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산맥을 넘나드는 쇠재두루미처럼 몸을 만들어 위기를 넘자.” 조남성 삼성SDI 사장이 최근 사내 직원들에게 강조하고 있는 말이다. 조 사장은 지난 4일 신년사와 8일 사내방송·인트라넷을 통해 ‘쇠재두루미론을 주창했다. 조 사장은 우리도 조직 속의 ‘지방은 제거하고 ‘근육을 키워야만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쇠재두루미는 여름에서 가을까지 몽골초원에서 지내다 겨울이 오면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따뜻한 남쪽나라 인도에 가는 1m 남짓한 작은 철새다. 해발 8000m의 히말라야에서는 인간도 저산소증으로 눈알이 튀어나오고 손가락이 뒤틀린다. 쇠재두루미는 이같이 혹독한 환경의 히말라야 산맥을 넘기 위해 봄부터 체질까지 바꾼다.
우선 식성을 초식에서 잡식으로 바꾼다. 먹이주머니 등 몸집을 줄여 몸을 가볍게 한다. 호흡법도 바꾼다. 공기 주머니를 2개로 나누어 가늘고 길게 천천히 내쉬는 방식으로 들숨을 조절하는 노하우를 연마한다. 해발 8,000미터의 얼음공기를 마시면 심장 마비로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사장이 새해부터 쇠재두루미론을 꺼내든 것은 대내외 경영환경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악화된 경영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쇠재두루미처럼 체질을 개선하고 힘을 키워야 한다고 판단했다. 삼성SDI는 전기차 배터리 개발 및 수주 등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증권가를 중심으로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설 것이란 비관적 예측이 나오고 있다. 조직에 쌓인 불필요한 지방을 줄이고 위기를 극복할 체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 조사장의 생각이다.
조남성 사장은 극한의 히말라야 환경은 불확실성이 커진 현재 글로벌 경영환경과 다르지 않다”며 체질을 완전히 바꿔 혁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쇠재두루미는 떼를 지어 죽음의 각오로 히말라야를 넘는다”며 사원에서부터 경영진에 이르기까지 목표를 공유하며, 목표를 반드시 완수해야겠다는 한 방향으로 소통해 가야만 승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SDI의 이같은 경영방침은 이건희 회장의 경영철학인 ‘마하경영과 궤를 같이 한다. 마하경영은 비행기가 음속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설계부터 엔진, 부품, 소재 등 모든 것을 교체할 정도의 혁신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삼성SDI는 쇠재두루미 특징이 자사 배터리 사업과도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삼성SDI는 히말라야를 넘기 위해 몸집을 줄이는 쇠재두루미처럼 배터리 부피는 줄이되 배터리 사용시간을 늘리는 고밀도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SDI는 고밀도 배터리 개발의 핵심이 소재 경쟁력에 있다고 보고, 이를 강화하기 위해 올해 초 소재R&D센터와 전지소재팀을 신설했다. 지난주 열린 디트로트이트 모터쇼에선 600km 주행가능한 배터리를 선보였다.
공동체 비행을 통해 효율을 높이는 쇠재두루미의 비행은 배터리사업에서의 ‘팩(pack) 기술의 중요성을 연상시킨다. 전기차에는 배터리 셀(Cell·전지 최소단위)이 적게는 백여 개에서 수천여 개까지 탑재된다. 이 때문에 자동차 배터리 사업에서는 많은 배터리 셀을 관리하고 성능을 최적화하는 팩 기술 확보가 필요하다. 삼성SDI는 지난해 자동차 부품사인 ‘마그나 슈타이어의 전기차 배터리 팩 사업부문(SDIBS)을 인수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쇠재두루미의 ‘단 한번의 기회는 배터리사업의 품질문제와 맥을 같이 한다. 배터리의 품질은 인명사고와도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이에 배터리 안전성에 대해서는 철저하고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 삼성SDI는 배터리 안전성 확보 장치를 강화하고 있으며, 더불어 폭발을 원천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전고체 배터리 등의 신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이기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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