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이제는 볼 수 없는 그들, 대통령의 `로맨스`
입력 2015-11-25 16:36  | 수정 2015-11-25 17:08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22일 서거했다. 전직 대통령 서거는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을 3개월 간격으로 떠나보낸 지 6년 만이다. 이로써 문민정부 시대를 연 14대 김영삼 전 대통령을 포함해 15대, 16대 대통령이 모두 영면했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 이후 영원한 반려자인 손명순 여사에 대한 각별한 사랑이 알려지면서 그의 ‘로맨티스트적 면모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손 여사가 졸업하기도 전에 결혼을 강행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는 그의 일화는 이제 모든 사람이 아는 얘기가 됐다.
이에 더해 김 전 대통령과 함께 ‘양김(兩金)으로 불렸던 김대중 전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시킨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이제는 볼 수 없는 그들의 ‘로맨스에도 관심이 쏠린다. 그들은 대통령이기 전에 한 여자의 남편이었다.
◆ 김영삼 아내와 결혼, 인생에서 제일 잘한 두 가지 중 하나”
김 전 대통령은 손 여사와의 결혼을 인생에서 제일 잘한 두 가지 중 하나”라고 공공연히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나머지 하나는 민주화를 이룩한 일이다.
김 전 대통령과 손 여사의 인연은 6·25 전쟁 발발 후로 거슬러 간다. 맞선으로 만난 이들은 1951년 3월 바로 결혼식을 치렀다. 김 전 대통령은 결혼을 종용하던 가족들 탓에 손 여사와의 만남 이후에도 몇 차례의 맞선이 잡혀있었지만 손 여사가 마음에 들어 전부 취소했다고 한다.
그 때 이화여대 약학과에 재학 중이던 손 여사는 재학생의 결혼을 금지하는 당시 이화여대 교칙 때문에 퇴학 위기를 무릅쓰고 ‘비밀 결혼을 올렸고, 65년을 해로했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로만 보이는 김 전 대통령이지만 손 여사에게만은 애틋했다고 전해진다. 김 전 대통령이 손 여사를 ‘맹순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는 건 충분히 알려진 얘기다. 청와대 입성 후에는 평생 정치인의 아내로 내조했던 손 여사와 매일 밤 경내를 산책하며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2011년 결혼 60주년 회혼식에서 김 전 대통령은 그동안 참으로 고마웠소. 맹순이가 예쁘고 좋아서 60년을 살았지”라며 볼에 입맞추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전해진 날 손 여사는 안 추웠는데 춥다”며 쓸쓸함을 토로했다. 23일 입관식에서는 수의를 입고 누운 배우자의 얼굴을 한참이나 응시했다.
◆ 김대중 아내는 영원한 동반자이자 동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는 서로를 정치적 동지이자 동반자로 여겼다. 과거 이들이 청와대로 들어오기 전에 살았던 동교동 자택 문패에는 ‘김대중·이희호라는 이름이 함께 적혀있었다. 김 전 대통령이 이 여사를 평생의 동지로 생각한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 여사는 결혼에 이르는 과정부터 순탄치 않았다. 촉망받던 신여성 엘리트로 꼽히던 이 여사가 부인과 사별한 채 셋방살이하던 정치 재수생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결혼한다고 했을때 주위의 반대가 극심했기 때문이다.
이 여사는 후일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결혼을 회고하면서 남녀간의 뜨거운 사랑보다 서로가 공유한 꿈에 대한 신뢰가 그와 나를 동여맨 끈이 되었다”고 밝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굴곡진 정치 인생에 이 여사의 삶도 평탄치 못했다. 이 여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납치사건 및 사형선고, 6년에 걸친 옥바라지, 망명생활 등 정치 혹한기를 함께 견뎌냈다.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8년 이 여사의 자서전 출판기념회에서 수많은 고난을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을 준 것도 아내고, 제가 영광스러운 자리에 올랐을 때 힘과 능력을 주고 내조를 잘해주었던 이도 아내”라며 이 여사를 추켜올렸다.
이 여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당시 입관식 때 넣은 메모에 너무 쓰리고 아픈 고난의 생을 잘도 참고 견딘 당신을 나는 참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라고 적으며 변치않는 애정을 드러냈다.
◆ 노무현 대통령이 되려고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의 관계는 과거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일화로 유명세를 탔다.
노 전 대통령은 경선 도중 이인제 후보가 장인의 6ㆍ25 전쟁 당시 좌익 전력을 문제삼자 대통령 되려고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라고 맞받아쳤다.
권 여사는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마음 씀씀이에 상당한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이는 대선을 앞두고 보낸 권 여사의 편지에서 드러난다. 노 전 대통령이 사망한 뒤에야 공개된 편지에서 권 여사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사랑하는 아내를 버려야 한다면 차라리 대통령 안 하겠다고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말하던 당신, 무뚝뚝하기만 하던 당신의 속 깊은 사랑에 저는 말없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라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이들 부부는 고향 친구 사이였다. 1971년 군에서 제대한 노 전 대통령이 고향으로 돌아와 고시공부를 하던 중 권 여사를 만나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했다. 권 여사는 결혼반지를 팔아 고시공부를 뒷바라지 했다. 노 전 대통령은 권 여사의 지지에 힘입어 결혼한 지 2년 여만인 75년 4월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서전 ‘여보 나 좀 도와줘에서 권 여사와의 러브스토리에 대해 워낙 콧대가 세서 말도 붙이기 힘들었다. 제대 후 고시공부를 하는 중에 책을 빌려주면서 사귀었는데 딴청을 피우며 1년 간 애를 먹인 후에야 비로소 마음을 열었다…둑길을 걸으며 밤이 이슥 도록 함께 다녔다”고 추억했다.
[매경닷컴 김잔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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