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헌혈 ‘첫 경험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하는 건,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동아리 모임을 마친 뒤 동아리원들과 함께 찾은 곳이 바로 헌혈의집이었다. 오며가며 보기만 했던 헌혈의집에 실제로 들어가 본 것도, 헌혈에 참여한 것도 난생 처음이었다.
당일 만16세가 된 필자는 헌혈이 가능했지만 생일이 지나지 않은 친구들은 헌혈을 할 수 없어 그저 구경만 했다. 한쪽 팔을 내놓은 채 긴 의자에 가만히 누워있자니 흡사 ‘동물원 원숭이가 된 듯 했지만 왠지 모르게 으쓱한 마음도 있었다. 320ml 전혈 헌혈을 하고 나서 먹은 초코파이의 맛은 유독 더 달콤했다.
평소 혈압은 (약간 낮은 수준이지만) 정상 범위를 유지했고, 이렇다 할 건강상의 문제가 없었던 덕분에 이후에도 꾸준히 헌혈의집을 찾았다. 전날 밤 과제로 밤을 꼴딱 새운 뒤 헌혈에 도전했다가 혈압이 기준치에 못 미치게 나와서, 혹은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게 나온 탓에 거절당한 날이면 진짜 차인 듯한 아쉬운 기분이 들곤 했다.
한때는 그놈의 ‘횟수에 집착하며 2주에 한 번꼴로 가능한 혈장성분헌혈에 심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환자들에게 수혈하는 데는 전혈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각한 뒤에는 다시 전혈 헌혈로 갈아탔다.
수십 장의 헌혈증이 모였을 무렵, 남자친구의 군대 동기가 백혈병에 걸려 헌혈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접하곤 흔쾌히 전하기도 했다. 헌혈증을 담아뒀던 상자가 텅 비었지만 이후 또 다시 쌓여가는 헌혈증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흐뭇한 기분에 사로잡힌 적도 있었다.
그러던 중 거주지가 경기도 파주로 옮겨지면서 필자의 헌혈에는 잠시 제동이 걸렸다. 파주는 말라리아 위험 지역이라 헌혈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임신과 출산으로 꽤 오랜 시간 헌혈에 쉼표를 찍었다.
시간이 흘러 지난해 12월, 수년 만에 다시 헌혈의집을 찾았다. 여전히 전혈 헌혈은 불가능하지만 혈장 헌혈은 가능했기에 기꺼이 팔을 걷었다. 문진 담당 간호사는 예전엔 파주 지역에서 헌혈을 많이 해주셨는데 말라리아 위험 지역이라 어쩔 수 없게 됐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눈길을 끈 것은 꽤나 한산한 헌혈의집 풍경이었다. 헌혈자는 두어 명에 불과한데 직원들은 서너 배 이상 됐다. 헌혈을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했던 시절을 떠올려보니 수년째 헌혈인구가 감소 추세라는 보도가 새삼 실감났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올 겨울, 대한민국에 피가 부족하다는 보도가 이어졌고 급기야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는 전혈헌혈 참여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례적으로 말라리아 위험 지역 체류자들도 오는 3월까지 한시적으로 전혈헌혈이 가능해졌다.
그와중에 인터넷에서 뜬금없는 소리를 들었다. 이른바 ‘헌혈 괴담인데, 헌혈이 골다공증을 유발한다는 이야기다. ‘에이, 설마 싶다가도 일면 솔깃한 논리에 한편으론 귀가 팔랑거렸다. 그동안 헌혈 꽤 많이 했는데 나이 들어서 진짜 골다공증이 생기면 어쩌지?
이에 대해 양평병원 정형외과 전문의 최연호 과장은 골수세포는 적혈구·백혈구 등 혈액세포로 분화한 뒤 다시 증식된다. 또한 골밀도는 골수의 양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칼슘등 뼈의 무기질함량으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헌혈이 골다공증을 유발한다는 주장은 말이 되지 않는다”이라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러한 일반의 인식에 대해 대한적십자사 헌혈진흥팀 관계자는 헌혈 자체가 겁나는 게 아닐까 싶다”고 분석했다. 관계자는 거부감의 시작은 바늘로 찌르는 몇 초간의 순간이다. 주사에 대한 거부감과 비슷할 것”이라며 헌혈은 희생정신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인데,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거부감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3일 0시 기준 적혈구제제 보유 현황은 평균 3.0일분(0형 2.3일, A형 2.2일, B형 4.9일, AB형 3.0일분)이다. 평균 2일분이 채 되지 않던 며칠 전에 비하면 늘어났지만 적정 혈액 보유량은 일평균 5일분 이상이기 때문에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어느 퇴근길, 헌혈의집에 들러 당당하게 말해야겠다 오늘은 전혈 하겠습니다”라고. 날은 춥지만 어쩌면 마음은 더 따뜻해질 것만 같다.
[디지털뉴스국 박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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