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우후죽순 생겼던 와인숍 ‘거품 뺀 대형마트 파도’ 맞고 침몰
입력 2015-12-28 14:46  | 수정 2015-12-28 14:47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위치한 한 와인숍은 최근 점포를 정리하면서 마지막 재고처리 세일을 했다.
이 가게 사장은 싸게는 1만원에 와인 2병을 구입할 수 있는 대형마트와 아웃렛 등에 손님을 뺏기는 바람에 임대료도 내기 힘들어 문을 닫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가 몰아닥치고 대형마트가 와인을 팔기 시작하면서 소형 와인수입사들이 소리소문없이 폐업하고 와인바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국내 3위 와인수입사 아영FBC는 지난해 직영 와인숍 ‘와인나라 수원 영통점 문을 닫고 현재 매장 7곳을 운영중이다. 서울 역삼동 리츠칼튼호텔 건너편에서 성업중이던 인터뱅세계주류 매장, 서초동 법원사거리에 위치한 피노누아 매장, 강남역 뱅뱅사거리에 위치한 가자세계주류 매장도 최근 폐업했다. 다른 와인숍 ‘가자주류나 ‘세계주류백화점도 맹맥은 유지하고 있지만 마트의 저가 공세에 고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마트에서 워낙 싸게 팔다 보니 와인 가격에 거품이 있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생겼다”며 특정 와인 제품을 주문하는 단골 손님들만 와인숍을 찾으면서 매출이 줄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와인수입사는 400여곳. 마트와 백화점 납품에 성공한 중견 수입업체는 살아남았지만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대형마트 공급량이 늘어나 매출은 꾸준히 늘려가는 반면에 마트의 잦은 세일 행사 요청으로 영업이익은 오히려 줄고 있다.
실제로 와인수입 1위 업체 금양인터내셔널은 지난해 2010년 이후 처음으로 매출 700억원대(지난해 매출 715억원)를 넘겼지만 영업이익은 2012년 31억원, 2013년 13억원, 지난해 9000만원으로 현저하게 줄고 있다. 아영FBC와 길진인터내셔날 등 후발주자도 250억~330억원대 매출은 올리고 있지만 최근 2개년간 영업이익은 10억원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와인수입사 관계자는 일단 요즘 와인은 대형마트에 내놓지 않으면 소비자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며 그러나 대형마트에선 가격 할인이 잦아 수익성을 담보하긴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와인 시장이 마트와 아웃렛, 백화점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이마트가 2008년 설립한 주류수입·유통사 신세계L&B가 고속 성장을 하고 있다. 이 회사는 칠레 대중와인 G7을 출시하며 대형마트 와인 시대를 열었다. 이 제품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이름을 따 ‘정용진와인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750㎖ 한 병 가격이 6900원에 불과해 지난해 100만병이나 팔렸으며 현재까지 누적판매량은 350만병에 달한다. 신세계L&B는 지난해 매출액 346억원을 기록해 금양에 이어 와인수입 매출 2위로 올라섰다. 올해 매출액은 500억원으로 예상된다.
대형마트 와인이 인기를 끌자 중견 와인수입사들도 이젠 자사 보유 와인숍보다는 대형마트 제품 공급에 주력한다. 와인수입사 1위 금양인터내셔날은 한·칠레 공동개발 초특가 와인인 ‘트루아젤을 개발해 롯데마트 등 롯데 유통계열사에 독점 유통하고 있다.
이런 변화에 힘입어 대형마트 와인 매출은 매년 쑥쑥 커가고 있다. 현재 국내 와인 시장 규모는 약 4600억원(업계 추정치). 대형마트 매출이 전체 절반에 달하는 2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올해 와인 매출만 800억원을 기록한 이마트는 2014년에 전년 대비 9.7% 성장한 데 이어 올해도 11월까지 4.6% 매출성장률을 기록했다.
대형마트 중심의 저가 와인만 날개 돋힌게 아니다. 고가 와인은 백화점을 중심으로 대형마트보다 더 높은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18만원대 ‘샤또딸보 와인을 비롯해 ‘실레니 셀라셀렉션 쇼비뇽블랑 등 4만5000원대 제품이 백화점 와인코너를 통해 선전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와인 매출은 2013년 14.6%, 지난해 12.2%, 올해 1~11월 12.1% 성장률을 기록하며 두자릿수 증가세를 이어오고 있다. 6~8%대 성장을 이어오던 현대백화점 와인 매출도 올해는 11.7% 성장률로 두자릿수를 기록했다.
특히 신세계L&B와 롯데주류 등 대기업 계열 와인수입사는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 계열사 유통 채널을 통해 선제적으로 제품을 공급하고 있어 다른 와인수입사들보다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놓여 있다. 최근에는 SPC도 와인수입사를 설립해 파리바게뜨 등 자사 보유 매장에 유통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기업의 와인사업 진출이 가격 인하와 와인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지만 중소 수입사 입장에선 기존 해외 와이너리와의 거래가 끊어지는 등 사업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로 ‘로스바스코스 ‘도멘 메오 까뮈제 ‘루이자도 등 외국 유명 와이너리는 기존 국내 와인전문수입사와 거래를 중단하고 신세계L&B에 공급하고 있다.
[전지현 기자 / 서진우 기자 / 박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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