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해외서 ‘보모’ 하며 돈도 벌고 언어도 배우고…오페어 도전해볼까
입력 2016-01-07 11:17  | 수정 2016-01-07 15:46
박선아, 양호연, 이혜민 씨 (왼쪽부터)

외국 경험 쌓고 돈도 벌고. 많은 젊은이들이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는 이유다. 하지만 워킹홀리데이는 ‘양날의 검이다. 통장 잔고에 집착할수록 정작 현지에서 여유있게 지낼 시간은 부족해진다. 그렇다고 가난한 젊은이들이 돈 걱정 없이 여행만 다니기도 쉽지 않다.
외국에서 1년쯤 살아보고 싶은데 워킹홀리데이가 부담스러운 청춘이라면 ‘오페어(au pair) 제도를 이용해보는 것은 어떨까? 오페어는 외국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봐주는 대가로 숙식과 급여를 제공받는 문화교류 프로그램으로 미국, 유럽, 호주 등 다양한 지역에서 시행중이다. 워킹홀리데이보다 급여는 적지만 숙식이 해결되고 자유시간이 많다는 장점이 있어 몇 년 새 오페어를 떠나는 한국인이 부쩍 늘었다.
최근 독일로 오페어를 다녀와 책 ‘오페어로 해외 1년 살아보기(RHK)를 쓴 양호연 씨(26), 아일랜드로 오페어를 다녀온 박선아 씨(28), 그리고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이혜민 씨(25)가 서울 충무로의 한 카페에서 만나 두 제도의 장단점을 비교해봤다. 혹시 지금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면 이들의 경험담에 귀기울여 주시길.
- 먼저 각자 자신이 다녀온 곳을 말해 달라.

양호연(양):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1년 간 오페어를 다녀왔다. 독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어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떠났다.
박선아(박): 나는 대학교를 휴학하고 아일랜드의 브레이(Bray)라는 작은 해안가 마을에서 1년 동안 오페어를 했다.
이혜민(이): 호주로 2년 간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다. 첫 해는 브리즈번, 다음 해는 케언즈에 있었다.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인터넷뉴스 회사에 취직했는데 일이 힘들고 박봉인데다 무엇보다 젊음을 회사에 바치는 게 싫었다. 그래서 퇴사하고 무작정 떠났다.
- 워킹홀리데이에 비해 오페어는 생소하다. 어떻게 오페어를 알게 됐나?
양: 처음엔 나도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했다. 비자를 검색하던 중 오페어 제도를 알게 됐다. 오페어는 워킹홀리데이의 보모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아이를 돌보면서 호스트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다. 숙식이 해결되기 때문에 워킹홀리데이보다 경제적 부담이 덜하다. 오페어 소개 사이트에서 프랑크푸르트의 한 가족과 연결돼 스카이프로 화상 면접을 본 뒤 떠났다.
박: 교환학생으로 유럽에 갔다가 현지 유학원에서 오페어 제도를 알게 됐다. 정작 유학원을 통해 호스트 가정을 소개받지는 못하고 당시 오페어를 하고 있던 한 친구가 소개해줘서 아일랜드로 갔다. 아기 돌봐주면서 해외에서 살면 새로운 경험이겠다 싶었다.
- 어떤 집에서 어떻게 생활했나?
양: 맞벌이 부부와 사내아이 둘이 있는 중상류층 가정이었다. 만 3세 다비드는 활달했고 만 1세 에이단은 낯을 가리는 아이였다. 사실 나는 오페어 가기 전엔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 아이들을 만났을땐 서먹했다. 다행히 ‘뽀로로를 틀어줬더니 아이들이 아주 좋아하더라. (웃음) 덕분에 수월하게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다.
박: 나도 처음엔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웃음) 내가 간 곳은 러시아계 부인과 아일랜드계 남편이 만 3세 여자 아이를 키우는 집이었다. 꽤 부자동네여서 집도 컸다. 아기 엄마는 아기가 애니메이션 보는 걸 싫어했다. 그래도 엄마 없을 때 몰래 보여주면서 아기와 친해졌다.
이: 나는 워홀러(워킹홀리데이 참가자)니까 따로 숙소를 구해야했다. 셰어하우스에서 다국적 젊은이 7명과 함께 살았다. 워홀러들 대부분 이런 생활을 한다. 초기엔 레스토랑에 취업해 서빙 일을 했다. 세컨드 비자(1년 비자 연장)를 받기 위해선 88일 동안 의무적으로 농장이나 공장, 광산 등지에서 일해야 한다. 현지인들이 하기 꺼려하는 일을 워홀러들이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당근 공장과 레몬 농장에서도 일했다.
- 오페어와 워킹홀리데이, 각각 경험해보면서 느낀 장·단점은 뭔가?
