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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경단녀` 박기영이 데뷔 17년만에 찾은 새 길
입력 2015-12-31 16:57  | 수정 2015-12-31 17:08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가수 박기영(38)의 2015년은 그야말로 '드라마틱'이다. 전에 없이 TV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간 그는 언제 준비했나 싶게 크로스오버 앨범을 내놓으며 카멜레온 같은 변주를 시도했다.
"'불후의 명곡' PD님은 제게 '우리 프로그램을 살려줘 너무 고맙다' 하시는데, 제 입장에선 경단녀(경력단절녀)를 살려주신 거죠.(웃음) 저는 올챙이 적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인기가 많았던 적도 있었고 힘들었던 적도 있었고, 이번이 재재재도약, 세 번째 정도 되는데, 아이 키우면서 얻은 경험들이 무대에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새 앨범 이야기를 하자 만났건만, 인터뷰의 상당 시간이 자유롭게 채워졌다. 최근 충무로 매경미디어센터에서 매일경제 스타투데이와 만난 박기영은 소문난 '딸바보'답게 네살배기-실제론 세돌 갓 넘은 아이 자랑부터 18년차 현역 가수의 '흑역사'까지 끝없는 이야기꽃을 피웠다.

결혼 후, 일이 뚝 끊겼단다. 아이가 생기고 육아에 몰두한 시간이 길어지자, 급기야 잊혀지는 듯 했다. 아무리 '셀프 제작·프로듀싱'으로 홀로선다 해도 요즘 같은 '업계' 환경에서 들어주는 이 없는 뮤지션의 길은 치명적이었다. 끊임없는 행보는 그의 음악을 더욱 깊고 가치있게 했지만, 정작 찾는 이를 만나기는 요원했다.
"자칫 평생 무대에 못 섰을 수도 있었죠. 사실 어느 정도 포기했었어요. 아이가 생기면서 같이 일했던 스태프들을 다 다른 회사로 보냈거든요. 누군가 날 불러주기 전까진 나올 수가 없었죠. 그래서 제가 셀프로 만들고, 진행한 거죠."
2014년 여름, 3인조 밴드 어쿠스틱블랑으로 가수 박기영의 음악에 의미있는 채색을 시도한 박기영은 지난 가을, 또 다른 도전을 감행했다. 고민과 절치부심 끝에 찾은 길은 크로스오버, 오페라였다. 박기영과 오페라의 접점을 떠올려보자니 3년 전 '오페라스타'가 떠오른다.
오페라 이야기를 꺼내자 박기영은 가수로서의 숨이 끊어지는 듯 한 자신을 "살린" 세 명의 PD가 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MBC '나는가수다' 박성원 PD, tvN '오페라스타' 강성신 PD 그리고 KBS '불후의 명곡' 권재영 PD가 주인공이다.
"박PD 같은 경우, '음악여행 라라라' 출연 당시 저를 보시고선 2010년 이창동 감독 '시'에 삽입된 '아녜스의 노래'를 만들어달라고 말씀하셨어요. 당시 7집 앨범 망하고 가수로 살아야 하나 고민하던 때였는데, 영화도 잘 되고 결과적으로 음악도 인정받게 됐죠. 당시 이 감독님이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소명의식 갖고 살라'며 좋은 말씀을 해주셨는데, 이후 박PD님이 추석특집 '나가수'에 불러주셔서 나가게 됐죠."
"강PD님은, 제게 참 어려운 노래만 주셔서 한 때 힘들었는데, 이렇게 제가 크로스오버 음반을 내고 새로운 도전으로 영역을 넓히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신 셈이죠. 기회라는 게 쉽게 찾아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기회를 주신 분들께 감사할 수 밖에 없어요."
"권PD님은 저를 아무 때나 부르지 않으세요. 이 전설에 박기영이 필요하겠다 싶을 때만 콜을 주시는데, 조수미 특집, 안치환 특집 때가 특히 그랬죠. 그렇게 뮤지션에게 믿음을 주시는 게, 너무 감사해요. 세 분 모두 평생 은인입니다. 평생 꾸준히 음악을 열심히 하는 게, 가장 큰 보답이라 생각하고 있고요."
