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교수, 영결식 엄수…칼바람 뚫고 찾아온 600여 명 '시대의 스승'
20년 수감생활에서 느낀 소회를 담은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등을 펴낸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영결식이 엄수됐습니다.
18일 오전 11시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대학성당에서 성공회식 학교장으로 열린 영결식에는 칼바람이 부는 영하의 날씨 속에서도 유족과 지인, 일반 시민 등 600여명이 찾았습니다.
방송인 김제동씨의 사회로 진행된 영결식에는 이재정 교육감이 조사를, 진영종 성공회대 교수회의장·윤미연 서울여대 초빙교수·고민정 KBS 아나운서·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 등이 추도사를 낭독했습니다. 또 가수 정태춘씨가 추모곡을 불렀습니다.
유족과 지인들이 성당 영결식장을 가득 메웠으며,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참가자들은 교내 피츠버그홀에서 복도까지 가득 메운 채 영결식 생중계를 지켜봤습니다.
교정 곳곳에는 신 교수의 제자들이 손수 적은 메시지가 담긴 엽서 수백여장이 붙어 있었습니다.
이 엽서에는 '사람이 희망임을 온몸과 영혼으로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대의 스승으로 진심으로 존경하며 돌아가심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등 글귀가 담겨 신 교수를 추모했습니다.
앞서 이달 16일 차려진 빈소에는 첫날 3천500여명, 둘째 날 4천여명, 이날 350여명 등 모두 7천850여명이 찾았습니다.
빈소에는 일반 시민뿐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와 정운찬 전 국무총리, 박원순 서울시장, 노회찬 전 의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안희정 충남지사, 이인영 의원, 유시민 의원, 박원석 의원, 안경환 전 인권위원장 등 각계 인사도 찾아 조문했습니다.
신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서 육사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교관으로 일하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됐습니다.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그는 20년 20일을 복역하다가 1988년 광복절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했습니다.
1989년부터 성공회대에서 정치경제학, 사회과학입문, 중국고전강독을 강의하던 신 교수는 1998년 사면복권됐습니다.
이후 감옥 생활에서 느낀 한과 고뇌를 편지와 글로 풀어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펴내고서는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1·2' '강의-나의 동양고전독법' '처음처럼' '변방을 찾아서' 등 활발한 저술활동을 했습니다.
신 교수는 아울러 '신영복체'로 불리는 글씨체로도 이름을 떨쳤습니다.
그는 2006년 성공회대에서 정년퇴직하고서도 석좌교수로 강의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2014년 희귀 피부암 진단을 받아 그해 겨울학기를 마지막으로 강단에서 내려왔습니다.
투병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이달 15일 오후 9시30분께 자택에서 호흡이 멈춰 인근 이대목동병원으로 옮겨졌고, 당일 오후 11시47분께 최종 사망선고가 내려졌습니다. 향년 75세.
신 교수의 시신은 영결식이 끝나고 벽제 시립 승화원으로 옮겨져 화장됩니다. 장지는 유족들의 의사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
20년 수감생활에서 느낀 소회를 담은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등을 펴낸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영결식이 엄수됐습니다.
18일 오전 11시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대학성당에서 성공회식 학교장으로 열린 영결식에는 칼바람이 부는 영하의 날씨 속에서도 유족과 지인, 일반 시민 등 600여명이 찾았습니다.
방송인 김제동씨의 사회로 진행된 영결식에는 이재정 교육감이 조사를, 진영종 성공회대 교수회의장·윤미연 서울여대 초빙교수·고민정 KBS 아나운서·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 등이 추도사를 낭독했습니다. 또 가수 정태춘씨가 추모곡을 불렀습니다.
유족과 지인들이 성당 영결식장을 가득 메웠으며,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참가자들은 교내 피츠버그홀에서 복도까지 가득 메운 채 영결식 생중계를 지켜봤습니다.
교정 곳곳에는 신 교수의 제자들이 손수 적은 메시지가 담긴 엽서 수백여장이 붙어 있었습니다.
이 엽서에는 '사람이 희망임을 온몸과 영혼으로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대의 스승으로 진심으로 존경하며 돌아가심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등 글귀가 담겨 신 교수를 추모했습니다.
앞서 이달 16일 차려진 빈소에는 첫날 3천500여명, 둘째 날 4천여명, 이날 350여명 등 모두 7천850여명이 찾았습니다.
빈소에는 일반 시민뿐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와 정운찬 전 국무총리, 박원순 서울시장, 노회찬 전 의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안희정 충남지사, 이인영 의원, 유시민 의원, 박원석 의원, 안경환 전 인권위원장 등 각계 인사도 찾아 조문했습니다.
신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서 육사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교관으로 일하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됐습니다.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그는 20년 20일을 복역하다가 1988년 광복절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했습니다.
1989년부터 성공회대에서 정치경제학, 사회과학입문, 중국고전강독을 강의하던 신 교수는 1998년 사면복권됐습니다.
이후 감옥 생활에서 느낀 한과 고뇌를 편지와 글로 풀어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펴내고서는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1·2' '강의-나의 동양고전독법' '처음처럼' '변방을 찾아서' 등 활발한 저술활동을 했습니다.
신 교수는 아울러 '신영복체'로 불리는 글씨체로도 이름을 떨쳤습니다.
그는 2006년 성공회대에서 정년퇴직하고서도 석좌교수로 강의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2014년 희귀 피부암 진단을 받아 그해 겨울학기를 마지막으로 강단에서 내려왔습니다.
투병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이달 15일 오후 9시30분께 자택에서 호흡이 멈춰 인근 이대목동병원으로 옮겨졌고, 당일 오후 11시47분께 최종 사망선고가 내려졌습니다. 향년 75세.
신 교수의 시신은 영결식이 끝나고 벽제 시립 승화원으로 옮겨져 화장됩니다. 장지는 유족들의 의사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