌다.롯데는 든든한 지원군을 얻었다. 기록도 기록이고, 무엇보다 튼튼하다. 손승락은 2010년 이후 가장 적은 등판이 49경기였다. 윤길현 또한 2013년 이후 45경기→59경기→70경기로 ‘철인이 되어가고 있다(지난해 투수 중 최다 출전 공동 6위). 그만큼은 한다, 아니 그 이상은 해야 한다는 게 대구고 방장-방졸의 다짐이다.
윤길현은 늘 목표를 정하고 시즌을 준비한다. 지난해 70경기를 뛰었고 홀드(17)와 세이브(13)로 30개를 했다. 올해는 이를 다 넘고 싶다”라고 밝혔다. 손승락은 난 늘 오늘 한 경기만 생각하며 뛴다. 팀이 승리하면 개인 기록도 뒤따른다”라며 가을야구를 먼저 한 번 한 뒤에 개인 타이틀을 도전하겠다”라고 말했다.
롯데는 역대 구원 부문 타이틀 수상자가 극소수였다. 2004년 임경완이 홀드왕(22)을, 2009년 애킨스가 세이브왕(26)을 차지했다. 그게 유일하다. 롯데의 뒷문을 단단히 할 손승락과 윤길현. 역대 두 번째 롯데 출신 세이브왕 및 홀드왕의 탄생도 기대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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