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대교 화재 진압 현장서 순직한 소방관, 선행에도 늘 앞장섰던 ‘의인
서해대교 화재 진압 과정에서 낙하물에 맞아 유명을 달리한 고(故) 이병곤(54·소방경) 포승안전센터장이 생전 살신성인의 자세로 현장에서 구조구급활동을 벌인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4일 경기도재난안전본부에 따르면 1992년 2월 살을 애는듯한 엄동설한에 안성 금광저수지에 차량이 추락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이 소방경은 당시 현장에 출동, 산소탱크를 메고 직접 수중수색에 들어갔다.수심 7m 깊이까지 들어가 호수 안을 살펴보던 중 낮은 수온 탓에 산소탱크가 얼어붙는 사고가 발생했다.
갑작스런 기기 고장에 호흡 장애를 일으킨 이 소방경은 가까스로 탈출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2006년 9월에는 안성톨게이트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오던 가스저장 탱크로리 차량이 톨게이트 기둥을 충돌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서해대교 화재탱크가 일부 파손되면서 폭발이 우려되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소방경은 손수 소방 호스를 들고 탱크로 다가갔다.
평소 진압현장에서 익힌 경험을 바탕으로, 탱크를 냉각시켜 온도를 낮춰 폭발을 예방하겠다는 생각에서다.
다행히 이 소방경의 판단은 맞아떨어졌고, 즉각 조치로 이날 사고는 단순 교통사고로 끝날 수 있었다.
고인은 2009년 평택 포승면의 높이 70m에 달하는 한 타워크레인에서 작업 인부가 아래로 추락해 타워 조정대(높이 65m)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아찔한 높이지만 직접 계단을 올라 구조자를 필사적으로 구조했고, 추락한 부상자는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이밖에도 25년간 고인은 수많은 현장에서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하는 사람들에게 새생명을 불어 넣어줬다.
때론 어린아이가 쇠 가락지를 손가락에 끼웠다가 빼지 못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아이를 아들처럼 뒤에서 끌어안고 가락지를 빼주는 가벼운 사고현장(1999년 5월)에도 그가 있었고, 사료분쇄기에 차체가 말려들어간 농장 인부를 3시간 동안 이어진 구조작업 끝에 구한 아찔한 사고현장(1997년 8월)에도 그가 있었다.
이 같은 고인의 목숨을 건 구조구급활동은 언론에도 여러 차례 보도됐다.
1995년 4월 4일자 경인일보에서는 이 소방경이 소방관으로서의 사명감을 갖고 업무에 임하고 있다는 내용과 함께, 그가 쉬는 날이면 틈틈이 불우이웃을 찾아 생필품을 전달하는 등 선행을 한 사실을 보도했다.
기사에서 이 소방경은 "소방공무원들이 복지부동이라니요, 큰일 날 소립니다"라며 철저한 직업정신으로 무장한 소방관임을 강조했다.
1996년 2월에는 안성 고성산 등산 중 쓰러진 등산객에게 심폐소생술을 해 구조한 사실이 KBS 한 프로그램에 보도되기도 했다.
안성 교차로신문에는 이 소방경이 상대방 과실로 차량이 추돌하는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상대방의 건강상태를 먼저 살피고 온화하게 대해준 사실이 실리기도 했다.
당시 글을 올린 필자는 이 소방경에 대해 "저의 과실로 차량이 파손됐는데도 나의 상태를 먼저 살펴줬다"며 "남을 먼저 생각하고 사랑으로 감싸준 모습에 따스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다"고 적었다.
평소 동료들에게 책임감 있고 따뜻한 선배로 알려진 고인의 인격을 가늠할 수 있는 사연이다.
한 동료 소방관은 "타인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직업은 숭고하다고 가르치시던 선배가 현장에서 돌아가셨다니 많은 소방관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며 "선배님이 생전 구조구급 현장에서 보여주신 모습은 후배들이 길이 따를 역사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1990년 3월 소방에 입문한 이 소방경은 2011년 소방의 날 유공 행정자치부장관 표창을 비롯, 경기도지사 표창 2회, 소방서장 표창 2회 등 많은 상을 받아 동료들의 귀감이 됐다.
이 소방경의 영결식은 7일 오전 평택 소사벌 레포츠타운 청소년실내체육관에서 경기도청장(葬)으로 엄수될 예정이다.
고인은 3일 오후 서해대교 목표방면 송악IC 인근 2번 주탑 중간부 근처 교량케이블에 불이 난 현장에 출동했다가 화재로 끊어진 케이블에 맞아 현장에서 순직했다.
