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인테리어도 투자" 내집꾸미기 바람
입력 2016-01-14 17:15  | 수정 2016-01-14 19:52
오래된 아파트와 빌라를 대상으로 `집 꾸미기` 가 늘어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빌라촌. [매경DB]
"저층이고 나 홀로 아파트면 어때요. 진짜 내 집인데요. 잘 꾸며서 이웃에게 자랑하고 싶어요."
지난해 가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아파트를 사들인 결혼 3년 차 주부 최지영 씨(35)는 요즘 '온라인 집들이' 중이다. 페인트를 사서 칠하고 가구를 조립해서 이리저리 배치한 후 온라인 카페나 블로그에 올리는 식이다. 대표적인 '직주근접' 지역으로 꼽히는 마포에서 살던 최씨는 집주인이 전세금을 5000만원가량 더 올려 달라고 하자 전세금을 빼서 전용 84㎡ 아파트를 3억2000만원에 사고 스스로 인테리어 작업에 나섰다. 힘들기도 하지만 나름 재미가 쏠쏠하다.
날로 오르는 아파트 전세금에 지친 세입자들이 실수요자로 나서거나 빌라·오피스텔 전세를 찾기 시작하면서 '내 집 꾸미기 열풍'이 불고 있다. 지금까지 '먹방(먹는 방송)·먹스타그램·맛집 탐방·쿡방(요리 방송)' 등 음식을 먹고 만드는 얘기가 각종 TV 프로그램과 온·오프라인에서 대세였던 것처럼 부동산 시장에선 지난해부터 '집 꾸미기'가 새로운 트렌드로 급부상했다. '집방·집스타그램(집 내부 사진을 찍은 인스타그램)·방스타그램(셋방 인테리어를 찍은 인스타그램)'이 방송과 온라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사로잡고 있다.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 물량은 2006년 이후 역대 최저치인 1만477가구를 기록했다. 분양시장이 활기를 띠면서 대단지 브랜드 아파트에 밀리던 '나 홀로 아파트', 신규 분양과 재건축에 밀려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던 입주 10년차 이상 '중년 아파트'에 더해 빌라와 오피스텔에도 젊은 새 식구들이 찾아들었다. 자연히 집 꾸미기가 관심으로 부상한 것이다. 가구를 개인 취향에 따라 꾸미고 가꾸는 '이케아 효과'도 영향이 적잖다.
인테리어와 주택 리모델링은 이제 '웃돈'을 받기 위한 부동산 투자전략으로 떠오르는 양상이다. 입주 10년 차 아파트들이 모인 구로구 신도림동 인근 A공인 관계자는 "3명 이상 가족이 선호하는 전용면적 85㎡를 넘는 집을 기준으로 하면 입주 시 3000만~4000만원을 들여 인테리어를 하고 살다가 4~5년 뒤에 팔 때는 여건이 비슷한 다른 집보다 2000만원 정도 웃돈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인테리어가 실리를 챙기는 통로도 된다는 얘기다.

김혜현 센추리21코리아 전략기획실장은 "전세를 끼고 매매 차익을 기대하며 투자를 하던 시대가 지나는 과도기에 주택시장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세입자와 집주인을 불문하고 집 꾸미기 바람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며 "매매 전환은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 이전에 지어진 이른바 중년 아파트는 고쳐서 내 집처럼 거주하기에 좋고 재건축 가능성도 열려 있어 거래가 활발해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수리를 하고 인테리어까지 마친 집이 그렇지 않은 집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것이 새로운 일은 아니지만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줄고 월세 시대가 다가오면서 집 꾸미기가 이른바 '월세 인더스트리'로 번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세입자가 아닌 집주인도 리모델링이나 인테리어가 주요 관리사항이 돼서다.
이광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통계적으로 볼 때 노후 주택은 10가구 중 8가구가 지은 지 10년이 지나면 인테리어가 필요한데, 1990년대 수도권을 중심으로 공급된 아파트 연령이 이제 15~20년쯤 되면서 리모델링이 필요한 시점이 다가온다"며 "전세난에 월세 시대가 다가와 아파트도 수익형 부동산 못지않게 인테리어 수요가 많아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전문건설협회에 따르면 리모델링 수요가 늘면서 등록 인테리어 업체는 2006년 3500여 개였던 게 지난해에는 4600여 개로 늘었다.
인테리어를 둘러싸고 집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도 불거진다. 상가처럼 아파트 등 주택 역시 '인테리어 권리금'이 생기는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관악구 신림동에서 준공 15년차 낡은 빌라에 살던 유 모씨(37)는 계약 만료를 앞두고 집을 나가거나 전세금을 올려줘야 할 처지다. 그는 "리모델링에 가까울 정도로 직접 공들여 인테리어를 했는데 집주인이 매물로 내놓으려고 한다"며 "전세금이 싸서 들어왔는데 이제는 올려줘야 할 판"이라고 울상을 지었다.
한 리모델링 업체 관계자는 "집 주인이 처음에는 리모델링이나 인테리어 작업에 동의했다가 나중에 태도를 바꿔 원상 복귀시키라고 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많다"고 전했다.
[김인오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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