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경제학이 과학적이라고요? 알면 알수록 심리학이죠
입력 2016-01-22 11:51 

경제학은 수학의 언어를 쓰는 이성의 학문이다. 일반 경제학 이론에서 가정하는 사람은 대단히 이성적이고 감정과는 거리가 멀며, 복잡한 계산도 척척 해내고, 자기통제 문제도 겪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이러한 사람은 상상 속에만 존재함을 알고 있다. 이런 호모이코노미쿠스, 즉 ‘이콘(Econ)과 현실 속 ‘인간은 엄연히 다르다. 직업 선택에 있어서도, 결혼에 있어서도 터무니 없는 선택을 쉽게 저지르고 만다.
리처드 탈러 시카고 부스 경영대학원 교수는 인간의 비이성적 선택에 관해 연구해온 학자다. 제한적 합리성에 기반한 경제학 분야인 행동 경제학을 체계화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넛지를 활용한 방법론으로 저축플랜을 설계했고, 빚더미에 앉은 미국에 해결책을 제시한 학자라는 평가도 받는다.
이 책은 197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행동경제학과 함께한 그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 행동 경제학이 무엇인지, 어떤 관점으로 자신과 타인의 선택을 조율할 것인지, 어떻게 넛지를 활용할 것인지 등에 관한 이야기를 40여년에 걸친 개인사 속에 녹여낸다. 한국어판(‘넛지는 전세계 중 한국에서 가장 많은 40만부가 팔렸다) 서문에서 그는 ‘넛지 출간 이후 8년동안 전세계 50여개국에 규제를 타파하는 기구가 ‘넛지 부서라는 애칭으로 생겨났다고 밝힌다. 원고를 퇴짜맞으며 출판사의 문을 두드리던 시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누군가에 무언가를 지시하지 않고서도 사람들이 더 나은 결정을 내리도록 ‘부드럽게 유도하는 정책이 전세계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는 말이다.
먼저 1970년대 교수 초년병 시절 이야기부터. 미시경제학 수업에서 그는 학생들의 큰 갈등을 빚었다. 난이도 조절을 위해 어려운 문제를 낸 탓에 점수 분포가 넓게 분포하도록 만드는데 성공했지만, 정작 점수가 발표되자 소동이 일었다. 평균점수가 100점 만점에 72점에 그쳤던 것이다. 상대평가인 탓에 80점 이상에는 A를, 65점 이상은 B를 주기로 했지만 항의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묘안을 냈다. 다음 시험에선 만점을 100점이 아닌 137점으로 높였다. 난이도를 더 높였음에도 평균점수는 기분 좋게 96점으로 나왔고, 학생들은 환호했다. ‘조삼모사와 다름없는 일이지만, 시험이 어렵다는 불평은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경제학자의 시선에서 137점 만점에 96점은 100점 만점으로 환산해 70점에 그친다. 더 기뻐할 이유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탈러는 경제학 모형 속의 가상적 존재와는 동떨어진 방식으로 살아가는 ‘진짜 사람에 대해서 알게 됐다. 경제학 이론에서 가장 핵심적인 가정은 사람들이 최적의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식품점에 들어선 사람을 예로 들어보자. 물건을 하나 하려고 해도 수백만 가지의 제품 조합 중 최고의 선택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 직장, 대출상품, 배우자를 고를땐 얼마나 어려운가. 여기에 사람들이 선택을 내릴 때 기반으로 삼는 믿음들은 편향된 경우가 많다. 경제적으로 기념일이나 생일에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현금이다. 현금으로 가장 최적의 물건을 직접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콘과 달리 사람은 현금이 아니라 고른 사람의 정성이 담긴 특별한 물건을 더 소중하게 여기기 마련이다.
동료 학자들에게서도 그는 온갖 흥미로운 사례를 목격했다. 필요 없는 침대 커버를 폭탄 세일에 혹해 구입하고, 1000달러의 회비가 아까워 테니스 엘보를 앓으면서도 쓰러지기 직전까지 테니스를 치는 모습을 본 것이다. 왜 똑똑한 사람들이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가? 이 질문은 그의 학문세계를 이끈 주제가 됐다.
책에는 이후 그가 수십년에 걸쳐 발전시킨 행동경제학의 여러 이론과 사례가 다채롭게 소개된다. 미국의 메이시 백화점은 2006~7년 쿠폰과 세일 제도를 줄이고 정직한 정가제를 펴는 대대적인 실험을 나섰다. 쿠폰 남용 때문에 그들의 브랜드가 등의 중저자 브랜드와 비슷해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쿠폰 발행량을 30% 줄이자 매출은 곤두박질쳤다. 할인 상품을 산다는 소비자의 ‘소소한 즐거움을 없앤 대가였다. 반면 코스트코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주차장을 가보면 고급 외제차량이 즐비하다. 부자들 역시 세일이 주는 거래효용의 짜릿함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책에서 그는 학자로서의 삶을 변화시킨 스승 대니얼 카너먼, 아모스 트버스키와의 인연 등 소소한 개인사를 털어놓는다. 동시에 그는 금융위기를 부른 시장의 이성적 과열, 드래프트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스타를 영입하는 방법, 거액의 상금이 걸린 게임 프로그램에서 일어나는 비이성적 선택 등 수많은 경제학적 선택에 관한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들려준다.
이처럼 심리학을 경제학의 영역에 끌어들이고, 시장 가격에서 나타나는 예외들을 발견하는데 집중하는 탈러는 경제학자로서 이단아였다. 심지어 행동경제학을 통해 공공정책에 대한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온 그를, 혹자는 시장을 관료주의로 대체하려고 하는 사회주의자라 비판하기도 했다. 전통 경제학자들과의 끝나지 않는 전쟁이나 다름없었던 자신의 학문 세계를 갈무리하며 그는 이콘들만 살아가는 가상 세계에 집착해온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백기를 흔들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어느쪽의 손을 들수는 없지만, 한가지는 분명하다. 이 행동경제학자의 이야기는 누구라도 혹할만큼 재미있다는 사실이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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