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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스케치] 넥센이 박병호와 작별하는 법 : 99% 성공-1% 실패
입력 2016-01-23 08:02  | 수정 2016-01-23 09:49
넥센 히어로즈는 23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서프라이즈 스타디움에서 훈련에 앞서 박병호 환송회를 열었다. 박병호는 예상치 못한 퍼포먼스에 깜짝 놀랐지만, 서건창의 케이크 기습 공격만은 나름 잘 피했다. 사진(美 서프라이즈)=옥영화 기자
[매경닷컴 MK스포츠(美 서프라이즈) 이상철 기자] 23일(한국시간)은 넥센 히어로즈의 스프링캠프 여섯 번째 훈련일이었다. 그리고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의 마지막 합동 훈련일이었다. 박병호는 이틀 뒤 구단 공식 행사(팬 페스티벌) 참석 차 미네소타로 이동한다.
박병호의 현재 소속은 미네소타. 지난해 11월 1285만달러의 포스팅 금액을 제시한 미네소타와 최대 5년 1800만달러 계약을 했다. 미네소타 유니폼을 입고 입단식을 가졌던 박병호는 내달 플로리다에서 열리는 미네소타의 스프링캠프에 합류한다. 그때까지 ‘친정에 남아 있었다. 목동구장을 찾아 동료들과 함께 운동했다. 지난 12일 출국 후에도 애리조나주 서프라이즈를 찾아 넥센의 스프링캠프에서 땀을 흘렸다.
하지만 이제 박병호와 ‘진짜 작별이었다. 넥센은 박병호와 마지막일지 모를 추억을 아름답게 만들었다. 주장 서건창을 비롯해 넥센 선수들은 박병호의 마지막 합동 훈련일에 환송회를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D-Day는 며칠 전 취재진에게 비밀리에 전달됐지만, 철저하게 박병호의 눈과 귀만은 막았다. 박병호는 지난 22일 넥센 선수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도 했다. 그때까지도 환송회와 관련해 아는 게 없었다. 정확하게 환송회 프로그램을.
넥센은 1년 전에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로 이적한 강정호를 위한 환송회를 열었다. 박병호는 강정호의 성공을 빌며 박수를 쳤다. 그 같은 전철이 반복될 것이라고 조금은 상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박병호의 생각보다 더욱 예측불허의 시끌벅적 환송회였다.
23일 넥센의 훈련 시작 시간은 평소보다 15분 앞당겨졌다. 훈련 전 미팅, 이강철 수석코치를 중심으로 선수단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모였다. 이 코치의 박병호가 메이저리그에 가서도 잘 할 수 있도록 박수를 쳐주자”는 말과 함께, ‘짝짝짝 큰 박수소리가 서프라이즈 스타디움 주변에 울려 퍼졌다. 이에 박병호는 메이저리그에 간다는 생각보다 넥센과 헤어진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강)정호와 저를 위해 아침마다 많은 응원해 달라”라고 답했다.
이제부터 박병호를 위한 쇼 타임. 김하성의 당분간 이 응원가를 못 들을거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선수들은 다 같이 박병호의 넥센 시절 응원가와 등장곡(빅뱅의 ‘뱅뱅뱅)을 불렀다. 여기까지는 1년 전 강정호의 환송식과 다를 게 없었다. 그 이후부터가 진짜 ‘서프라이즈.
이날 환송회의 ‘열쇠로 꼽혔던 김재현이 등장할 차례. 김재현은 ‘뱅뱅뱅 노래와 함께 빅뱅의 총알 세리머니를 따라했다. ‘빵야~빵야~. 이에 넥센의 선수들이 쓰러졌다. 김재현은 등을 돌리더니 박병호를 향해 총알을 장전했다. ‘빵야~빵야~. 갑작스런 퍼포먼스에 박병호는 순간 당황. 못하면 한 번 더. ‘빵야~빵야~. 두 번째는 피하지 않았다. 박병호는 뒤로 넘어졌다. ‘꽈당~.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넥센 히어로즈는 23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서프라이즈 스타디움에서 훈련에 앞서 박병호 환송회를 열었다. 박병호는 예상치 못한 퍼포먼스에 깜짝 놀랐지만, 서건창의 케이크 기습 공격만은 나름 잘 피했다. 사진은 빅뱅의 ‘뱅뱅뱅에 맞춰 총알 세리머니를 하는 김재현을 비롯한 넥센의 선수들. 사진(美 서프라이즈)=옥영화 기자
박병호는 선수들과 기분 좋게 작별할 수 있게 돼 기분이 좋다. 그리고 신경 쓰고 준비해준 선수들에게 고맙다. (총알 세리머니)퍼포먼스가 센스 있었다. 순간적으로 ‘뭐하는 건가 싶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두 번의 도전 끝에 그 총알 세리머니를 맞고 쓰러진 것은)나도 그 상황에서 푹 빠졌던 것 같다”라며 웃었다.
