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웃기는 보이스피싱 '오명균 수사관', 경찰에 잡혔다 '뮤지션 꿈꾸던 청년'
입력 2016-01-21 16:12  | 수정 2016-01-26 13:36
웃기는 보이스피싱/사진=연합뉴스
웃기는 보이스피싱 '오명균 수사관', 경찰에 잡혔다 '뮤지션 꿈꾸던 청년'



지난해 4월 어설픈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전화를 걸었다 면박을 당하는 장면으로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음성파일의 주인공인 이른바 '오명균 수사관'이 붙잡혔습니다.

범인으로 잡힌 28살 유모씨는 경기 부천에 살며 뮤지션을 꿈꾸는 평범한 청년이었습니다. 집에 음악 장비를 들여놓고 전자음악 습작을 만들며 꿈을 키웠습니다.

꿈은 언젠가 이룰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당장은 돈이 필요했습니다. 수도권의 4년제 대학을 졸업했지만 안정된 직장을 구하지 못한 그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조선족 지인의 솔깃한 제안에 넘어간 게 그의 인생을 완전히 꼬이게 만들었습니다. 조선족 지인이 제안한 것은 바로 중국의 보이스피싱 콜센터에서 일하는 것으로, 해당 일을 하면 한 달에 수백만원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유씨는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꼬임에 넘어간 유씨는 2014년 12월 중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조모(43)씨가 지린(吉林)성 룽징(龍井)시에서 운영하는 보이스피싱 콜센터에서 며칠간 합숙 교육을 받고 '1차 작업팀'에 투입됐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검찰 수사관'이었습니다. 한국으로 전화를 걸어 "당신 이름으로 대포통장이 개설돼 가해자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피해자들을 속이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유씨에게 속아 넘어간 피해자는 '2차 작업팀'의 '검사'나 '금융감독원 직원'이 다시 전화해 허위 검찰청 사이트에 계좌번호 등 금융정보를 입력하도록 속였습니다.

이후 한국의 인출책이 피해자의 금융정보를 전달받아 은행에서 돈을 뽑아갔습니다.

한 번 범행에 성공할 때마다 유씨는 7%를 챙겼고, 그렇게 매달 150만원 정도를 꾸준히 벌었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을 속이는 데 성공하면 피싱범들 사이에서 나름 유명해지는 가운데, 유씨는 조금 다른 계기로 갑자기 피싱범들 사이에서 유명인사가 됐습니다. 지난해 4월 한 여성을 속이려다 실패하는 과정이 유튜브를 통해 퍼지면서입니다.

녹음 파일에서 유씨는 자신이 '서울중앙지검 오명균 수사관'이라며 목소리에 힘을 줬으나 돌아온 것은 키득거리는 상대방의 웃음소리였습니다.

보이스피싱 전화를 여러 차례 받아 본 상대방은 "왜 또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느냐"며 오히려 농담을 했고, 사기 치기를 포기한 유씨도 "아∼ 겁나 웃겨"라며 당황하지 않고 이 상황을 즐겼습니다.

이 대화 내용은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퍼져 나가며 조회수 50여만 건을 기록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마지막에 "인제 그만 웃고 끊어요"라고 여유를 부릴 정도로 담대했던 유씨는 검찰 수사관에서 2차 작업팀의 검사로 '승진'도 했습니다. 2차 작업팀원들은 한 달에 평균 4천여만원의 고수익을 올렸다고 합니다.

경찰 관계자는 "유씨는 자신이 1차 작업팀에서만 일했다고 했으나 복수의 공범들이 그가 나중에는 2차 작업팀으로 옮겼다고 진술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큰돈을 만져 보려던 유씨의 꿈은 1년 만에 끝났습니다.

경찰이 지난해 12월 국내에 들어온 콜센터 관리 총책 조씨를 검거했다는 소식이 현지에 전해지자 유씨를 비롯한 조직원들은 불안한 나머지 일을 그만두고 국내로 돌아왔다가 줄줄이 경찰에 붙잡힌 것입니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21일 2014년 2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보이스피싱으로 피해자 20여명에게서 3억원을 편취한 혐의(사기 등)로 조씨와 유씨, 국내 인출 모집 총책 채모(23)씨 등 14명을 구속하고 1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습니다.

조직원 일부가 적발된 경우는 많지만 이처럼 경찰이 한 조직의 한국인 총책을 모두 검거하는 성과를 올린 것은 드문 일입니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을 통해 중국 내 보이스피싱 조직의 신원을 확인해 중국 공안과 공조수사를 벌일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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