서해대교 화재
온라인 이슈팀 @mkculture.com
서해대교 화재 진압 과정에서 낙하물에 맞아 유명을 달리한 고(故) 이병곤(54·소방경) 포승안전센터장이 생전 살신성인의 자세로 현장에서 구조구급활동을 벌인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4일 경기도재난안전본부에 따르면 1992년 2월 살을 애는듯한 엄동설한에 안성 금광저수지에 차량이 추락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이 소방경은 당시 현장에 출동, 산소탱크를 메고 직접 수중수색에 들어갔다.수심 7m 깊이까지 들어가 호수 안을 살펴보던 중 낮은 수온 탓에 산소탱크가 얼어붙는 사고가 발생했다.
갑작스런 기기 고장에 호흡 장애를 일으킨 이 소방경은 가까스로 탈출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2006년 9월에는 안성톨게이트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오던 가스저장 탱크로리 차량이 톨게이트 기둥을 충돌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서해대교 화재탱크가 일부 파손되면서 폭발이 우려되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소방경은 손수 소방 호스를 들고 탱크로 다가갔다.
평소 진압현장에서 익힌 경험을 바탕으로, 탱크를 냉각시켜 온도를 낮춰 폭발을 예방하겠다는 생각에서다.
다행히 이 소방경의 판단은 맞아떨어졌고, 즉각 조치로 이날 사고는 단순 교통사고로 끝날 수 있었다.
고인은 2009년 평택 포승면의 높이 70m에 달하는 한 타워크레인에서 작업 인부가 아래로 추락해 타워 조정대(높이 65m)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아찔한 높이지만 직접 계단을 올라 구조자를 필사적으로 구조했고, 추락한 부상자는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이밖에도 25년간 고인은 수많은 현장에서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하는 사람들에게 새생명을 불어 넣어줬다.
때론 어린아이가 쇠 가락지를 손가락에 끼웠다가 빼지 못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아이를 아들처럼 뒤에서 끌어안고 가락지를 빼주는 가벼운 사고현장(1999년 5월)에도 그가 있었고, 사료분쇄기에 차체가 말려들어간 농장 인부를 3시간 동안 이어진 구조작업 끝에 구한 아찔한 사고현장(1997년 8월)에도 그가 있었다.
이 같은 고인의 목숨을 건 구조구급활동은 언론에도 여러 차례 보도됐다.
1995년 4월 4일자 경인일보에서는 이 소방경이 소방관으로서의 사명감을 갖고 업무에 임하고 있다는 내용과 함께, 그가 쉬는 날이면 틈틈이 불우이웃을 찾아 생필품을 전달하는 등 선행을 한 사실을 보도했다.
기사에서 이 소방경은 "소방공무원들이 복지부동이라니요, 큰일 날 소립니다"라며 철저한 직업정신으로 무장한 소방관임을 강조했다.
1996년 2월에는 안성 고성산 등산 중 쓰러진 등산객에게 심폐소생술을 해 구조한 사실이 KBS 한 프로그램에 보도되기도 했다.
안성 교차로신문에는 이 소방경이 상대방 과실로 차량이 추돌하는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상대방의 건강상태를 먼저 살피고 온화하게 대해준 사실이 실리기도 했다.
당시 글을 올린 필자는 이 소방경에 대해 "저의 과실로 차량이 파손됐는데도 나의 상태를 먼저 살펴줬다"며 "남을 먼저 생각하고 사랑으로 감싸준 모습에 따스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다"고 적었다.
평소 동료들에게 책임감 있고 따뜻한 선배로 알려진 고인의 인격을 가늠할 수 있는 사연이다.
한 동료 소방관은 "타인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직업은 숭고하다고 가르치시던 선배가 현장에서 돌아가셨다니 많은 소방관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며 "선배님이 생전 구조구급 현장에서 보여주신 모습은 후배들이 길이 따를 역사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1990년 3월 소방에 입문한 이 소방경은 2011년 소방의 날 유공 행정자치부장관 표창을 비롯, 경기도지사 표창 2회, 소방서장 표창 2회 등 많은 상을 받아 동료들의 귀감이 됐다.
이 소방경의 영결식은 7일 오전 평택 소사벌 레포츠타운 청소년실내체육관에서 경기도청장(葬)으로 엄수될 예정이다.
고인은 3일 오후 서해대교 목표방면 송악IC 인근 2번 주탑 중간부 근처 교량케이블에 불이 난 현장에 출동했다가 화재로 끊어진 케이블에 맞아 현장에서 순직했다.
서해대교 화재
온라인 이슈팀 @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