그 스스로 '자폭'했듯, 소위 '망한' 앨범도 있었지만 그 역시 박기영의 음악 여정이 남긴 발자취다. 그는 "나는 스스로를 믿지 않는다. 내 실력과 재능을 끝까지 의심한다. 그게 오늘날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고 말했다.
총 8곡이 수록된 박기영의 크로스오버 앨범은, 쉽지 않은 도전임에도 불구하고 셀프 프로듀싱의 고집을 놓지 않았다.

"주위에 객관적인 평가를 해주는 지인이 몇 있는데, 노래에 대한 쓴소리는 별로 없었고 소리에 대한 쓴소리는 들었어요. 사운드를 어떻게 잡아갈 지 굉장히 고민이 컸죠. 사운드를 잡아가는 데만 두 달 걸렸어요. 다행히 노래에 대한 태클은 없었어요. 노력을 정말 많이 했거든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 했지만, 녹음된 결과물에 대한 만족도는 60%입니다."
클래식 쪽 반응도 기대 이상의 호평으로 도배됐다. 덕분에 오케스트라 섭외가 전에 없이 많아졌다는 그다.
"오케스트라에서 노래하는 걸 좋아해요. 또 제가 '불후'의 드레스여신 아니겠어요? (웃음) 드레스 입는 것도 좋아하고요.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기 위해선 체력관리도 더 신경써야죠. 몸관리=실력이니까요."
또 다른 시작을 한 박기영에게 아이러니한 질문을 던졌다. "박기영씨가 생각하는 자신의 흑역사는 언제인가요?" 망설임 없이 돌아온 답변은, 놀랍게도 대중이 기억하는 그의 전성기 시절이다.
"1집부터 4집까지 다 흑역사라 할 수 있겠네요. 몰라서 용감했던 시절이죠. 다시 돌아가고 싶은 유일한 이유는, 다시 녹음하고 싶어서예요. 어렸던 거죠. 뭘 모르니까 그렇게 할 수 있었죠. 그렇지만 분명한 건, 나름 최선을 다 했었죠. 그 뒤로 3년의 공백. 그 이후에 나온 건 5집이었어요. 고통을 겪고 성숙해지니까 음악이 달라졌어요. 저에겐 필요한 시간이었던 거죠. 저도 인정해요. 그런 기간이 없었으면 성장하지 못했을 거예요. 전 그런 시간을 겪어야 발전할 수 있는 사람인 거죠. 오늘날 박기영은 노력의 산물이에요."
박기영의 담담한 자기 고백은 계속됐다.
"가장 크게 오해 받을 때는 '가진 재능으로 편하게 산다'는 말을 들을 때죠. 사실 전 안되는 걸 되게 한 거나 마찬가지인데. 물론 끼가 있고 원석은 있었겠죠. 하지만 저는 똑똑하지도 재능이 있지도 않고, 계속 실수하면서도 내야 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야 발전할 수 있죠. 제가 어떤 걸 내도 세상이 놀라지 않지만 그것들이 저를 발전시켜, 언젠가는 제가 그 지점에 가 있을 거라 생각해요."
박기영에게 음악은, 요즘 그를 살게 하는 힘이다. "정말 재미있고 즐거워요. 행복하고. 음악이 절 살게 하죠. 저를 숨쉬게 하고. 요즘은 특히 그래요. 예전엔 일이라 생각해서 스트레스 받았던 적도 있는데, 이게 일이라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나에게 일이 음악이라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그렇게 박기영의 음악 행보는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대중 가수로서의 행보도, 크로스오버 가수로서의 행보 모두 열어뒀단다. "아티스트는 작품으로 말한다"는, "그것이 내가 할 일이고 내가 살 길"이라는 박기영의 힘 있는 발언이 왠지 숭고하게까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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