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입은 여성의 가슴이나 다리를 몰래 촬영해 성범죄 혐의로 기소된 20대 기자에게 대법원이 성범죄 혐의로는 처벌하기 어렵다는 판결을 선고했다. 몰래 촬영한 행위는 잘못됐지만 노출이 없었고, 특정 신체 부위가 강조되지 않았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허락 없이 여성을 촬영하는 행위를 제지할 수 없게 됐다는 지적이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지하철이나 엘리베이터 등에서 여성들의 신체를 몰래 촬영한 혐의(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위반)로 기소된 신문기자 유 모씨(29)의 상고심에서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전체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북부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고 24일 밝혔다.
재판부는 촬영당한 피해자의 신체 부위가 피해자와 같은 성별, 연령대의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들의 관점에서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특히 △목·손 등을 제외하곤 노출 신체 부위가 없고 △특별히 가슴을 강조하거나 그 윤곽선이 드러나지 않은 점을 들어 유씨의 유죄 부분을 파기했다.
그러나 유씨의 행위가 부적절하고 피해 여성에게 불안감과 불쾌감을 유발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판결문에 따르면 유씨는 2013년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엘리베이터에서 1번, 길거리에서 2번, 지하철 1·5호선에서 46번 등 49차례에 걸쳐 여성들의 가슴과 다리 등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유씨에게 전부 무죄를 선고했으나 항소심은 벌금 100만원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24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항소심에선 유씨가 2014년 4월 서울 동대문구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피해자 A씨를 촬영한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유씨는 레깅스에 회색 티셔츠를 입은 A씨를 아파트 엘리베이터에까지 따라가 스마트폰 카메라를 이용해 상반신 가슴 부위를 찍은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휴대전화 촬영음을 듣고 자신이 촬영 당한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늦은 밤 시간에 유씨와 단둘이 엘리베이터에 있었기 때문에 겁을 먹고 바로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A씨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뒤 폐쇄회로TV(CCTV)를 확인하고는 유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김세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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