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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인터뷰] ‘포기 대신 극복’ 새긴 임동섭 “농구코트가 행복해”
입력 2015-12-31 17:10 
서울 삼성 포워드 임동섭이 삼성트레이닝센터에서 연습에 앞서 보강훈련을 하며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서민교 기자
[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향후 몇 년 안에 리그 최고의 선수가 될 것이다.”
서울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 이규섭(38) 코치가 유독 공을 들이는 선수가 있다. 장신 슈터 계보를 이을 기대주 임동섭(25)이다. 이 코치의 미래를 예고한 극찬이 단순한 소속팀 제자를 향한 립 서비스로 들리지 않는다. 이 코치는 198cm의 선수가 이 정도의 슈팅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은 그동안 KBL에 없었다”고 혀를 내두른다.
임동섭은 기량발전상 유력 후보로 꼽힌다. 자격은 충분하다. 올 시즌 35경기에서 평균 28분33초를 소화하며 11.4점 3.5리바운드 2.0어시스트를 기록 중이다. 데뷔 시즌인 2012-13시즌 평균 6.5점, 2013-14시즌 평균 7.9점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특히 눈여겨봐야 할 두드러진 기록은 3점슛이다. 임동섭은 데뷔 이후 2시즌 동안 경기당 1개에도 미치지 못했던 3점슛 성공 기록이 올 시즌 팀 내에서 가장 많은 75개를 기록하며 평균 2.1개로 대폭 상승했다. 대표적인 슈터로 꼽히는 두경민(원주 동부)과 이정현(안양 KGC인삼공사)에 이어 전체 3위에 올라있다. 3점슛 성공률도 37.7%로 높다. 외곽 슈터의 부재로 끙끙 앓던 삼성은 임동섭의 존재로 큰 고민을 덜었다.
올 시즌 임동섭의 활약이 아름다운 것은 재활을 견디고 이겨낸 화려한 부활 때문이다. 수술과 재활을 반복했던 그는 현역 선수생활을 접을 극단적 고민까지 하면서 결국 극복해낸 엄청난 노력이 있었다.
임동섭은 데뷔 시즌에 가능성을 확인한 뒤 프로 2년차부터 위기를 맞았다. 시즌 도중 발등 골절상을 당해 시즌 아웃 판정을 받은 것. 이때만 해도 복귀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처음 부상을 당했을 때만 해도 충격이 덜했다. 처음 부상을 당했을 땐 빨리 잊고 수술 준비를 하자는 생각밖에 없었다. 열심히 재활을 해서 복귀를 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복귀하고 싶은 마음에 빨리 끌어올리려다가 또 부상을 당했다.”
운이 지독히 없었다. 임동섭은 지난해 비시즌인 6월 팀에 합류해 복귀를 꿈꿨다. 부상도 황당하게 당했다. 전지훈련 도중 산을 뛰다가 돌을 밟고 다쳤는데 공교롭게 같은 부위가 다시 부러진 것.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일본까지 건너가 수술과 재활을 한 뒤 다시 복귀를 노렸는데 또 피로골절로 지난 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최악의 현실은 이제 프로 생활을 시작한 그에게는 힘겨운 시간이었다. 사실 그때는 많이 힘들었다. 복귀 날짜만 생각하고 재활을 했는데 계속 다치니까 안 좋은 생각도 많이 했다.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였다. 포기도 하고 싶었고 답답한 마음에 부정적인 생각도 많이 했다. 내 실력을 보여준 것도 없는데 자리도 없어지고 이대로 끝날 것 같은 걱정이 컸다.”
임동섭은 이후 재활과 함께 심리 상담까지 받았다. 생각도 고쳐먹었다. 절실함이 더 가득해졌다. 그는 욕심도 버리고 조금함도 버렸다. 생각 자체를 버리니까 마음이 오히려 편했다.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 덕분에 농구에 대한 간절한 마음만 더 깊게 쌓였다. 지금 코트에서 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냥 좋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임동섭의 삼성의 미래를 책임질 장신 슈터로 성장하고 있다. 올 시즌 코트에서 뛰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그는 더 큰 꿈을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사진=서민교 기자
임동섭을 믿고 기다린 것은 이상민 삼성 감독이었다. 박훈근·이규섭 코치도 과외수업까지 하며 임동섭의 재기를 적극 도왔다. 그래서 임동섭은 감사한 마음뿐이다. 그는 그저 백업 선수로 뛰는 것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제대로 뛰는 것을 보지도 않고 감독님께서 가능성만 보고 믿어 주셔서 지금 이렇게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임동섭이 지금 자리에 오기까지 선수생활의 위기는 많았다. 키가 작고 왜소하다는 이유로 고교 진학도 어려웠던 유망주였다. 가까스로 테스트를 받기로 했던 고교에서는 자리가 없어졌다며 기회조차 받지 못했다. 그만 두겠다던 그를 다잡은 것은 아버지였다. 여기저기 거절만 받았던 그의 아버지는 절대 포기하지 말아라”며 용기를 북돋아줬다. 이후 거짓말처럼 키가 쑥쑥 자랐고 대학 진학 후에도 키가 더 커 2m에 육박하는 장신 포워드로 성장했다.
임동섭은 스스로 난 뚜렷한 장점이 없는 선수”라고 했다. 하지만 반대로 장점이 많은 선수이기도 하다. 중학 2학년 때까지 포인트가드를 맡았고, 이후 슈팅가드와 포워드를 겸하면서 센터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경험했다. 주 포지션은 포워드였지만, 그의 마음 속 꿈은 슈팅가드였다.
이제 삼성에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슈팅가드를 해보고 싶은 것이 꿈이었다. 그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수비만 커버가 되면 슈팅가드도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며 노력하고 있다. 지금은 이 과정 하나하나가 재미있기만 하다. 다시 뛰는 것만으로 감사하기 때문에 현실에 충실히 노력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임동섭은 팀 내에서 가장 성실한 선수로 정평이 나 있다. 경기와 팀 연습 전·후로 보강훈련을 가장 충실히 하는 선수도 임동섭이 꼽힌다. 오직 노력으로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며 이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가 차마 입에 담기 부끄러워했던 ‘국가대표의 꿈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min@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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