양: 내가 오페어를 선택한 이유는 경제적이고, 안전하고, 자유시간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아침에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나면 낮 시간은 자유다. 보통 그 시간에 어학원에 간다. 오후에 아이를 집으로 데려와 놀아주다가 부모가 퇴근해 집에 오면 다시 자유시간이다. 가사도우미가 따로 있어서 나는 아이만 돌보면 됐다. 주 5일 근무고 1년 계약하면 1개월의 유급휴가도 있다. 나는 휴가 때 유럽여행을 다녔다. 유럽에선 오페어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각종 할인혜택도 많다. 힘든 점은 육아다. 아무래도 미혼이다보니 처음엔 생각보다 너무 어려워서 놀랐다. 먹이기와의 전쟁이다. 다행히 달걀채소볶음밥을 해줬더니 아이들이 좋아하더라. 나중에 결혼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웃음)
박: 오페어의 최대 장점은 숙박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워킹홀리데이만 해도 월세 부담 때문에 힘들지 않나. 또 출퇴근하느라 시간을 많이 뺏기기도 할텐데 오페어는 그런 게 없다. 아이를 키우며 함께 언어를 배울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내 영어도 아이와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아이가 유치원에서 말을 배워오면 그걸 함께 공부했다. (웃음) 상상력이 뛰어난 아이들과 대화하다 보면 실력이 금방 는다. 단점은 생활이 단조롭고 수입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아이 돌보는 일만 해야하다 보니 워홀러처럼 이것저것 해볼 수 없어 아쉬웠다. 수입은 한 달에 대략 40만원씩 받았는데 그 돈 모았다가 휴가 때 여행 가서 썼다.
이: 워킹홀리데이의 장점은 한국보다 시급이 높아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것이다. 서빙이나 접시닦이 같은 아르바이트를 해도 한국보다 3배 이상 벌 수 있다. 그렇다보니 돈에 집착하게 된다는 것은 단점이다. 워킹홀리데이의 원래 취지는 여행하면서 돈도 버는 것인데 한국인 워홀러들은 주객이 전도돼 돈이 목적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여행도 못하고 일만 하는 사람들 보면 안타깝다.
- 오페어는 외국까지 가서 보모를 한다는 데 대해 선입견이 있을 수도 있다.
양: 나도 처음엔 망설였다. 하지만 막상 가보니 호스트 가정에서 나를 맏딸처럼 대해줬다. 또 독일에 일본, 중국, 호주, 미국 등 세계 각국에서 오페어를 온 친구들이 많더라. 다들 젊은 친구들이라 별다른 거리낌은 없었다.
박: 내가 살던 곳에는 아시아인 오페어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특별히 선입견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 오페어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팁을 준다면?
양: 독일 오페어 비자를 발급받는데 시간이 6~8주 정도 걸린다. (국가마다 비자 제도가 다르니 자세한 정보는 각국 대사관 참조.) 비자는 출발 전에 신청하거나 혹은 일단 관광비자로 입국한 뒤 현지에서 신청할 수도 있다. 또 아무래도 아기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그 나라 언어를 기초적인 수준은 하고 가야 한다. 나는 독일어 학원에서 3개월 동안 일주일에 3번씩 수업 듣고 갔다. 나머지는 직접 부딪쳐보면서 하나씩 해결해보길 권한다. 아,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건 외국 가정에서 함께 지낼 수 있는 원만한 성격이다. 너무 날서면 안된다. 오페어는 돈 없는 20대도 비교적 자유롭게 외국생활을 경험해볼 수 있는 제도다. 적극 활용해보길 권한다.
박: 한국인들은 대체로 시끄럽지 않고 싹싹한 편이라 유럽 가정에서 선호한다고 들었다. 아기를 돌보는 일이어서 대부분 여성이지만 남자도 가능하다. 나는 24살에 오페어를 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20대 후반에 가도 좋을 것 같다. 당시 나는 너무 돈을 아끼려고 집에만 붙어 있었던 것 같아 후회된다. 지금 다시 가면 더 적극적으로 놀 수 있을 것 같다. (웃음)
- 세 사람은 각각 다른 나라에서 다른 경험을 하고 돌아왔다. 다녀온 뒤 인생이 달라졌나?
양: 독일 오페어를 다녀온 뒤 미국 오페어를 갈 생각도 했을 정도로 나는 오페어에 만족한다. 외국 가정에 살면서 낯선 문화를 직접 경험해보니 어떤 사건에 대해 역지사지로 생각하는 훈련을 많이 한 것 같다. 또 아이들을 좋아하게 됐다. 아예 이걸 직업으로 해볼까 싶을 정도다. (웃음)
박: 오페어는 내게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나는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었는데 낯선 곳에서 아이와 함께 지내다보니 성격이 좀더 역동적으로 변했다.
이: 나는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오고 나서 책임감이 생겼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해야하는 외국 생활은 긴장의 연속이었고 어떤 일이든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동안 오페어 제도를 잘 몰랐는데 오늘 경험담을 들어보니 호기심이 생긴다. 다음엔 오페어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
[글·사진 = 양유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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