‘총알 사냥꾼으로 낙점된 배경을 묻자, 김재현은 형들 때문이라고. 김재현은 (김)정훈이형의 아이디어였다. 평소 내가 말수도 없고 조용한 편인데, ‘이런 애가 해야 웃긴다라는 의견의 모아졌다. 난 분위기메이커가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 선발 이유는 설득력이 있었다. 김재현의 깜짝 퍼포먼스는 ‘대박을 쳤다. 다만, 정말 얌전한 선수인지는 의문. 주변 동료들은 절대 아니다”라고 한 목소리로 외쳤다.
여기까지 넥센의 비밀 프로젝트는 완벽한 성공. 그러나 99%까지였다. 마지막 1%가 실패였다. 박병호 환송회의 마지막 이벤트는 선수단이 하루 전날 몰래 구입한 케이크. 서건창은 박병호의 등번호(52)를 상징하는 숫자 5와 2의 초가 꽂은 케이크를 들었다.
박병호가 촛불을 끄자, 서건창이 ‘돌변했다. 박병호에게 케이크를 묻히려고 덤벼든 것. 그러나 박병호의 빠른 반사 신경과 더 센 힘으로 상황은 역전. 얼굴에 온통 케이크 범벅인 건 박병호가 아닌 서건창이었다. 서건창은 한 번 더 기회를 엿봤는데, 이번에는 박병호의 얼굴 왼쪽 부분 공략 성공. 두 선수는 웜업 전 세수부터 해야 했다. 웃음 폭탄은 확실하게 터뜨렸다. 선수단은 배가 아플 정도로 크게 웃었다.

왜 실패했을까. 박병호는 서건창에게 웨이트(트레이닝) 좀 더 해라”라며 떠나기 전 ‘마지막 조언(?)을 했다. 서건창의 생각은 달랐다. 서건창은 전략은 완벽했다. 그런데 내가 너무 서둘렀다”라며 타이밍을 좀 더 늦췄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부 고발자가 있었다. 라이언 피어밴드가 박병호에게 케이크를 조심하라”라고 귀띔해준 것. 박병호는 촛불을 끄기 전부터 서건창의 기습을 알고 있었다.
즐겁고 뜨거운 환송회에 감격한 박병호는 못다 한 말을 마지막 훈련을 마치고 남겼다. 넥센 팬의 응원이 정말 힘이 됐다. 아마 그 응원이 많이 그리울 것 같다. (지난 2011년)트레이드 후 떠난 선수의 빈자리를 완벽히 못 채우겠지만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그 뒤 난 정말 넥센 팬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감사하다. 이제는 (현장에서)응원을 못 받겠지만, 앞으로 새로운 도전을 기대해 달라.”
넥센 히어로즈는 23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서프라이즈 스타디움에서 훈련에 앞서 박병호 환송회를 열었다. 박병호는 예상치 못한 퍼포먼스에 깜짝 놀랐지만, 서건창의 케이크 기습 공격만은 나름 잘 피했다. 사진(美 서프라이즈)=옥영화 기자
그렇게 박병호는 떠난다. 오는 25일 훈련에 앞서 박병호가 마지막 인사를 건넬 예정. 그러나 그때 박병호의 복장은 넥센의 트레이닝 유니폼이 아닌 편안한 사복 차림이다. 넥센 모자를 쓰고 넥센 유니폼을 입은 박병호의 마지막 풍경. 넥센 선수들은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없게 된다는 것에 아쉬워했다.
서건창은 지금은 모르겠지만, 막상 떠난 뒤(25일 이후 훈련)에는 그 빈자리가 느껴질 것 같다”라고 했다. 심재학 코치도 좋은 일로 떠나는 데도 아쉬움이 크다. (박)병호도 짧은 시간동안 뛰면서도 넥센에 큰 정이 든 느낌이었다”라며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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